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기 Aug 10. 2023

턱을 들지 않는 당신! 유죄!

"피고에게 묻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턱을 든 게 언제입니까?"

"네? 그게 무슨 말이죠? 턱을 들다니요?"

"피고는 턱을 드는 게 뭘 의미하는지도 잊어버렸단 말입니까? 도저히 안되겠군요. 당신은 유죄..."

"아니, 잠시만요. 다짜고짜 유죄라니요. 재판은 공정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모르는 용어가 있을 때 최소한 알려주기는 하셔야지요."

"흠... 그 말도 일리는 있군요. 좋습니다. 그럼 알려드리죠. 사실 당신은 턱을 참 잘 드는 아이였습니다. 수십 년 전 과거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요."

"제가 턱을 잘 드는 아이였다고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호기심이 참 많은 아이였습니다. 키가 닿지 않는 식탁이나 찬장 위에 놓인 것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어하곤 했죠. 그래서 늘 턱을 들어 높은 곳을 보려 애를 썼고요."

"확실히 그랬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 몰래 찬장 위를 살펴보려고 의자 위에 올라갔다가 떨어진 적도 있었으니까요. 꽤 옅어지기는 했지만 이마에 아직 흉터가 남아있고요."

"이제야 이야기가 좀 통하겠군요. 턱을 드는 의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깨달은 것 같으니 다시 묻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턱을 든 게 언제입니까?"

"그러니까 무언가에 호기심을 가진 적이 언제냐고 물으시는 거죠. 음... 아. 있습니다! 얼마 전 저희 회사에 신입이 들어왔는데 그 여자에 대해 더 알고 싶었습니다."

"피고!! 그런 건 턱을 들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피고가 그녀에 대해 알고 싶어 했던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국 어떻게든 꼬셔서 한 번 자려고 했던 것 아닙니까? 호기심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정말로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대체 호기심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피고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로 한 번 돌아가 보십시오. 찬장 위에 놓인 것을 궁금해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달콤한 과자나 꿀이 먹고 싶어서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그저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무언가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특별한 이유도 없고 얻을 수 있는 이득도 없는데 궁금해하는 것, 그것이 진짜 호기심입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피고가 마지막으로 턱을 든 것은 언제였습니까?"

"......"

"유감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당신은 유죄이고 화성으로 추방될 것입니다. 지구의 인구는 2050년을 기점으로 200억을 넘었고 더 이상의 인간은 수용 불가능한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세계연합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했습니다. 현재 세계 인구의 1/3 정도를 화성으로 추방하기로."

"아니, 그거랑 턱을 들지 않은 것이 무슨 상관인지요?"

"여태 설명했지 않습니까? 턱을 들지 않는다는 것은 호기심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는 것을요. 하늘과 바다, 산과 강에 별 관심도, 감흥도 없는 그런 사람들이 아름다운 지구에 사는 것은 사치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어쩌면 살아있는 것 자체가 낭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자연과 주변에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내일에 대한 기대도 없고 자신의 인생은 그저 그렇게 흘러가다가 끝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마 그들의 인생은 정말로 그들의 생각대로 흘러갈 것입니다. 호기심이 없으니 뭔가 새롭고 즐거운 일이 생길 리도 만무하고요. 물리적인 시간은 많이 남아있지만 이미 끝난 인생이나 다름없지요."

"......."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마지막으로 턱을 든 것이 언제인가? 내일이 기대되는가? 무언가를 기대하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가끔이라도 느끼며 살고 있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당신 역시 유죄이다. 땅땅!

매거진의 이전글 자전거 소음과 인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