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이다. (지금 동물이 아닌 존재라는 말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쓰려고 했으나 처음부터 새어 버리면 다른 글은 몰라도 이 글은 확실히 망칠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먼 옛날, 석기시대를 상상해 보자. 물러서 날카롭게 깎아지는 돌이 있고 우리는 모두 그 돌이 어디서 나는지 알고 있다고 하자. 그리고 다른 곳에는 엄청나게 단단한 돌을 구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이미 돌멩이가 된 단단한 돌의 부스러기만 가지고 와서(그 돌은 우리 기술로는 아직 깰 수 없으니까) 날카롭게 깎아지는 돌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중의 도구를 가지게 되었다. 돌칼과, 그 돌칼을 만들 수 있는 단단한 돌. 그러나 주방에서 과일만 깎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칼이라고 해서 무조건 아무 곳에나 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존 윅이 아닌 이상 화살촉만 한 귀여운 돌칼로 살인 의지와 생존 의지를 모두 실어서 사람을 공격하는 멧돼지를 사냥할 수는 없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은 돌칼에 대해서는 아직 종류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해도 최소한 다양한 크기에 대한 욕심은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관심은 또다시 단단한 돌로 향한다. 무른돌로 그다지 긴 뭔가를 만들지는 못했겠지만 어쨌든 상대적으로 큰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과도로나 쓸 만한 돌칼을 만들 때 사용한 작고 단단한 돌은 마지막에 날카롭게 한 번씩 더 다듬는 데에야 효과적이었겠지만 처음부터 붙들고 생각대로 깎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크고 단단한 돌을 찾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도구의 다양화는 그 도구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나 도구의 다양화를 가지고 온다.
이것들은 물리적으로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다. 결과적으로 효율은 시간에 관련된 요소이기 때문에 어떤 도구든 다른 도구와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물리적이지 않은 부분은 어떨까?
나는 똑같은 과정은 불가능하겠지만 나름대로 내가 사용하는 글쓰기 도구들을 경쟁을 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떤 글의 종류는 어떤 도구를 사용한다는 기준이 없는 것은 내 도구들끼리는 경쟁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나 경쟁을 시키면 어떤 일이 생길지 궁금해졌다.
내가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도구는 다음과 같다.
수첩. 노트북(white writer app). 핸드폰(pure writer app). 보통 글을 쓸 때 사용하지 않는 도구로는 타자기가 있다. 가지고는 있지만 손에 익지 않아 맞는 키를 누르고 제때 스페이스바를 누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금세 지나버리고 말지만 그때까지 엔터는 한 번 칠 수 있을까 말까이다.
수첩에 글을 쓸 때는 요즘은 짧은 볼펜을 쓰지만 기다란 볼펜도 몇 자루 있고 만년필도 있다. 만년필은, 내가 항상 수첩에만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보니 깜빡 잊고 나면 막상 글을 쓰려고 할 때 잉크를 채워야 하는 일이 잦아서 확실히 경쟁력이 떨어진다. 한때 종이 위를 지나가며 내는 서걱서걱 소리를 즐겼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소리가 글을 잘 써지게 하기보다는 방해하는 요소가 되는 일이 더 많았기에 그 장점도 단점이 되고 말았다.
긴 볼펜들은, 심이 가는 것은 책에 메모를 하기 위한 것이므로 글을 쓸 때는 사용하지 않아 예외이고 한때 묵직한 볼펜을 좋아했는데 수첩에 몇 페이지를 쓰고 나니 한창 짧은 볼펜을 사용하던 중이어서인지 손가락에서 손목까지 뻐근한 느낌이었다. 그것이 경쟁력씩이나 깎아먹는 요인일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실수로 짧은 볼펜을 챙기지 않았을 때 정도만 사용하게 되었다.
핸드폰은 마지막에 인터넷에 옮기기 직전, 맞춤법을 재확인하고 인터넷으로 공개하는 일에만 쓰고 보통은 잘 쓰지 않는다. 가끔 외장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해서 노트북에 글을 쓰듯이 쓸 때가 있기는 하다. 키보드는 기계식 키보드를 선호하는데 무게도 있고 해서 항상 들고 다닐 수는 없다 보니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고 나니 결국 컴퓨터에 작성하거나 수첩에 쓰거나 하는 두 가지가 내게는 경쟁력 있는 도구이다. 이 두 가지도 그냥 집 안에서는 굳이 수첩을 쓸 필요가 없으니 컴퓨터에 입력하겠지,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지금 이 글도 집에서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수첩에 쓰는 중이다. 컴퓨터에는 주말 등 쉬는 날 휴식 차원에서 수첩의 글을 옮겨 쓰는 일이 많다. 그러나 글의 종류별이 아니라 습관이나 심리적인 이유로 대략 새 글은 수첩에 쓰고 그 글을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해서 컴퓨터로 옮기고 이것을 핸드폰으로 불러와서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것이 통상적인 과정이고 때때로 수첩을 건너뛰고 컴퓨터에 직접 입력하는 경우가 예외적으로 생기는 셈이다.
2020년에 폴 오스터가 쓴 'My Typewriter'에 보면, 타자기로 글을 쓰면 컴퓨터와 달리 글을 날릴 염려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옛날 1900년대 초처럼 손으로 글을 쓰고 그 손글씨를 알아보기 쉽게 하기 위해 타자기로 옮겨 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타자기로 글을 쓴다는 뜻인 것 같다. 어디선가에서는 처음부터 타자기로 치는 게 아니라 출판사에 넘길 때 타자기로 작성한다고 읽은 것 같기도 하지만. '작가란 무엇인가'에서였던가.
그렇다면 집에서는 수첩 대신, 휴대폰 대신, 노트북 대신 타자기를 써도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어차피 옮길 거니까. 너무 빠르게 글을 쓰면 안 되는 병에 걸린 나로서는 타자기도 컴퓨터로 분당 몇 타를 친다며 경쟁하듯이 칠 일도 없으니 조금만 연습해도 될지 모른다.
도구가 바뀌면 글이 바뀌거나 하는 일은 없다. 도구가 다양해져서 글이 다양해지지도 않는다. 포도를 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포도이고 그다음이 틀과 압력인데 포도 품종이 일정하고 압력만 제대로 가할 수 있다면 그 틀을 사람이 몸무게로 누르든 기계로 조이든 전혀 중요하지 않듯이 내가 살아가고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그리고 글을 쓴다는 의지만 바뀌지 않는다면 나머지는 편의성 같은 면에서나 신경 쓰일 뿐 내 글에서는 하등 영향이 없는 일일 것이다. 말 그대로 내일 세상이 멸망해도, 혹은 내 글을 읽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고 누구나 내 글을 읽고 나를 욕한다 해도 그게 나에게 혹은 내 글이 나아지는 데에는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개인적으로야 신경이 아주 많이 쓰이기는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