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효능감과 자아 존중감
"삐빅, 잔액이 부족합니다."
"학생 두 명이요."
먼저 탄 여학생 카드의 잔액이 부족하자 뒤의 남학생이 멋지게 대신 결제를 해주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어느 광고에서 본 듯한 모습이었는데 이어지는 남학생의 말이 아쉬웠다.
"야~ 너 뭐야~?(카드도 제때 충전 안 하고 뭐 했어?)"
"괜찮아~ 괜찮아~ 안 죽어~"
자신을 책망하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글생글 웃으며 자리에 앉는 여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맞아. 저런 삶의 태도가 정말 중요한데 말이야.
아마 남학생은 실수도 별로 하지 않고 공부도 꽤 잘할 것이다. 준비성도 철저할 것이고. 잔액이 없는 교통 카드를 들고 버스를 타는 일도 없으리라. 잔액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애매할 때는 현금을 미리 준비할 것이고. 아니, 요즘은 현금 없는 버스가 늘고 있으니 아예 미리 충전을 하거나 확인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아마 자기 효능감이 꽤 충만할 것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고 실제로 능력 역시 꽤 뛰어난 편이리라. 그런 그에게도 단점이 있다. 바로 실수나 실패를 너그럽게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타인의 실패든, 자신의 실패든 상관없이. 그래서 좋아하는 여학생의 귀여운 실수에도 자신도 모르게 책망하는 말이 나가고 말았으리라.
덜렁대고 실수가 잦지만 그녀에게도 큰 장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실수나 실패에 관대하다는 것이다. 자아 존중감이 높다고 볼 수 있겠다. 자아 존중감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마음이다.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실수에도 관대한 그녀 주변에는 늘 사람이 많다.
누구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차가운 북풍처럼 책망하는 말을 수시로 내뱉는 사람과 따뜻한 햇살처럼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어느 곁에 머물고 싶겠는가.
자기 효능감과 자아 존중감은 자아를 형성하는 중요한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자기 효능감이 충만한데 자아 존중감이 부족한 사람들이 유독 많다고 한다. 왜 그럴까? 타고난 특성도 분명 있겠지만 엄격한 교육 역시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고 아이를 격려하지만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주하듯이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노숙자가 될 것이다, 인생이 끝날 것이라 협박을 하기도 하고.
인생이 끝났다, 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스스로를 죽이는 것 밖에 남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세계 1위 수준을 계속 유지하는 것에는 사람들의 자아 존중감이 부족한 것도 한몫을 할 것이다. 어쩌면 험난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효능감이 아닌 자아 존중감일지도 모르겠다.
자아 존중감이 충만한 그 여학생은 앞으로의 인생도 참으로 잘 살아낼 것 같다. 오늘처럼 생글생글 웃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