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아니 말의 표면에 있는 의미와 독자가 자신의 인생을 바탕으로 그 의미를 다시 제련하는 과정은 신비롭기는 하지만 보다 깊이 캐 들어가기에는 철학의 영역이 걸쳐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산 정상에 올라 숨 막힐 듯한 풍경에 자기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그 순간을 체험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시 그때를 되돌아보면서 회상에 잠기던가, 다시 산을 오르는 것뿐, 나에게 그런 느낌을 준 것이 무엇인지 찾겠다며 그때 흐릿하게 내려다 보였던 바로 아래 아파트 단지의 면적, 구름 위로 보였던 봉오리의 개수, 봉오리가 바위였는지 숲이었는지, 당시의 조도는, 습도는, 기온은 어느 정도였는지와 같은 정보들을 알아보는 게 아닌 것처럼, 하려면 할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시간 낭비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었느냐, 하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만약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훨씬 형편없는 글을 썼을 것 같지도 않다. 생각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그럴듯하고 신비롭기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신비롭다는 그 지점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평야에서 멀리 바라보면 기찻길의 레일이 저 멀리서는 합쳐지는 것 같아도 아무리 그 모습을 보며 걸어가 보았자 간격이 실제로 점점 좁아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보람은, 출발지에서 이만큼 와 보았다는, 전혀 상관없는 데서 올뿐이다.
그렇지만 표현이라는 것과 그 아래 깔려 있는 의미라는 이중적인 개념은 표현과 의미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작가가 의도한 의미가 없더라도 작품은 스스로 자체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표현은 바닷물 위에 떠 있는 빙하와 같아서 그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커다란 의미가 없다면 표현이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