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표현이라는 말은 혼자 존재할 수 없고 언제나 목적어가 따라가야 하는 단어인 만큼, 표현 자체가 대상이 있어야 존재 가능하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가 빙하를 보듯이 표현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림이다.
글을 읽고 떠오르는 이미지와 눈앞에 있는 그림은, 의미가 깔려 있다는 점에서 같다. 즉, 글을 읽고 이미지가 떠오르는 데서 끝나는 건 단순한 독서일 뿐 작품 감상의 단계까지는 가지 않은 것이다. 작가가 의도한 것이든, 우리의 경험에 호소해서 그림 또는 글이 만든 이미지가 만들어낸 것이든 의미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처음에는 작품의 의미는 곧 작품을 만들면서 작가가 강조하려고 한, 말 그대로 제작 의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추상화를 보더라도 작가는 그냥 우연히 만들어지는 이미지를 가지고 나왔을 뿐인데 뭔가 시끄러운 그림들이 있다. 이미지 자체에 내재된 의미는 심지어 작가의 의도가 실제로 있었다 해도 모두 무시하고 덮어버릴 수 있다. 반대로, 잘못 사용한 단어, 잘못 섞은 색으로 인해 작가가 또렷한 의도를 담으려고 했지만 실패해서 희석이 될 수도 있다.
글이, 그림이 스스로 가지는 의미를 존중해야 할까? 창조주로서 내 의도를 똑바로 세우려고 해야 할까? 내 의도보다 작품이 우연히 가지게 된 의미를 사람들이 더 좋아하게 되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의도를 의심받는 것은 내 의도의 존재를 인정받는 셈이니 오히려 기뻐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