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이직러가 본의 아니게 되어버린 나, 그리고 내가 사랑한 사람들
연말만 되면 브런치가 들어오고 싶은 건 나만의 관성인가 보다.
그렇게 자주 글을 쓰자고 다짐해 놓고는 현실세계는 결코 내가 글 쓰는 데 집중할 만큼의 여유를 오래 주지 않는 것 같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후후- 끄기 바쁜 시기가 오면 또 내 이야기를 쓰는 건 뒷전이 되어버리는데
잠깐, 방금 위 문장을 쓰다가 문득 깨달았다. (진심으로 이래서 사람이 활자를 가까이하고 글을 써 버릇해야 한다!)
나는 문제가 생기면 ‘나’를 제일 뒷전에 두는구나...!
내가 그 순간 겪는 감정이나 혼란스러운 상황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하는 고민들
그런 걸 기록하고 문제를 직면하기보단 일단 뒤로 미뤄두는 편인데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가...
갑자기 문제점을 하나 찾아냈다. 순전히 나 좋으려고 글을 쓰는 구만 이거 이거.
아무튼 오늘 글을 쓰는 내용에도 이런 내 문제점과 연관된 에피소드가 있긴 하다! (적합한 서론이었던 걸로...)
올해의 나는 작년 이맘때 내가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의 변화를 겪고 그 속에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우선 가장 큰 변화는 직무 변경 이직이겠지.
대학 졸업 이후 약 3년 넘게 해 오던 프리랜서 아나운서 일을 단념했다.
이상하게 딱 2023년으로 해가 바뀌고 얼마 안 돼서 갑자기, 그렇게나 되지가 않아서 나를 힘들게 했던 ‘포기’가 쉽게 되더라.
‘아 나 더 이상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 물론 여전히 좋아하지만, 이제 내게는 그 좋아함만이 힘이 되지 않아.‘
아무래도 나이가 이제 정말 20대 후반에 부인할 수 없이 접어들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던 것 같고,
또 나 자신에 대해서 점차 자세히 알아가고 또 인정하게 된 점도 큰 영향을 줬던 것 같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피터팬과 웬디처럼 인생을 살 수는 없는 성격이더라.
현실의 밥벌이가 더 눈앞을 가리고, 불안정한 몽상가로 살기엔 미래가 많이 걱정되는,
언제까지고 눈에 띄고 예쁜 빨간 코트를 입을 수 있는 스타의 끼를 갖췄다기보다는, 어느 순간 회색 코트가 주는 무난함이 더 편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해서 아나운서 일을 할 때는 일을 하면서도 아등바등 날 얼마나 괴롭혔는지 모른다.
그래도 너무 사랑하는데 어떡해, 나랑 안 맞는 걸 어렴풋이 스스로도 느끼지만 그래도 그 일이 너무 좋아서 놓을 수가 없는 걸 어떡해.
그 사랑이 결국 나를 탈탈 털어가고 있구나, 실제로 많이, 정말 많이도 털려보았을 때 그제야 인정할 수 있었다.
이 마저도 내 특성이었던 거다. 될 때까지 정말 구질구질하게 끝을 봐야 마음이 정리되는 사람.
나도 쿨하게, 적당히 간 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바로 다음 계획으로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늘 그런 사람을 동경해 왔다.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서 스스로를 절제할 수 있는 사람, 마음먹은 대로 지켜낼 수 있는 사람.
그 의지를 나도 갖고 싶었고, 또 나도 그런 의지가 있다고 박박 우겨가며 살았는데 그게 안되더라.
그게 안된다는 것마저 인정해버리고 나니까 편해졌다.
편한 건 나태한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지가 부족한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뭐 물론 지금도 누군가는 이런 나의 인정이 현실에 안주한 거라고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뭐 할 수 없다.
맞다, 난 현실에 안주하기를, 그래서 현재가 편해지기를 선택했다.
아무튼 그렇게 바꾼 직무는 무엇이냐 하면 영어 교재 개발(에디터)이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고 꾸준히 어학성적을 업데이트해와서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었던 점,
또 아나운서 일을 할 때 또 그전에 준비를 하던 때에 기자와 콘텐츠 기획 관련 일을 해봤던 점,
또 가만히 앉아 혼자 일하기를 좋아하는 성향 등을 고려했을 때 이 일은 마땅한 관련 경력이 없는 나도 새 마음 새 뜻으로 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이 일을 가볍게 보았던 건 결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도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뜻!)
아나운서로 촬영하고 있던 프로그램이 마무리되고 공백기였던 2월부터 4월 초중순까지는 동네에 있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긴 공백기가 있는 취준생의 입장으로 돌아가 신입을 뽑는 회사 몇 군데에 지원을 했고, 지원했던 두 곳에서 면접을 볼 수 있었다.
