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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Jul 10. 2024

홍대입구 8번출구

홍대입구 8번 출구. 그곳은 우리 모임이 있는 곳이다. 항상 그곳에서 출발하는 탓에 단톡방 이름 '홍대8번출구'이다. 아마 옛날에 홍대입구 5번 출구였을 것이다. 홍대 정문 쪽이 옛날에는 6번 출구였던 것 같으니. 옛날 홍대 4번, 5번 출구 쪽은 주택가 방향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식당이나 그런 것들이 들어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것들이 생긴다면 당연히 합정 쪽으로나 늘어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8번 출구로 나와서 큰길을 보면 처음 역삼역 주변에 갔을 때 느꼈던 것 같은 위압감을 느낄 정도이다.
8번 출구에서 나와서 바로 오른쪽 넓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조그마한 로터리가 나온다. 자동차들이 다니지만 가끔 지나다녀서인지 사람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다닌다. 건너는 게 아니라 그 찻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러다가 차가 오면 그제야 인도로 올라가거나 심지어 그냥 길가로만 비켰다가 자동차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 가운데로 걷기도 한다.
로터리에서 다른 쪽으로 가지 않고 그대로 직진하면 고깃집이 보인다. 간단하게 요기하기 좋은 집이다. 그곳에서 소주 반 병만 마시고 나머지는 고기와 밥으로 배를 채우고 나면 맥주를 마실 준비가 끝난 것이다. 겨울이나, 혹은 장마철 추운 날에는 홍대 정문을 중심으로 반대쪽으로 가서 어묵을 먹고는 한다. 따뜻한 사케를 시켜서 어묵 국물과 번갈아 마시면 천국이 따로 없다.
그렇지만 유독 어묵이 어울리는 날이 있어서 그런 날만 거기까지 걸어간다. 멀어서 못 갈 정도는 아니지만 지하철역 근처에서 머물고 싶은 것도 있고 주차장거리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 인파 속을 흘러가듯이 걷는 것이 나에게는 맞지 않는 탓도 있다.
오늘은 나머지 일행의 맥주에 대한 기대가 커서 식사도 하지 않고 그대로 맥주를 마시러 가기로 했다.  그대로 고깃집 입구가 있던 그 골목을 벗어나지 않고 그대로 걸어가자.
골목 끝까지 가면 양쪽으로만 갈이 난, 삼거리가 된 곳이 나온다. 그때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2층에 옛날 분위기가 나는 나무 문이 있고 '누바'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그곳이 내가 맥주를 마시러 가는 곳이다.
원래는 우연히 갔다가 분위기가 좋아서 창가에 앉아서 맥주 한 잔씩 마시던 곳이었다. 메뉴판을 보아도 트라피스트 맥주들이 있어서 저렴한 것들 중심으로 입가심 삼아 마시곤 했는데 주류박람회에서 그 가게의 이름이 찍힌 스티커를 보고 나서, 그리고 주류박람회에서 이런저런 트라피스트 맥주를 맛보고 나서는 가격이 비싸더라도 숫자가 높은 로쉬포르 10 같은 맥주만 마시게 되었다.
그날 우리 모임은 처음부터 로쉬포르로 시작했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 창가에 앉아도 되지만 뭔가 중세 아지트 같은 느낌이 나는 안쪽에 앉아서 만찬을 즐겼다. 대여섯 병과 함께 안주를 거하게 먹고 전용잔도 한 번 들여다보면서 술자리의 즐거움이라는 것이 취하는 데 있지 않고 대화와 맛을 즐기는 데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그곳에서 마시고 노는 동안 비가 그쳤다. 나무 바닥이라 입구에 우산을 두고 들어갔었는데 창가에 앉지 않아서 비가 오는 것은 알았지만 얼마나 오는지는 모르는 상태였다. 멀리 안쪽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많이 잦아들었었는지 우산이 많이 말라 있었다. 계산할 때쯤은 비가 다 그쳐서 우산을 쓸 필요가 없었는데, 가방 손잡이에 겹쳐서 들어도 젖을 걱정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말라 있었던 것이었다.
보통 회식 때 식사 후 2차로 마시는 맥주까지는 보통 세 시간 정도 걸렸지만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두 시간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그렇지만 그건 회식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였고, 이렇게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니 할 이야기가 많아서인지 이미 열 시 지나고 있었다. 심지어 일곱 시에 만나서 곧장 맥주를 마시러 갔는데도 그랬다.
1차가 맥주였으니 2차는 양주가 되었다. 데낄라와 예거밤. 로터리가 있던 곳에서 왼쪽으로 꺾어서 경의선 출입구가 보이는 곳 코너에 있는, 그전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가 보는 집이었다. 비가 와서 그런가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즐거운 시간이라 삼십 분 가량 마시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비는 완전히 그쳤고 집에 가기 좋은 상쾌한 공기가 가득 차 다. 습기는 많았지만 기온이 내려가니 술을 마셨어도 제법 괜찮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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