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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Sep 07. 2024

차가운 천국과 불지옥

선영이 교회 앞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매일같이 퇴근길에 들러서 예배당에 물걸레질을 하고 나면 집에 가서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예배당은 보통 교회처럼 좌석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접이식 의자가 복도에 죽 늘어져 있어서 교회에 도착하면 하나씩 들고 들어오게 되어 있어 예배 시간이 아니면 텅 비어 있었다. 예배당 입구에는 십자가가 문지방 위에 걸려 있었지만 예배당 안에는 단상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은 조금 일찍 퇴근했기 때문에 겨울임에도 노을을 볼 수 있었다. 노을을 배경으로 그림자처럼 또렷한 검은색으로 보이는 십자가는 정말 멋졌다. 교회에는 첨탑은 없었지만 신도들의 요구로 십자가만 옥상에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노을 앞에서 검은색으로 보이는 십자가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십자가를 자세히 보니 십자가 앞에 사람 형상이 역시 그림자로 서 있었다.
'응?'
선영이 생각해 보니 십자가 태풍이 오면 쓰러질 것처럼 불안했던 적은 있어도 사람 모양이든 뭐든 옆에 세워 놓은 것은 없었다. 게다가 그게 사람 형상인 건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옥상 문은 아이들 때문에 항상 잠가 넣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선영이 그게 뭔지 자세히 보려고 하는 찰나, 노을을 배경으로 그림자처럼 서 있던 사람의 형상은 힘차게 마치 다이빙을 하는 수영 선수처럼 공중으로 뛰어올랐고 곧바로 아래로 떨어졌다. 선영은, 만약 거울이 있었다면 아래로 떨어지는 것과 반대로 하늘로 올라가는 듯했을 그림자의 모양이 무척이나 아름다웠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영은 습관처럼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교회라고는 하지만 그저 2층짜리 건물일 뿐이었다. 화려하지도 않고, 오로지 실용성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구조물이었다. 신발을 갈아 신고 몽롱한 상태로(사실 퇴근을 세시쯤 했기에 기념 삼아서 맥주를 두 잔 걸친 상태이긴 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물걸레에 물을 묻히고 한두 번 다시 짜고 나서 곧바로 복도부터 닦기 시작했다. 양쪽으로 물걸레질을 하면 언제나 마음속도 홀가분하게 때를 벗기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샤워보다는 욕조나 목욕탕에는 들어가야 제대로 씻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러다 스무 걸음쯤 걸었을까. 갑자기 언덕을 올라오면서 보았던, 뭔가가 십자가 앞에서 떨어진 것 같았던 광경이 다시 떠올랐다. 선영은 걸레를 옆에 잘 세워두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건물 왼편 옥상에 십자가가 설치되어 있으니 그 아래를 보아야겠다. 평소에 그곳에 주차장이 있어서 갈 일이 없던 구역이다. 주차를 하면 어쩔 수 없이 그쪽에서 입구까지 걸어와야겠지만 선영은 항상 언덕을 걸어 올라와서 그대로 직진해서 정문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지하철역에서 옆으로 꺾어져서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언덕이 나오는데 차를 가지고 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기는 했다. 그래서 그쪽으로 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었다.
건물은 거의 정사각형 모양이었다. 예배당이 어느 정도 규모가 있으니 그럴 만 하기는 했지만 건물 밖에서 벽을 따라 걸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정문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건물 모서리를 돌아보니 수돗가가 나왔다. 건물 오른쪽에는 어린이 놀이터를 만들어 놓아서 몇 번 가 보았는데 곳에도 수돗가가 있었다. 그쪽 수돗가는 겨울이 되면서 얼지 말라고 열선 공사를 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쪽도 있는 줄은 몰랐다. 수돗가를 지나자 거의 가슴 높이까지 오는 담장이 있었다. 사각형 모양으로 뭔가를 감싸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건물에 바짝 붙어 있었다. 꼭 지하 주차장 입구처럼 보이는 구조였다. 뭐가 떨어진 게 있나 보려고 들여다보았지만 높아서 올라가 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뒤로 떨어졌을 수도 있기에 빙 둘러 가기로 했다. 그렇지만 그 뒤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에는 사각형의 지붕 없는 담장이 끝이었다. 뭔가가 떨어졌다면 그 안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술김에 보았기에 뭐가 떨어진 게 맞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신고부터 하기도 좀 그랬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내려다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든 생각은,
'만약 옥상에서 내려다보았더니 사람이 맞다면 혹시 경찰에서 내가 민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잖아. 술 마셔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할 거야?'
