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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Aug 03. 2023

자전거 소음과 인생

얼마 전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서울에서 춘천까지 가던 날이었다. 그런데 자전거에서 여태 나지 않던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틱틱틱틱, 작은 돌멩이가 알루미늄 프레임에 부딪히는 듯한 소리였다. 처음에는 오늘따라 바닥에 이물질이 많은가 보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깨끗한 자전거 도로를 지날 때도 소음은 멈추지 않았다. 


자전거 자체에서 나는 소음이라고 결론이 나자 마음이 불안해졌다. 혹시나 프레임 어디에 금이 가거나 해서 이런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그래도 크랙에 취약하다는 카본이 아닌 알루미늄 프레임이니 괜찮을 것이라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열심히 달렸다. 


가만히 관찰을 했더니 오르막을 오르거나 속도를 낼 때, 즉 힘을 줘서 페달을 밟을 때 소리가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2,3시간 정도 자전거를 탔을까, 이제는 소음에 꽤나 익숙해져서 괜찮아... 지기는커녕 계속 신경이 쓰이고 불편했다. 다행히 아름다운 봄날의 풍경이 그런 불쾌감을 꽤나 상쇄시켜 주었다. 덕분에 무사히 기분 좋게 춘천에 도착할 수 있었고. 생애 첫 100km 라이딩이었다. 대박!


집으로 돌아온 뒤 본격적으로 소음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안장, 싯 포스트, 페달 중 하나의 문제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크랭크나 비비(Bottom Bracket)의 문제일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고 했고. 그래서 밖으로 나가서 안장에 앉지 않고 선 채로 자전거를 타보았다. 이 상태에서도 소음이 그대로 나면 페달의 문제일 확률이 높고 소음이 나지 않는다면 안장이나 싯 포스트의 문제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어? 거의 소음이 나지 않는다. 안장이나 싯 포스트의 문제로 확신한 나는 집으로 돌아와 청소를 시작했다. 역시나 모래 알갱이 같은 것들이 잔뜩 묻어있었다. 그것들을 깨끗이 청소한 뒤 다시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대박! 소음이 싹 사라졌다.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원래 소음 없는 자전거를 탈 때는 이렇게 좋아하고 만족하지 않았는데. 소음이 났다가 없어진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나 하고. 우리네 인생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주어진 일상을 당연히 여기고 무덤덤하게 살아가지만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일상을 잃어본 이들은 안다. 별일 없는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다른 이들이 보면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소음의 원인을 스스로 찾고 해결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기쁘게 했다. 이케아가 큰 인기를 끄는 이유 중의 하나가 사용자가 스스로 조립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직접 정성을 쏟으면 그만큼 애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린 왕자의 장미꽃 한 송이가 지구의 수많은 장미꽃들보다 더 특별하고 소중했던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이고. 


인생을 살아갈 때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 다른 이에게 의지하고 남 탓을 하며 살아가면 순간은 편할지 몰라도 길게 봤을 때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리라. 시행착오를 겪으며 넘어지고 깨지더라도 몇 번이고 스스로 일어난 이들은 비록 상처투성이가 될지는 몰라도 자신의 인생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거기 넘어져서 울고 있는 당신! 씩씩하게 다시 일어나서 걸어가 보도록 하자. 상처는 아물 것이고 흉터는 남을지언정 그것마저도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니.


아마 자전거를 타다 보면 또 소음에 시달리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도무지 소음을 잡지 못해 정이 떨어져 자전거를 처분했다는 인터넷 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이니. 그때가 오면 또 열심히 원인을 찾고 해결하려고 애를 써 볼 것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만약 그렇게 했는데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그러면 그냥 적응하면서 타면 되지 않을까. 수많은 잡음을 안고 살아가는 인생과 마찬가지로.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달리는 수많은 따릉이(서울의 대여 자전거)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큰 소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밝은 표정으로 자전거를 타는 이들도 많은데 별것 아닌 소음에 너무 마음을 뺏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고.


그러고 보니 따릉이를 탄 이들의 표정이 대체로 더 밝고 여유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멋지게 차려입고 로드 자전거로 쌩쌩 달리는 이들의 얼굴은 힘들어서 그런지 일그러져 있거나 '나 빠르고 멋지지?'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얼마 전 수십 년 만에 따릉이로 자전거를 다시 타기 시작했다는 블로그 이웃분의 소감이 생각난다. 기분이 끝내줬어요라는 그녀의 글을 보며 생각했다. 자전거 타기의 진짜 행복은 따릉이만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아니, 어쩌면 점점 장비가 좋아지고 숫자에 집착하게 되면서 진짜 행복과는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생 역시 그러하리라. 숫자가 아닌 순간을 만끽하며 사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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