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과 의도2

by 루펠 Rup L

그러나 주말 내내 고민한 시간에 비해 결론은 초라하다. 앞에서 예로 든 바와 같이, 작품 자체는 의도 없이 존재할 수 없으나, 그것이 곧 작품을 보면 의도를 알 수 있다는 뜻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작품이 전달하는(<전달하'려'는>이 아닌) 느낌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이 내 앞에 그 작품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그뿐이다. 소설도 울며불며 읽었다면 그 슬픔이 그 작품을 내가 읽은 이유이다. 작품이 만들어진 이유, 그러니까 작가가 그 작품을 만든 의도와 그 작품이 그 자체로 감상자에게 품고 있는 의도는 서로 다르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면서 가지는 의도는 곧 작품을 만든 이유이다. 작품이 품고 있는 의도는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과, 그 감정을 통해 탄생하는 우주이다. 작가는 작품을 만들면서, 작품이 고유의 의도를 품기를 바라기만 하면 된다. 일단 작가의 손을 떠나고 나면, 나머지는 작품의 몫이다.
그러면, 페인트를 뿌리고 마는 작품도 그렇게 우연의 산물일지라도, 푸른색이 대다수를 차지해서 창백한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떠올리게 하는 의도를 작품이 가졌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있기만 하면, 그리고 감상을 하며 비슷한 느낌을 받기만 하면 충분할 것이다.
그것이 내 결론이다. 몇 달 안 가서, 혹은 몇 년 안 가서 글을 쓰다 보면 이렇게 분리해서 생각하기에 더욱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작가가 글을 쓰면서도 작가의 삶은 계속되는데,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글에 녹아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 작가는 감정을 '선택'한다. 그래서 우울한 작품을 쓰고서도 작가는 우울하지 않을 수 있다. 웃긴 작품을 써서 읽을 때마다 낄낄거리도록 할 수는 있지만 글 자체를 쓰는 내내 낄낄거릴 수는 없다(적어도 문법이나 단어 같은 진지한 부분에 계속 신경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우연에 기대는 기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일관성 있게 도박하듯 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작가에게는 모르겠지만, 고유의 의도를 내세워야 하는 존재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작품에게는 존재를 부정하는 처사가 될 수 있다.

이전 01화표현과 의도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