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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ㅅㅁㅅ Dec 10. 2017

모두가 외로운 동네


대학에 들어가며 학교 근처 자취촌인 이 곳, 사근동으로 왔다. 처음 부모님 곁을 떠난 홀로서기는 진짜 어른이 되었다는 착각과 약간의 해방감 위에 시작됐다. 하지만 자유가 가져다준 즐거움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희미해졌고 뒤이어 찾아온 외로움의 크기는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텅 빈 방의 공허함은 매일 마주해도 적응하기 쉽지 않은 감정이었다. 즐거운 마음을 담아 집으로 와도 나눌 이가 없기에 그 감흥은 반감되었고, 슬픈 일을 겪은 날은 차가운 자취방의 공기와 만나 서러움이 더해졌다. 도저히 집에 틀어박혀 있기 힘들 땐 집 앞 공원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곤 했다.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한양대 학생들이 대부분인 사근동은 어쩌면 모두에게 낯설고 외로운 동네일지도 모르겠다. 청춘들로 가득한 동네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차분하고 초연한 공기가 매일 밤을 채웠다. 시간이 갈수록 동네를 메우는 적막함은 더 깊어져만 가고 있다. 혼밥이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처럼 여겨질 정도로 점점 단절되어가는 세상의 흐름이 사근동에는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다인용 테이블이 없는 사근동의 카페들과 혼술 중인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있는 집 앞 이자까야를 볼 때마다 동네 전반에 흐르는 외로움의 정서를 느낀다.



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이 곳을 떠날 거라 생각했지만 어느덧 10년째 사근동에 머무르고 있다. 졸업 후 들어간 직장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고 5 년째 전세금을 올리지 않는 집주인 아줌마 덕에 이사의 명분이 없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청춘의 그림자를 오롯이 담고 있는 동네이기에 섣불리 떠날 마음을 가지지 못했다. 큰 사건, 사고는 없었지만 내면의 방황을 여러 차례 겪었던 나의 20대에서, 사근동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낳은 절망감을 쏟아냈던 공간이었다. 이사를 갈까 생각하다가도 집으로 향하는 언덕길과 드문드문 놓인 가로등 밑에서 홀로 쌓았던 추억들이 나의 발목을 붙잡는 듯했다.



그러다 얼마 전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사라는 단어를 이따금씩 머릿속에 떠올리긴 했지만 '결심'이라 말할 만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처음이었다. 사근동은 점점 더 혼자 사는 이들의 정서 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이다. 그나마 사람 냄새나던 동네 슈퍼와 백반집의 자리에 편의점과 무인 판매기를 갖춘 식당이 들어서고 있다.



반면 나의 세계는 언젠가부터 정반대의 방향으로 확장되고 변화하기 시작했다. 20대 시절의 주관심사였던 자기 객관화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지극히 나 혼자만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내게 가장 중요한 글쓰기나 달리기는 사람들과의 교류 혹은 관계를 통해 더 발전되고 완성된다. 혼자의 삶에서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으로 무게의 중심이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더 이상 사근동 주민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당신이 머물고 있는 공간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라는 한 줄에서 10년을 이어온 사근동과의 인연을 떠올렸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느꼈던 이질감이 무색하게, 어느덧 나는 사근동과 닮은 구석이 꽤 많아졌다. 사근동이 가지는 묘한 외로움의 분위기는 나를 구성하는 다양한 층위에서 가장 밑바닥에 자리 잡은 정서와 닮아있단 생각이 든다. 


멀지 않은 미래에 이곳을 떠나겠지만 그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치열하게 외로웠던 내 20대 시절, 그리고 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어떤 정서와의 물리적 이별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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