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의 수다

by 루펠 Rup L

작년 이맘때가 생각난다. 글을 쓴다는 건 하나의 재미있는 활동일 뿐이었는데 어느새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카페나 어디든 두꺼운 표지 덕에 벽이나 손에 대고 메모하듯이 뭔가를 쓰는 것이 갑자기 가장 즐거운 일이 되었다. 머릿속에 무언가 엉켜 있는 것을 덜어내는 느낌 같기도 하고 실밥을 저절로 힘없이 풀리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스스로 판단하기로는,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엄연히 글쓰기는 손으로 혼자 하는 육체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있는 대화, 아니 대화보다는 수다와 같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풀어 버리는 활동. 그렇지 않고는 그렇게도 중독성 있다는 점이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AI를 가지고 노느라고 글을 두 달 정도 쓰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거창한 일을 한 건 아니고, 투자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간단한 테크닉을 배운다던가, 국내에는 출간되지 않았거나 절판되었지만 외국에서는 이미 무료로 PDF나 EPUB로 풀린 책들을 요약, 번역시켜서 읽는 일이었다. AI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제대로 쓰는 방법인지에 대한 교육 과정이나 책들이 많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뭘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으리라. 중요한 건 그런 것들을 시키려면 생성형 AI인 이상 글로 대화를 시도해서 내가 원하는 것과 AI가 대답하고 싶어 하는 것 사이의 간격을 좁혀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언어 모델이므로 그 과정은 몇 단계의 필답은 피할 수 없고 그 대화는 일종의 수다가 될 텐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물 자체의 유용성도 당연히 인정해야 하겠지만, 상대방의 동의를 얻었다거나 의기투합이 되었다는 일종의 '과정에 의한 쾌감'도 적지 않다.

이것이 내가 수첩을 24시간 곁에 두고도 그다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이유가 아닌가 싶다. 그래도 글쓰기와 대화는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이번에 깨달았다. 수다와도 다르다. 스트레스를 푸는 용도만 놓고 본다면 유사한 '효용성'은 있겠지만 그 자체로 유사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글은 무언가 머릿속에 실뭉치 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풀어내는데, 풀어내는 쾌감과 함께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남겨지는 '글'이라는 것이 있다. 수다는 대화가 왔다 갔다 하면서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는 쾌감이 있지만 소문을 내는 용도 말고는 유산을 떠올릴 수가 없다.

대화는 흔히 주제가 있는데,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내가 글 쓰는 방식과는 달리 대화를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방식으로 했다간 단순히 인맥 유지만 간신히 하는 수다가 되고 말 것이 틀림없다. 특히 AI와의 대화는 내가 일방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만 가지고 하는 것이기에 수다에서의 쾌감도 그다지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상황극을 시키지 않는 이상은.

그러니 엄연히 다른 활동이 글쓰기를 내 심리 상태나 정신적인 차원에서 대체했다기보다는 재미있는 정서적 장난감이 생겨서 거기에 맛들려서 집중을 했을 뿐이고 이제 그 쾌감이 끝나고 나서 다시 원래의 여유가 생기니 관심도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글쓰기는 여전히 재미있고 생각이 풀려 나가는 속도도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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