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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Nov 24. 2024

전문가와 전문가 같은 것

20여 전에는 지하철을 타면 휘황찬란한 색깔의 광고들로 장식된 천장을 바라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걸 공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나에게는 지하철을 타고 있는 동안 그렇게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더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지금은 빈 공간이 많고 해 봤자 대학교 광고나 시험약 복용 공고 같은 것들이 주로 붙어 있지만 당시 IT 거품으로 인해 신생 닷컴기업들이 난립했을 때는 수없이 많은 서비스들이 튀는 도메인을 가지고 생기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곤 했다. 지금은 닷컴 기업 열풍이라고 하면 단순히 별 생각이 들지 않겠지만 당시에는 휴대폰 게임을 만드는 곳부터 대학 시간표 짜는 웹사이트까지 별의별 서비스들이 닷컴 등이 붙은 도메인을 가지고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가입할 때 주민번호까지 요구하더라도 별다른 법적 규정도 존재하지 않을 때였다. 그러다 보니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는 입장에서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처음 보는 광고들이 생겨나고는 했던 것 같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비슷한 현상이 SNS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것부터 그럴듯한 것까지 별별 전문가들이 나타나 백 페이지도 되지 않는 전자책을 제공하느니 한 번만 따라 하면 되는 강의를 제공하니 하는 것이다. 관심이 없던 분야가 대부분이어서 당연히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기지만 관심 있는 분야였다면 나도 분명히 넘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꼭 그런 광고가 아니라도 주식 차트를 분석해서 손실 없는 투자를 만들어준다는 것도 사기당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고, 일단 광고를 돈을 들여 계속한다는 소리는 수익이 있기 때문에 '투자'를 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20여 년 전, 지금은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타로카드를 접했을 때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신촌인가 어딘가로 카드를 구입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매장에 들어가니 어떤 여자분이 검은색 망토를 입고 짙은 화장에 어두운 색상의 매니큐어를 칠한 상태로 청소를 하고 있었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당시에 재미있게 보던 '버피, 뱀파이어 슬레이어'에 나왔던 윌로우라는 마녀가 떠오를 정도였다. 실제 마녀일 수는 없으니 콘셉트일 것 같기는 한데 그 콘셉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어서 그렇게 입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도 그렇게 믿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때 웨이트 카드를 집어 들자, 그녀가 한 말이 있었다.
"다들 그 카드에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그려 넣어서 그걸 보고 그 느낌으로 짐작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카드 상자들을 구경하는데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네?"
하고 쳐다보자 그녀는 다시 말했다.
"그 카드가 쉽다고 하는데, 그렇게 그림을 혼자 이런 느낌이 드니까 이런 뜻이야,라고 하면서 해석하면 안 된다고요. 그림마다 의미가 있어서 공부를 해야 해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 싶었지만 나는 카드가 신기해서 갔을 뿐 더 지식이 필요한 것도, 대화가 필요한 것도 아니라서 그냥
"아, 네. 신기하네요."
하고 말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림마다 있다는 그 의미를 가르쳐주는 강의가 있으니 돈을 내고 배우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내가 알아듣지 못해서 다행히 그냥 넘어갔던 것이었다.
그 장면이 생각났던 이유는, 실제로 그렇게 잘 알아맞히는 사람이라면 주역이건 타로 카드건 대선 때마다 어마어마한 돈을 긁어모았을 텐데 그렇게 한가하게 손님을 기다리며 카드를 팔고 있을 시간이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돈 버는 법, 심지어 돈 버는 마법(실제로 있다. 그런 주파수가 있다거나 끌어당김의 법칙의 마지막 잃어버린 조각, 그건 시크릿의 저자들조차 스스로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 소개하지 않은 것인데 일반인들은 일부러 그 부분을 배워야 한다나)을 가르쳐주는 전문가를 자처한 광고들이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무리 자기가 보기에조차 헛소리 같아도 자기가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그 부분을 강화하는 쪽으로, 혹은 동조하는 쪽으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고 꼬드기의외로 쉽게 지갑을 열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도 조금이라도 그런 부분에 대해 책을 써서 혹은 강의를 만들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예를 들어, '혼잣말로서의 글쓰기를 통한 자기와의 대화', '글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에 대한 이야기를 조각 지식들 몇 개를 모아서 전문가인 척한다면, 그래도 관심이 평소에 없었던 사람에 비해서는 비교적 체계적인 정보가 될 테니 말이다. 출판을 시켜준다는 글쓰기 강의들을 본다면 이건 그렇게 결과물까지 만들어줄 필요는 없으니(만들어 준다면 더 좋겠지만) 더 쉬워 보이기도 한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남을 케어하는 척하는 것도 그렇고 실제로 케어를 해야 하는 것, 또는 남들과 지속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것에 대해 그다지 끌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선택의 범주에서 벗어나서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체계화하는 것도, 그걸 특별한 양식으로 정리해서 전달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골치 아픈 일이다.
글쓰기는 스스로를 치유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때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꿈을 꾸면서 완화하는 것 또한 정상적인 반응인 것처럼 누군가에게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해소된다는 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채택하고 있는 방법이지만 누구도 듣지 못한다고 해도 내가 다시 읽어볼 수 있는 글의 형태로 쏟아내는 것 또한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 자신이 경험으로 확신하는 만큼 거기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글로 표현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누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좋기 때문일 뿐이다. 거기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억지로 멈추지 않을 예정일뿐이라는 뜻이다. 어떤 것이든 교훈은 나누는 것이 좋겠지만, 일부러 나누려고 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이런 고백과 같은 기록으로 누군가 도움을 얻는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그냥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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