였다. 책임을 지지 않을 생각부터 하는 결론 조작이었다. 나쁜 일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만회하려면 더 오래 살아야 하게 생겼다. 하지만 생각을 한 건 한 거다. 생각을 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이것을 만회할 방법은 선행뿐이다.
그녀는 정문을 닫고 도어록이 잠기는 소리를 들은 후 그대로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감색 미니스커트에 걸레를 짜기 위해 갈아 신었던 회색 크록스 차림이었지만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대로 지하철 역 출구 건너편 바로 앞에 있는 경찰서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두리번거리자 경찰관이 물었다. 단 두 명뿐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선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로 했다.
"사람이 떨어진 것 같아요. 멀리서 본 거라 확실하지는 않은데, 떨어진 곳을 확인할 수가 없어서요, 사람이 떨어진 게 맞는지만 확인해 주시겠어요? 제가 잘못 본 것일지도 모르는데 혹시 몰라서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경찰관들과 함께 왔을 때 문은 선영이 해 놓은 대로 잠겨 있었다. 이제까지 왜 생각을 못 했지? 건물 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는데, 만약 그렇다면 떨어져 죽은 것은 아마도 정혁일 것이다. 그 외에는 없다. 목사님...

16년 전, 어느 날 술에 취한 정혁의 머릿속에 천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스스로도 천사의 목소리인지 자신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돌아왔는데 다시 돌아오고 부르고 돌아왔는데 다시 돌아오고 다시 돌아오고'
그는 여느 때와 달리 술을 마셨는데도 머리가 맑았다. 술에 취하면 생각이 쳇바퀴 돌게 마련이지만 이상하게도 생각은 계속해서 논리에 논리를 더해갔다.
'주님이 보실 수 있을 때까지 돌고 다시 돌아...'
그제야 그의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풀렸다. 우주에서 두 가닥의 실이 창공을 가로질러 내려와 그의 머릿속에서 맞닿았다. 그는 전기 충격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모임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모임이었다.
"생명의 법"
이 세상이 연옥이자 지옥이다. 그게 그의 결론이었다. 사실은 이 세상 지옥이고, 이 세상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연옥이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지옥으로 느끼는 사람도 많다. 정혁은 이 세상을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천국은 아니었다. 그가 아는 지옥은 악마들이 사람들을 영원히 괴로움에 빠지도록 뜨거운 불로 지지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 세상이 꼭 그랬다.
그가 처음 만든 교회(그는 모임이라고 불렀다.)는 600만 원에 월세 80만 원짜리 상가 한 칸이었다. 바로 옆에 편의점이 있었다. 그는 예배 시간을 매일 오후 9시로 정했다. 그리고 예배는 한 시간 안에 끝내기로 했다. 예배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의 생각은 확고했고 그 역시 그의 생각이 구심점이 될 수 있으리라 분명히 확신했다.
선영이 첫 번째 동반자였다. 그녀는 새로운 교회를 찾아다닐 만큼 딱히 힘든 상황에 빠진 것도 아니었고 주변에 교회가 별로 없어서아니었고(그럴 리가 없었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라. 십자가 보이지 않는 곳이 있나.) 단지 그 성경 모임 사무실이 퇴근길 집에 오는 길목에 있어서 들른 것이었다. 작은 교회를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여기는 교회라는 간판도 달고 있지 않았다. 그 점이 조금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분위기만 보고 나올 생각이었다. 선영이 그 교회에 갔던 첫날 분위기를 그녀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했다.

그날 정혁이 말했다.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따르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예수님을 우상화하려는 게 아니라 그 말씀을 따르려는 겁니다. 우상화가 아니겠지요. 원래 하나님이시니까. 그렇지만 신이다, 아니다 보다 중요한 건 그 말씀을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신이시다,라고 하면서 예수님이 단지 현자일 뿐이지 않느냐는 사람을 상대한다고 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직접 성경에서 하신 적이 있는 비유와 같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 그 말씀을 따르지 않 사람과 예수님이 하나님이 하니고 단지 현자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말씀대로 하는 사람 중 누구를 예수님은 더 사랑하실까요?"
