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하지 않는 상태는 무언가를 하기 싫어하는 상태와는 다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뭔가가 하기 싫은 것도 아니고 게으른 것도 아니다. 몇 주 동안 수첩에 있는 글을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을 하지 않았지만 게을러서도 아니고, 하기 싫어서도 아니었다. 단순히 해야 할 많은 다른 일들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글을 쓰는 것과 관련이 없는 일들만 실컷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러시아에서 나온 'Demon of Revolution'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러시아 혁명기의 레닌과 파르부스를 다룬 역사 드라마인데, 몇 년 전 우연히 보았다가 다시 보고 싶어 지니 볼 방법이 없어서 아마존으로 영어 자막 버전의 DVD를 구입했었다. 이것도 도착한 것은 일 년이 넘었지만 막상 받고 나서는 한동안 보지 않고 있었다. 이것 역시 보려면 시간을 내어 보아야 하기에 일상의 균형을 깨지 않고 넘어가다 보니 이제껏 포장도 뜯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드디어 포장을 뜯고 휴대용 DVD 플레이어에 전원을 꽂고 뚜껑을 열었다. 옛날에는 DVD를 컴퓨터로도 많이 보았지만 요즘은 노트북에 DVD 드라이브가 없어서 다시 10년 넘은 DVD 플레이어를 꺼내게 되었다. 최신 노트북의 날렵한 키감보다 오래된 노트북의 뭉툭한 키감이 생각보다 글을 쓰기에 더 좋게 느껴지는 것처럼, 오랜만에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의 과도기에 개발된 제품을 꺼내 보니 화질 좋은 대형 모니터로 보는 것보다 좀 더 몰입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화질도 마치 브라운관 TV를 보는 것 같이 약간 흐려서 멀리서 보아야 하지만 자막 크기는 또 크지 않아서 자막을 읽으려면 조금 가까이에서 보아야 하고 자체 스피커의 소리도 약간 쨍한 느낌이 나는, 이 제품이 생산된 2013년도에는 최신이라는 이유로 눈감아주었을 단점들이 지금 와서는 향수를 일으키는 요소들이 되었다.
이 영화에도 레닌이 글을 쓰는 데 사용한 타자기가 나온다. 오래된 기기(10년 된)로 보는 드라마(100년 전 배경)에 나오는 타자기. 아마도 러시아어 타자기였을텐데 러시아가 기술력을 뽐내고 싶어서 안달하던 것보다 훨씬 이전의 차르 시대의 타자기는 어땠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오래되었지만 아직 배터리로 십여 분은 재생이 된다. 갑자기 꺼질 때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 정도만 재생해 보고 다시 전원을 연결하였다. 오래된 기기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주는 쾌감이 있어서 계속해서 만지작거리게 되었다.
옛날 안방에는 LP 디스크를 재생하는 턴테이블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였던가. 집에 있던 전축에서 나는 가장 아랫단에 위치한 두 개의 카세트 데크만 사용했지만 부모님은 가장 윗단에 있던 턴테이블도 사용하셨다. 지금도 가끔 LP가 나오고 나 역시 두어 장 가지고는 있지만 그때 부모님이 노래('옛 시인의 노래'가 기억난다.)를 듣기 위해 살며시 LP를 놓고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바늘이 이동해서 잠시 치지직 거리고는 곧장 음악이 나오던 기억처럼 낭만적이지는 않다. 낭만을 찾는다면 오히려 손으로 바늘을 옮기는 방식인 내 턴테이블이 더 낭만적일지도 모르고, 기억에 따라 똑같은 기능을 가진 고급 제품을 구입하면 어떨까 싶기도 하지만 당시의 자동과 지금의 자동은 느낌이 다르다. 그때 신기하던 기술이 지금은 당연한 것이 되어 가고 그때의 한계였던 것이 지금은 불편함에 불과한 것이 되기도 한다.
한때 종이책과 전자책이 대결 구도를 가진 것처럼 수시로 화두가 된 적이 있었다. 지금 봐서는 종이책으로 읽을 만한 책이 있고 전자책으로 읽어도 충분한 책이 있다는 정도로 정리된 것 같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무엇보다도 때로 키보드로 글을 쓰는 것보다 수첩으로 쓰는 것이 낫다는 점에서, 글을 쓰는 행위와 글을 읽는 행위는 인간의 행위에서 정반대 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면 당연히 종이에 글을 쓰는 만큼 종이로 읽고 싶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고 보니 문득 요즘도 종이에 써지는 장편소설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10년 남짓한 세월 사이에 구닥다리가 된, DVD나 CD재생밖에 아무 기능 없는 기기가 내게 던지는 말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2050년에 윈도즈 11이 설치된 2025년 산 노트북을 키감을 대체할 수 없다며 고집하며 보안설정 때문에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도 없는 상태로 글을 쓰면서 노트북에 저장된 음악을 유선이어폰으로 듣고 글을 다 쓰고 나면 USB 메모리로 파일을 복사해서 옮기는데, 그 시대에는 훨씬 작은 USB포트만 사용하기에 젠더를 두세 개씩 이어 붙여서 써야 하는 상황을 상상해 본다. 지금 386 시대의, 두께가 한 10센티미터는 족히 되는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할까? 혹은 80년대의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는 것은? 그렇다고 타자기라고 할 수는 없다. 타자기는 엄연히 다른 부류이다. 글을 쓰는 용도보다는 프린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즐거운 이유는 몇십 년 뒤에도 글을 쓰고 있으리라는 전제로 하는 상상이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