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몬테네그로에서 구입한 수첩에 써 놓고 방치했던 글들을 키보드로 옮겼다. 전부 한 건 아니지만 그대로 몇 시간은 걸린 것 같다. 단순히 옮겨 적는 게 아니라 비문이나 흐름에 어긋나는 것들을 일일이 수정해 가면서 진행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글을 쓰는 건 재미있지만 쓴 글을 수정하는 건 그만큼의 재미도 없고 또 단순히 쓰는 것보다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늘 느끼지만 글을 쓴 기억만 있고 아이디어가, 특히 예시들이 정말 내 아이디어였다는 것이 신기할 때가 있다. 이건 한편으로는 스스로 칭찬하는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남의 글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라는 고백이기도 하다. 사실 그런 느낌이 들면 고쳐야 할 부분이 빨리 눈에 띄지 않는다. 새로 읽으면서 내용을 파악해 가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쓴 지 얼마 되지 않은 글에 비해 흐름에 맞지 않는 부분을 잡아내기가 더 어렵다는 의미가 된다.
그나마 지금 글을 옮기면서 얻은 수확은 현재 내가 글을 쓸 때는 몬테네그로 코토르에서, 구체적으로는 올드타운 바로 바깥쪽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서 구입한 수첩을 사용하는데, 글을 쓰면서도 정확히 그 글의 양을 모르고 있었다. 그전에도 몇 번 옮겼지만 생각을 간단히 메모한 것을 보고 글을 새로 쓰는 쪽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에 정확히 수첩에서의 얼마 정도의 길이가 몇 자 정도에 해당할지는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이제야 제대로 수첩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겨 쓰게 되니 어느 정도가 적당한 지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정확히 한 줄에 몇 글자인지는 글씨의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글 한 편을 쓸 때 기준으로 삼는 2,000자가 이 수첩으로는 대략 여섯 페이지 정도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번이나 옮겨 쓰기를 하려고 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귀찮은 것도 귀찮은 거지만 수첩 특성상 펼쳐 놓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니 두 손으로 해야 하는 타이핑이 힘들었던 것이었다. 며칠 동안 영화 '멜랑콜리아'에서 책을 펼쳐 놓는 서가처럼 줄로 고정할 수 있는 독서대 같은 게 있을까 찾았지만 결국 포기하고 후에 가로로 된 철사로 페이지 가운데 부분을 누르게 되어 있는 소형 독서대를 발견해서 주문을 했다. 그 독서대를 받고 수첩을 펼쳐 놓고 보니 베끼기에도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 시기에 시공사의 헤밍웨이 전집을 중고로 입수해서 읽느라 또다시 옮겨 쓸 시간을 미루어 버렸다. 그래도 언젠가 해야 할 일이고 수첩 한 권을 다 쓰고 나면 더더욱 하기 싫어질 것을 알기에 설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모처럼 좌식 책상 위를 치우고 수첩을 펼쳐 놓았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이것도 좋아서 하는 일이라 귀찮으니 어쩌니 해도 결국은 귀찮은 게 전부다. 남의 글이라면 돈 받고 할 일이지 이렇게 휴일에 할 일이 아닐 것이다. 내가 쓴 글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가치라도 끌어내겠다고 하는 일이니 그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다.
글을 옮기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맥주 한 잔과 좋은 풍경이 있으면 더 좋겠다고. 그런데 그건 글을 다룰 때는 항상 하는 생각이긴 하다. 글을 쓸 때에도, 베낄 때에도, 읽을 때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