선영은 후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손가락이 아닌,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아야 한다.>가 정혁의 지론이었고 스스로도 그것을 지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스승이었다. 그렇게 사람은 늘어났고 정혁도 직장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렇게 신도들과 함께 모은 돈으로 다른 '엘리베이터가 있는' 상가 3층으로 옮길 수 있었다.
정혁은 신이 깨달은 것을 나누는 것 사명으로 생각했을 뿐, 예배는 설교가 아니라 모두가 각자 깨달은 바를 고백하고 다 같이 나누어야 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 웬만하면 설교단에 모두가 차례로 올라가기를 바랐다. 어느 날, 선영이 정혁이 여기서는 목사님과 같은데 기존 교단에서 세례를 받지 못해서 다른 신도들과 함께 설교하는 색다른 형태를 도입하려는 것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정혁은 대답했다.
"목사는 목자입니다. 양들을 이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양들을 이끌어주는 목자는 예수님 뿐입니다. 목자를 알아본 양들은 많습니다. 역사를 보십시오. 그리스도교를 보십시오. 그렇지만 저는 그중에서 목자가 가리키는 곳을 깨달은 사람일 뿐입니다. 처음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같은 성경을 보고 깨달은 사람이 이제 와서 저 한 명 달랑 생겼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도 똑같습니다. 제가 어떻게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는지만 알려드리면 여분도 그냥 하나님 쪽을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목자를 보고 나면 달라집니다. 그런데 목자를 보라고 하는 제가 어떻게 목자라고 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사람들은 점차 정혁을 목사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주요 교단에서도 가끔 사이비라고 공격을 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신도 백 명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한 공격 목표는 되지 못했다.
정혁이 강조한 것은 성경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으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사실 성경은 중요하지 않았다. 신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은 마녀 사냥꾼들도 얼마든지 쉽게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성경이 무엇을 가리키려고 하는 것인지를 깨닫는 것, 그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토론은 힘겨운 일이었고, 점차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늘어나면서 교회의 수입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정혁이 '행동이 바뀐 만큼만 헌금하라'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마치 면죄부인 양, 그들은 헌금을 내면 다 해결이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어느 날은 정혁이 울면서 설교를 했다.
"한 번의 설법으로 몇만 명이 해탈을 했다고 합니다. 그전에 해탈한 부처의 설교였습니다.  만 년이 지나고 드디어 나타난 부처가 설교를 했어도 전부가 아니라 '그중 몇억', '그중 몇 만'이 해탈을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윤회를 끊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불교에서조차 그렇습니다. 우리 생이 끝나고 다시 이 생에서처럼 아등바등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천국의 문은 닫혀 있지 않습니다. 훤히 열려 있고 들여다볼 수도 있습니다. 마음 편한 상태가 영원히 갈 수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게 천국 문이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걱정거리를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상태 말입니다. 어렸을 때 혼날 일이 없고 재미있는 일만 계속 기다리고 있었을 그 시절 그대로 말입니다. 어린아이 같아져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요?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한다고 했지요. 누가 어린아이 같습니까?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지도 않고 어린아이처럼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다시 이 지옥 같은 삶을 선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 죽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험에 떨어지듯 하기 전에 그냥 이 삶을 다시 선택하는 겁니다. 그러지 마세요. 저는요, 만약에 제가 세상에 진 빚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세상을 뜰 수도 있습니다. 빚이 있으면 다시 이 세상으로 미끄러질 거거든요. 사람이 왜 환경파괴를 하는지 아십니까? 사람은 이 우주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연과 생태계는 다릅니다. 자연은 우주고요, 생태계는 생명입니다. 애초부터 '사람답게' 제대로 살려면 우주, 자연과 어울릴 수가 없습니다. 오죽하면 원시시대에도 모래 속의 석회 성분을 힘들게 끌어모아 만든 조개껍데기를 육지에서 모은 것이 사람입니다. 이게 자연스럽습니까? 우주의 원리에 이런 게 가능합니까? 인간이 있어서 일어나는 일이지요. 우주에 빚을 지면 다시 우주를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도 생명으로 태어난 그 자체만으로도 계속 빚을 질 뿐입니다. 그렇지만 구약에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희년도 있지 않습니까? 서로에게 자비를 베풀어라. 자연에 진 빚 어쩔 수가 없는데 그것을 사람들 사이에서 풀 수 있는 방법을 하나님이 직접 말씀해 주셨잖아요? 쉬운 방법을 주셨잖아요? 그것만 따르면 되는 것 아닙니까?"