(틈새 기록 하나 더! 이때 만났던 카페 사장님과 다른 아르바이트 동생들도 참 좋은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괜찮다 나는 나만의 속도가 있고 내 인생 내가 사는데 눈치 볼 것 없다!’ 마음먹어도 자꾸만 움츠러드는 나에게
본인의 퇴사 경험을 나눠주면서 힘들 때면 언제나 퇴근하고 달려오라고 해줬던, 한두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던 귀여운 우리 사장님과
언니를 살뜰히 챙겨주고 뭘 하나 먹어도 껴주고 나눠주던 착한 동생들. 정말 난 어딜 가도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늘 생각한다.)
아무튼 그 좋은 사람들의 보살핌 속에 나는 내게 주어진 두 번째 면접에서 바로 나를 받아줄 회사를 만나 신입 교재 개발자가 되었다.
그렇게 입사를 했던 게 4월 말.
3개월 수습 생활을 끝내고 정규직이 되었을 때 느낌은 정말 이상했다. 내 인생에 정규직이라니.
아나운서 일을 할 때는 워낙 그런 처우 면에서 말도 못 할 정도로 열악했기 때문에
언제나 곧 자리를 옮겨 다닐 준비를 해야 하는 보따리장수의 마음으로 살았었다.
남들은 길게 해도 2~3년이면 끝낸다는 취준을 나는 취업을 하고도(사실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줄 알았다 정말) 계속했어야 했고
언제나 기약 없이, 내 주도권은 없이 나에게 주어질 다음 일을 기다려야만 했는데
이제는 언제나, 가기 싫어도(ㅎㅎ), 관성적으로 찾아가야 할 내 자리가 있다는 자체가 감사했다.
연봉이 얼마나 되는지, 나는 언제쯤 승진을 할 수 있을지, 이곳보다 더 좋은 곳으로의 이직은 언제가 좋을지
물론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감사한 마음이 더 컸다.
따뜻하고 안온한 내 자리.
그래서 사실 웃길지도 모르지만 나는 사적인 일로 마음이 심란해도 9시 땡 하고 사무실에서 내 일을 시작하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오히려 일을 시작해서 몰입하고 있으면 서서히 기분이 나아지는 나... 비정상인가요?
아직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느끼는 기분일지도 모르지만, 또 때때로 회사를 뛰쳐나오고 싶은 충동이 드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제야 찾은 편안하고 규칙적인 일상에 행복하고 감사할 때가 더 많다.
일 자체로 보면 나는 정말 좋은 사수(?!)를 만나 아주 기초부터 차근차근,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일을 배우고 있다.
개발 인력이 많지 않은 회사라는 점이 때로 날 답답하게 하고 또 외롭게 할 때도 있지만,
대신 영어 교재 개발자로서 할 수 있는 그 모든 일들을 맡아 단계별로 하나씩 다 경험해보고 있고
‘신입’이라는 방패막을 두른 채 여러 시행착오를 이해받고 있다.
처음 입사지원을 하고 면접을 볼 때까지만 해도 나는 ‘개발자’라는 말은 IT분야에나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이 직무가 정확히 하는 일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잘 몰랐다.
정말 내가 알았던, 상상했던 건 빙산의 일각이었다.
교재 개발 직무 자체가 갖는 특수성도 있지만 각 과목별 특징도 명확히 다르더라.
나는 초중등생 대상 ‘영어’ 교재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다른 과목보다 더 포괄적인 주제와 배경지식을 필요로 할 때도 많다고 느끼고,
또 영어는 ‘음원’, ‘영상’ 등 멀티미디어 자료를 필수적으로 함께 해야 하는 과목이라 그런 쪽으로는 외주 작업을 병행하기도 한다.
단순히 기획을 하고 교정 교열을 보는 에디터 직무라고 상상하기엔 일의 범위가 방대하더라.
게다가 나는 ‘지시’와 ‘결정’을 해야 할 때가 내 상상보다 훨씬 많아서 주체적인 직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교재를 만들 때 항상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통일성’과 개발자가 부여하는 나름의 ’ 규칙성‘인데,
그건 오롯이 개발자의 결정에 따르는 부분이다.
내가 오판단을 하면 ‘죽은 책’을 만들 수도 있다는 부담이 있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주어진 일을 받아야 했던 과거와 달리 ‘내가 이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있어서는 조물주의 입장이다!’ 하는 책임감과 주체성이
일을 하는 동안 나를 더 생동감 있게 만들기도 한다.
더불어 이제 7개월 차에 접어들면서는 점점 일을 하면서 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걸 수정하면 저게 맞물리는구나, 이걸 정하면 저걸 또다시 정해야 하는구나 하는 업무 간의 연계성과
각 외주업체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방향, 내가 느끼는 부족한 부분 등 갈 길이 아주 멀다.
실제로 처음 입사를 하고서부터 지금까지도 내가 많이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 중에 하나가
영어를 ‘공부하는’ 입장과 ‘공부하도록 교재를 만드는’ 입장은 많이 다르다는 것.
