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날
나는 23살인 2016년 4월부터 7개월 동안 수능을 공부한 후 17학번으로 꿈에 그리던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사실 조금 웃긴 건 합격 결과가 나올 때에 그렇게 기쁘지 않았었다. 합격 소식이 들리던 당시 나는 당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수능 당일에 미리 적어온 답안으로 자신의 수능 점수를 알 수 있고, 다음 날 학원에 가서 점수를 말하면 어느 학교를 갈 수 있을지는 대략적으로 미리 알 수 있다. 그래서 내게 가장 기뻤던 날은 합격 결과가 나온 날이 아니라, 학원에서 모의지원을 하면서 들었던 ‘이 성적이면 서울대학교에도 갈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말을 들었던 수능 다음날이었다.
3년 전 나는 20살 성인이 되고 음악을 업으로 삼자고 결심하고 무기한 휴학을 했다. 사실 고3일 때부터 제대로 음악을 하려고 했다. 집안은 뒤집어졌고, 어머니와도 정말 크고 많은 다툼이 있었다. 급기야 1학기 중간고사 날에 가출을 해서 중간고사가 0점인 탓에, 이후 학기말 학교에서 점수를 가장 많이 올린 학생에게 주는 학력증진상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편의점 알바를 시작으로 나는 돈을 모아서 악기나 장비들을 산 후 21살에 서울로 상경했다. 상경한 뮤지션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홍대 근처에 자취를 시작했고, 작업실도 잡았다. 나는 현실은 자각하지 못한 채 그런 내 모습에 취해있었다. 그때는 음악으로 성공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취미에서 해야 하는 일이 되자, 음악은 점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성과도 없어 의욕은 점점 떨어져 갔다. 차라리 음악을 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놀러 다녔더라면 더 나았다. 월세 30만 원의 지하 작업실은 내 전용 PC방이 되었다. 아침 8시에 가서 밤 10시까지 밥도 먹지 않고 게임을 하고, 돌아와서 매일같이 치킨 등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그렇게 1년 이상을 쓰레기처럼 인생을 살았다.
그때 든 생각은, 음악은 내 길이 아닌 것이 아닐까… 남은 건 신용카드 빚과 100만 원 이상 밀린 관리비, 휴대폰깡에도 손을 대고 100만 원이나 밀린 휴대폰 통신비. 어머니는 항상 ‘좋은 대학에 일단 가서 하고 싶은 것을 해도 좋지 않냐’라고 말하셨다. 사실 나도 학벌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고3 때 공부를 포기하고 음악을 했기에, 제대로 내 성적으로 대학을 간 게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어렵사리 어머니에게 자존심을 굽히고 ‘재수하고 싶다’라고 말씀드렸다. 사실 그 와중에도 나는 어머니가 원하시는 공부를 하면 지금 밀린 월세와 카드값 정도는 해결해주지 않을까, 같은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욕을 바가지로 들어먹었다. 말 그대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인간말종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게다가 추가로 돌아온 대답은, 그 빚을 다 갚고 오면 재수학원에 보내주겠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보통 재수학원들이 개강하는 1월에 학원에 들어가지 않고, 3월까지 야간 편의점 알바를 하며 빚을 갚고 4월에 재수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정확히는 독학재수학원이었다.
3월 즈음에 어머니와 함께 나는 유명하다는 서울의 여러 재수학원들을 찾아갔다. 강남과 서초 위주로 몰려 있는 재수학원 주변에는 재수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하숙집이 있는데, 월세는 90~100만 원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그 역시 각오하고 재수학원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학원에 자리가 없습니다.”
“테스트를 통과하셔야 하는데… 테스트 점수가 안되시네요.”
“아드님이 작년 수능 성적이 없으셔서 학원에 넣어드릴 수가 없습니다.”
뭐라고? 19살 이후로 4년 동안 글 한번 읽은 적도, 펜을 든 적도 없던 내가 수학영어 테스트를 통과할 리도 없었거니와, 여기 학원들은 돈을 주고 들어간다고 하는데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어이가 없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본가가 있는 지방으로 돌아가서, 집에서 통학을 하며 동네에 있는 재수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그때 재수학원 원장의 눈에도 난 참 별나게 보였을 것이다. 빨갛게 물들인 머리, 그리고 덕지덕지 손과 팔에 그려져 있는 문신들. 이런 애가 공부를 하겠다고?라는 눈빛으로 원장은 나를 쳐다보았다. 다행히 빨간 머리는 전부 밀어버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작년 성적과 관계없이 학원은 들어갈 수 있긴 했지만…
이 글은 이러이러한 점수로 이런 과정을 통과해서 서울대에 갔다, 학벌이 중요하고 서울대에 가야 한다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다. 현재 입시와 내가 치른 수능도, 입학 커리큘럼도 꽤 다를 것이므로 지금 입시에는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다. 이 글은 내가 입시 기간동안 했던 공부법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왔던 과정과 그를 통해 가졌던 공부할 때의 마음가짐과 생각을 폭넓게 정리해서 이야기할 생각이다. 현재도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입시를 도와서 과외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내가 가르칠 때 학생에게 이야기하는 중요한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요즘도 그때를 돌이켜 보면 ‘어떻게 했을까? 왜 수험생 때의 나처럼 지금은 열심히 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많이 실패하고 게으르다. 꿈에 그려왔던 서울대학교에 왔어도 사실 달라진 건 많이 없는 것 같다.(알바 대신 시급이 센 과외를 할 수 있다는 것 빼고는…) 내가 타고난 악바리나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기 계발서에서 흔히 나오는 레퍼토리 중, "새벽 5시에 나가서 대중교통을 타보아라. 새벽에도 출근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대오각성해라"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나는 정신 차리려고 해 봐도 '그냥 돈 벌려고 나가는 거잖아.' 하고 아무런 감흥이 들지 않았다. 문득 어느 날 아침 카페에 있을 때, 길거리에 등교하고 있는 수많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였다. 시키기 때문에 하는 거라고 할지라도, 어쩌면 학생들이 가장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도 6년의 시간 동안 거의 매일같이 아침 8시에 일어나서 공부를 하던 시절이 있었구나. 도대체 어떻게 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끊어둔 헬스장도 1개월도 제대로 못 가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재수하던 시절이 그립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였다. "7개월 동안 공부만 하는데 행복했다고?"라며 누군가 들으면 희한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공부와 관련된 사소한 스트레스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처럼 다시 살고 싶고, 돌아가고 싶다. 그때의 내가 그리워서, 예전의 내 이야기를 다시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