얼마 후 돈이 몇 억이 모이자 땅을 사고 건물을 올렸다. 정혁이 큰 건물을 원하지 않았기에 생각보다 많은 돈은 들지 않았다. 정혁은 돈이 그렇게 모인 것도, 사람들이 큰 건물을 원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선영은 정혁의 방에 들어갔다. 정혁은 성경과 함께 반야심경을 펼쳐놓고 읽고 있었다. 선영은 간단히 목례를 했고 정혁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이 선영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선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외투를 벗었다. 다시 정혁을 쳐다보며 등받이 없는 둥근 의자 위에 외투를 접어서 올려놓았다. 옆구리에 있는 고리를 풀고 지퍼를 내린 후 스커트를 내렸다. 스커트를 외투 위에 올려놓고 블라우스를 벗었다. 블라우스를 대충 두 번 접어 스커트 위에 올리고 브라를 벗었다. 일부러 오늘은 추운데도 스타킹을 신지 않았다. 대신 발목까지 오는 패딩을 입었던 것이었다. 팬티를 가지런히 브라 위에 올리고 정혁을 바라보았다. 정혁은 물끄러미 선영의 몸을 훑어보았다. 가슴은 봉긋하게 올라왔다. 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작은 가슴은 아니었다. 거뭇한 숲도 보았다. 그 안의 샘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었다. 정혁이 입을 열었다.
"세상에 많은 빚을 지었지만 다 갚았다고 생각했는데, 선영 씨한테 빚을 버렸네요. 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을 겁니다. 그건 또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이건 빚이 아니라 보여줘서 감사해야 할 건가요? 아닙니다. 그래도 제게 죄책감이 든다면 이유가 있을 거예요. 미안해요 선영 씨. 선영 씨에게 손을 대지 않음으로써 또다시 빚을 지네요."
그의 눈이 빨갛게 물들고 선영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그의 진심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가 미친 것을 확인했다고 할 일이었을 테지만.

건물을 지을 때 정혁은 구조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공간도 필요 없다고 했다. 그가 요구한 것은 한 가지였다. 3층 높이로 할 거라면 상관없지만 2층 높이로 할 거라면 지하 공간을 만들 것. 지하 공간을 만든다면 공간의 일부는 건물 밖, 하늘 아래에 있는 공간을 만들 것. 그래서 건물은 지하 1층짜리 건물이 되었고, 지하에는 기계실과 소리가 잘 울리는 공연장이 생겼다. 그리고 지하 일부는 옆으로 튀어나와서 선영이 본 그곳이 있었다. 추락을 막기 위해 담장을 두르기는 했지만 마치 노천탕처럼 하늘을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가 그런 공간을 원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것도 3층 높이로 할 거라면 필요 없다고 했지만 그가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는 이미 2층으로 결론이 모두 났을 때였다. 그러니 모두 그런 공간을 요구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곳에 의자를 높고 하늘을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활용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 공간은 비워 두었다. 그는 그곳에 페인트로 동그라미를 그리도록 했을 뿐, 다시는 그곳에 가본 적이 없었다.

선영이 본, 십자가 옆에서 뛰어내린 형상은 정혁이 맞았다. 정혁은 옥상에 올라가 십자가 옆에서 그 지하 공간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는 정확히 원의 한가운데에 있는 네모난 통에 머리부터 떨어져 숨을 거두었다. 지하로 내려가 문을 열고 시신을 수습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벽에 얼마 튀지 않은 핏자국도 페인트칠만 새로 해서 없어져 버렸다. 새로 단장한 공간을 보고 다시 문을 잠그며 선영은 그가 죽기 전 주일에 한 설교를 기억했다.