내가 문제를 푸는 입장일 때는 슉슉 가볍게 해결할 수 있어도
(특히 또 영어는 많이 듣고 보면 이유를 명확히 설명 못해도 감으로 답을 찾는 능력이 생기니까!)
이걸 설명하려면 내 설명을 받아들일 대상의 연령과 난이도부터, 설명해야 하는 범위, 나조차도 명확히 몰랐던 지식적인 면들까지
너무 어려운 게 많다. 이외에도 업무적으로 낯선 부분들도 아주 많고. 아직 갈 길이 먼 신입 1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일을 하면서 겪는 나름의 고충이나 배운 점, 가끔 재밌는 에피소드가 생긴다면 그것까지
브런치에 조금씩 기록해보려고 한다. 혹시 개인적으로 해당 직무에 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댓글로 물어보셔도 환영! :)
그럼 이제는 사생활로 넘어가 볼까.
올해의 키워드를 몇 가지 꼽아본다면 연애도 절대 빼놓을 수 없을 거다.
연애가 나에게 있어 큰 이벤트였던 건 아무래도 아주 오랜만에 일어난 변화이기 때문이다.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동안, 또 일을 하는 동안에도 내게 연애 같은 걸 할 마음의 여유는 일절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신기할 정도로, 나는 정말 그 일을 사랑했다. (그러고도 남은 조금의 애정은 덕질을 하는데 썼다....)
나 하나를 건사하기도 빠듯한데 타인을 좋아하고 챙길 여유가 없었다 정말.
예쁜 나이, 좋은 시기를 너무 혼자 외롭게 보내는 거 아니냐고 정말 많은 주변의 핀잔을 들었어도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가 않았다. 그 정도로 미쳐있었다는 게 정말 지금 보면 나도 신기하다.
아무튼 그렇게 오래 외로웠던 내게도 마음에 봄바람이 들기는 하더라.
일에 있어서, 또 내 생활에 있어 안정감이 찾아오니까 점차 꽁꽁 얼어붙어 있던 마음도 녹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남아도는 애정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사랑에 빠져서 아주 오랜만에 충만한 느낌에 행복하기도 했다.
과거형으로 문장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점에 마음이 아프지만, 아주 길었던 연애 공백기를 단번에 채울 만큼 좋은 사람을 만나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는 것으로 이제는 만족해야 한다.
또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
이 부분을 쓰고 싶어서 사생활을 가져온 건데 앞서 쓴 서론과 연관이 있다!
과거에 나는 연애를 마무리할 때면 충분히 울고 마음 아파하기는 했지만, 그 상처를 들춰보고 무엇이 문제였나 직면해보진 않으려고 했었다.
이별은 너무 아프니까, 그 자체로 충분히 이성을 잃고 주체가 안 되는 나는(앞서 아나운서 일에 그렇게 포기 못하고 매달렸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겠지)
그걸 이성적으로 되짚어보고 기록을 하는 등의 행위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내 잘못 네 잘못을 다 끝난 마당에 짚어봐서 뭐 하나 하는 마음이 크기도 했고,
물론 과거의 연애는 이미 내게 수년 전이니 나는 충분히 미성숙했고 어렸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랬었다. 하지만 이번엔 슬픔과는 별개로 이 과정을 또다시 누군가와 반복하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더라.
이 역시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 마음 아픈 이별이라도 충분히 납득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기도 할 거다.
요즘 나는 연말이 다가오는 겸사겸사 미리 새 일기장을 하나 사서 매일의 일기를 손글씨로 적어가고 있다.
아주 사소한 감정의 변화들부터 내 각오와 반성, 후회 등을 툴툴 털어놓으니 처음보다는 훨씬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또 머릿속이 점점 깨끗해지더라. 나는 개인적으로 연애를 할 때면 불안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과연 어떤 포인트에서 불안해지는지, 나를 불안하고 힘들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충분히 고민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물론 글을 쓰면서 한껏 이성적인 고민을 할 수 있게 된 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나는 수도꼭지처럼 누가 툭 치면 눈물이 나는
비이성적인 상태와 정상인 척을 할 수 있는 상태를 왔다 갔다 하며 버티는 중이지만
그건 그래 내 천성이라, 또 인정하고 안고 가야 하는 부분이겠지.
그래도 이 마저도 밉거나 싫지는 않다. 꽤 오래갈 것 같은 이 마음마저도 묵묵히 밀어내거나 피하지 않고 맞닥뜨릴 생각이다.
그게 좋을 것 같다.
참 매번 글을 거의 일 년에 한 번 쓰러 오니, 일 년 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변화를 겪은 내 일상을 글 하나에 담기가 벅차다.
늘 하는 다짐이지만 종종 들러서 일기를 업데이트하도록 노력하자!
이제 나는 문제를 덮어두고 괜찮아지길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또 글 쓸 여유도 없이 집채 같은 문제가 나를 덮치는 순간이 와도 기록하고 직면하기로 다짐하며,
프로 이직러 겸 간만의 연애를 끝낸 어느 날의 일기를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