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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Apr 15. 2024

건망증의 원인 2

사실 나는 고장난 신용카드를 오래도록 사용하고 있었다. 무엇이 원인인지는 모르겠으나, 꽂아서 결제하는 것이 되질 않아 늘 긁어서 결제하는 방식을 쓸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카드 리더기에서는 꼭 먼저 꽂는 방식을 한 뒤에 결제가 되지 않으면 긁는 방식으로 넘어가서 두 번의 수고를 겪어야 했고. 


아니, 진작에 신용카드를 교체하지, 왜 그런 불편을 감수하고 있었냐고? 왜긴 왜겠는가. 귀차니즘 때문이지. 자동 결제가 되어 있는 것을 옮기고 어쩌고 하는 것이 매우 매우 귀찮았다. 그런데 얼마 전 신용카드의 기한이 만료되면서 어쩔 수 없이 신용카드를 바꾸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자동 결제는 내가 따로 옮기지 않아도 저절로 새 카드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아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신용카드 바꿀걸!


그렇게 새 카드를 사용하는데 세상 편하고 좋았다. 매번 꽂고 나서 긁는 수고를 거쳐야 했는데, 이제는 꽂기만 하면 다 한 방에 결제가 되는 것 아닌가! 무인 키오스크에 길게 줄이 늘어서 있을 때는 한 번에 결제가 되지 않아 눈치가 보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아주 당당하게 신용카드를 꽂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러하듯이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앞선 글에서 밝혔듯이, 벌써 두 번이나 카드를 잃어버리지 않았던가. 긁는 방식을 사용할 때는 분실의 위험이 없었다. 손에서 카드를 놓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신용카드를 두 번 분실한 뒤 처음에는 세상 탓을 했다. 아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이 사라지고 차갑고 삭막한 무인 키오스크들이 자꾸 늘어나니 이 사달이 나는 것 아니냐며. 


하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했다. 그래. 세상 탓을 한다고 뭐가 나아지겠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으니 내가 바뀌어야지. 그래서 요즘은 신용카드를 꽂아서 결제를 할 때도 손을 떼지 않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앞으로는 신용카드를 분실한 뒤 애꿎은 세상 탓을 하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하며.


그렇게 건망증 사태는 잘 마무리가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글을 쓰려다가 말았었고. 하지만 오늘 아침 또 다른 사달이 나고 말았다. 노트북을 파우치에 넣고 룰루랄라 외출을 하는데, 차갑고 거친 길바닥으로 노트북이 다이빙을 하는 것 아닌가. 으아악. 깜빡하고 노트북 파우치의 지퍼를 잠그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 상처투성이가 된 노트북을 보며 얼마나 가슴이 쓰리던지. 아이고. 이놈의 건망증! 이제 노트북 파우치 지퍼도 꼭 잡고 다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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