"우주가 곧 자연입니다. 자연의 궁극적인 모습입니다. 생명이 자연이 아닙니다. 생태계는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배경일뿐, 그건 자연이 아닙니다. 모두가 각자의 목표가 있는 그런 건 자연이 아닙니다. 자연은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태양이나 물, 안정된 공간이 필요한 생태계는 자연이 아닙니다. 자연은 우주입니다. 우주가 얼마나 차가운지 아십니까? 무려 영하 이칠십 도가 넘습니다. 그 공간에서 태양 같은 것이 가까운 곳만 엄청나게 뜨거울 뿐입니다. 지극한 자연 상태가 영하 이백칠십 도면, 지구 평균 온도가 영상 이십 도라고 할 때, 자연 대비 몇 도가 높습니까? 무려 이백 구십 도나 높은 겁니다. 생태계가 있으니 살기 좋다고요?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이 육체가 유지될 수 있는 온도일 뿐입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불지옥이 따로 없는 겁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의 영혼은 자연입니다. 아이들이 악랄한 건 육체적인 호기심 때문입니다. 뇌의 작용이자 내장의 욕구 때문입니다. 그런 것이 없는 아주 순전한 정신적인 욕구만 보자면 별 거 없을 겁니다. 우주의 자연 상태에 놓아도 정신이 얼어버릴까요? 아닙니다. 얼어버리는 건 우리의 정신이나 영혼이 아니라 육체뿐입니다. 영하 이백도에서 영혼이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거의 삼백도나 되는 육체 안에 밀어 넣은 것, 그게 바로 불지옥입니다. 성경의 불지옥이 바로 이 땅인 겁니다!"
그리고 설교가 끝날 때쯤에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결국 세상에 선행을 하는 목적을 잊으면 안 됩니다. 기존 교단들처럼 우리가 하는 일을 보고  우리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하려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남이 너희 하는 일을 이해하게 하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지요. 우리는 하늘에 영광을 돌리기 위해 선행을 합니다. 선행을 하는 것은 하늘에 재물을 쌓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 빚을 지는 것은 하늘에 쌓아둔 것을 쓰는 것입니다. 그것은 심지어 땅에까지 끌어다 쓰게 됩니다. 그것이 죄입니다. 하늘에 쌓아둔 것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그렇지 않도록 계속해서 선행을 쌓아 나가야 합니다. 세상은, 우주는 그렇지 않지만 인류 사회는 죄가 지배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죄를 짓습니다.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생명의 기본 원리부터가 환경에서 내게 유리한 것을 끌어다 쓰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자연 이치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선행으로써 바로잡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세상에 검을 들려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자연의 이치에는 바람직하나 사회의 이치에는 맞지 않아 보이니까요. 선행을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똑같이 베풀면 비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악인은 심지어 자신을 놀리는 게 아닌가 하고 증오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은 그런 겁니다. 존재를 따지지 않고 구름이 끼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비가 내립니다. 일부러 피하지 않으면 햇빛이 일부러 누구에게만 비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빚이 없을 때 죽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오래 살다가 결국 우주에, 사람에게 많은 빚을 지고 그때 가서 죽음을 미루지 못해 하늘에 쌓아둔 것 없이 그대로 죽어 세상에 다시 태어나야 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우주로 합치될 수 있었는데, 하나님이 마련하신 길을 잘 걸어가다가 천국으로 갈 수 있었는데 왜 굳이 세상의 미련 때문에 되돌아와야 합니까?"
그때 선영은,
'그럼, 선행을 충분히 베풀었다고 하면 목숨을 끊는 게 맞다는 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역시 자연의 이치에 벗어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런 생각을 할 자연스러운 타이밍이었던 듯 정혁이 덧붙였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세상 그대로, 우주 그대로의 상태는 생명과 거리가 멉니다. 산소가 모여 있지 않고 태양과 거리가 일정하지 않습니다. 생명이 특이하고 자연은 죽음이 더 가깝습니다. 더 자연스러운 상태는 원자 상태이지 생태계가 아닙니다. 자연에 가깝게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화산이 되고 지진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지지 않고 스스로의 육체에만 닿는다는 건 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생각해 볼 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럴듯했다. 그러나 내가 그래도 되는 상태, 빚이 없는 상태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나? 스스로 죽어서 사람들에게 슬픔을 주고, 시체를 치울 사람들에게 고생을 주는 건?
정혁은 시체를 치우는 불편함을 상당히 줄여 주었다. 사각형의 바퀴 달린 통에 정확히 떨어져서 밖으로 끌고 나오기도 좋았다. 그동안 그의 선행과 삶을 볼 때 그로서는 상당히 빚이 더 이상 없을 정도로 삶을 다듬었다고 믿어도 좋을 만했다.

