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과 의도1

by 루펠 Rup L

표현하고자 의도한 것과 의도한 것을 물리적으로 구현한 표현, 그리고 그 물리적인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작가가 의도를 만들어낸 배경이자, 그 의도가 살아 움직이는 공간인, 작품이 만들어질 당시, 혹은 그 순간순간 스냅처럼 남아 있는 우주의 조각을 상상해 내고 그 상상을 통해 만들어진 그 사람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그 사람에게만, 그 작품을 감상하는 그 순간에만 그 작품이라는 필터를 통해 감각하거나 혹은 그 작품이라는 필터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매우 독특하고 일회적이며 더 이상 유일무이할 것이 없는 그런 우주가 생성된다.
그러므로 작품을 통해 느껴지는 것 자체도 충분히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이 만들어지는데 최초의 동인인 그 <의도>를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어떤 작품이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마지막에 세상을 떠나며 주인공이 중얼거리는 한 마디가 전 세계적인 유행을 몰고 오는데, 정작 작가가 그 글을 쓴 의도가 단지 '심심해서'였다면 어떻게 될까? 비현실적이라면 해리 포터를 생각해 보자. 그렇게 상상력을 자극해서 어마어마한 양의 우주를 만들어낸 그 책이, 원래 의도는 그냥 돈을 벌기 위해서였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우주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솔직히 알 수 없다. 글에서는 그런 배경은 전혀 언급되고 있지도, 심지어 유추할 근거도 없다. 단지 이 경우에는 이야기 자체가 머금고 있는, 작가가 실제로 가졌을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는 스스로의 의도만이 있을 뿐이고, 상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기에 스토리가 가진 의도만으로 퍼져 나갈 수 있었다. 즉, 글쓴이의 개인적인 목적은 독자들의 머리에서 우주를 상상해 내는 데에서는 철저하게 무시당한 것이다.
이것은 절대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판단>이 아니다. 단지 사실일 뿐이다. 그런 배경을 알게 된 사람들은 기존에 그 책을 읽으면서 상상한 우주를 조금은 더 무미건조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테지만, 그 우주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상상하는 자신도 잘 모를 테니 그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오는지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게 된다. 이러한 생각이 든 이유는 그림 그리는 영상을 보면서, 그리고 그림들과 그림 그리는 것에 관심이 생기면서 그림에 유독 의도가 드러나지 않는 우연한 작품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글도, 음악도 의도 없이 마음대로 마구잡이로 만들면 작품이라 할 수 없는 것이 나오는데, 미술 작품, 아니, 예술 전반에서는 그런 것이 계속 나오는 이유가 무엇이고, 그러면 우연에 기대는 마음은 작품에 내재된 '의도'를 얼마만큼 왜곡시킬 수 있는지 궁금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