문제는 교회에 그보다 더 열성적으로 선행에 앞장선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말로만 나서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빚을 다 갚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 같았다. 정혁이 설교단에서 대놓고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신념도 있었겠지만 실제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도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한 번은 토론 시간에 누군가 창세기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는 그전에 이미 성경의 많은 부분이 실제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보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손가락에 집중한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었다. 그러자 세상이 탄생한 것은 생태계가 먼저이고 그 이후에 인류이니 인류의 배경은 우주가 아니라 생태계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한 것이었다. 모두가 좋은 토론이 되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정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세상이 창조된 이야기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 말고는 중요한 게 없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저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게 하기 위해 그 손가락이 왜 옳은지를 설명하는 게 아닐까요?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질문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하나님은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식물들 속으로가 아니라 말입니다. 산산조각 난다는 것이지요. 그건 죽음을 말하는 거지 창조하신 세계의 일부로 돌아간다는 념을 강조한 것이 아니 말입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단어 하나하나가 소름 끼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선영은 그때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 몇몇은 무척이나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이었다. 그때 알아보았어야 했다.

교회가 폐쇄된 것은 선영이 십자가 옆에서 떨어지는 형상을 본 후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주일에 예배가 끝나고 성경공부를 하려고 두세 명씩 모이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나서 선영과 함께 있던 몇 명이 서둘러 문 밖으로 나갔다. 선영은 왠지 교회에서 행동이 많이 느려졌다. 초기멤버임에도 계속 여기에 있는 게 맞나 싶어 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뒤늦게 느릿느릿 사람들을 뒤따라간 선영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았다. 사람들이 스무 명 넘게 서 있는데 벌어진 일이라 순식간에 소문이 퍼졌다. 아직도 멍한 상태였던 선영의 귀에 멀리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선영은 잠시 현기증이 나서 문에 기댔다. 현정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눈에 절망이 가득했다. 선영은 그녀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고 나중에 말했다.
선영이 들은 윙윙거리는 소리는 실제로 사이렌 소리였다. 경찰차 소리가 먼저 나고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멈추고 경찰관 세 명이 차에서 내릴 때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도 멀리서 들리기 시작했다. 선영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서 그대로 쪼그려 앉았다.
누군가 경찰관들을 옥상으로 안내했다. 지하로 가는 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섯 명이 그 통으로 한 명씩 뛰어들었던 것이었다. 선영은 그 모습을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 정혁을 끄집어낼 때 본 것으로 족했다. 그것이 여러 명이 섞여 있는 모습은 상상을 하기만 도 벌써 속이 메슥거렸다. 경찰이 옥상에서 내려오고 정문 앞에 서 있던 구급대원들은 경찰관들과 함께 지하로 내려갔다.

팔 년이 지나고 뉴스에서 그 교회에서 다시 세 명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남편이 선영을 흘끔 쳐다보았다. 선영은 남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시댁은 모두가 독실한 기독교 신도였지만 남편이 설득해 선영에게교회에 가자는 말 하지 않는다. 그러그 교회의 기억이 계속 되살아나는 일 반길 리가 없었다. 그건 선영도 마찬가지였다. 선영은 뉴스를 보고 일면 부럽기도 했다. 열심히 선행을 해서 빚이 없다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빚을 가지고 있나? 얼마나 가지고 있나? 팔 년 전 모방자살의 충격이라면서 정신과 진료를 받고 그것을 핑계로 교회에서 발걸음을 끊었지만 정혁의 확신은 언제나 부러웠다. 목사라고 부르지 말라달라는 말도 새삼 생각났다. 여자의 나체를 보고도 미안하다고 하던 남자. 아마도 생식은 생태계의 원리이지 우주의 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리라. 그녀는 다시 테러리스트를 생각했다. 신념이 확고하면 부럽지만 그 신념이 남을 파괴한다면 그건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 정혁은 부러웠다. 그러나 역시 그는 뒤이어 자살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정혁은 가스라이팅을  테러리스트일 수도 있었다. 오랜만의 선영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생각과 달리 너무 빨리 둘째가 생겼을 때의 혼란스러웠던 머릿속만큼이나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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