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종주 28일 차 : 마츠야마~히로시마
아침에 눈을 뜨자 뭔가 목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한 침방울을 삼킬 때마다 느껴지는 강렬한 따가움… 어제 환절기 아침의 찬바람을 맞으며 무리하게 라이딩을 한 탓이었을까? 내일이면 거의 70~80% 이상의 확률로 감기가 더 심해질 것이 뻔했다. 내일 침을 삼키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붓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 컨디션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오늘도 여정의 페이지를 넘기기 위해 라이딩을 쉴 수는 없었다. 늘어나는 여정에는 적어도 4~5천 엔 이상의 1박의 숙박비라는 엄청난 세금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야와타하마까지는 70킬로밖에 되지 않아 천천히 라이딩을 해도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야와타하마로 가는 길에는 ‘고양이 섬’으로 한국 매체에서도 자주 소개된 아오시마가 있는데, 내 계획은 중간에 아오시마에 들렀다가 당일 큐슈로 건너가는 루트였다. 하지만 아오시마로 가는 배는 하루에 단 두 번 있었다. 첫 출항 시간인 아침 8시 전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자전거로 가기 위해선 새벽 5시 30분에는 출발해야만 했다. 8시 전에 도착하더라도 만약 탑승 인원이 초과되면 갈 수가 없다. 사실상 목감기로 인해 늦게 일어난 지금 아오시마에 가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보고 싶었던 여러 곳들을 보지 못하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있던 기운도 빠지고 의욕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마에서는 미열이 감돌았고, 몸은 으슬으슬하고 목은 너무 아팠다. 어디로, 어디까지 가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숙소를 나왔다. 도고 온천 주변을 빠져나와 시내를 통과했다. 시간은 아침 8시 30분, 도로를 달리는 많은 차량과 함께 스쿠터를 탄 사람이 많이 보였다. 모두들 다 출근하고 있는 것이겠지.
앞에는 또 다른 관광 명소였던 마츠야마 성의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하지만 마츠야마 성을 들러 둘러볼 여유 따위는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왜 이러고 있을까… 왜 일생일대에 다시 오지 않을 일본의 여러 도시들을 지나면서 제대로 구경도 즐기지도 못하고 지나가고 있는 것일까… 그까짓 돈 때문에? 돈이야 다시 벌면 되지. 일부러 돈 쓰면서 개고생 하려고 여기에 온 거야?’
나에게 페달질을 재촉했던 것은, 너에겐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더는 몸이 아프고 견디지를 못하자, 투지와 현실 감각으로 똘똘 무장했었던 내 헝그리 정신마저도 이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기왕 늦어버린 거, 다시 혼슈의 히로시마로 건너가자. 히로시마에서 시모노세키, 그리고 후쿠오카까지 모두 다 후회 없이 둘러보고 가자.’
마츠야마 길거리 한복판에서의 충동적인 단 한 번의 결정으로, 큐슈에 도착하는 나의 여정은 결과적으로 일주일이 더 늘어나게 되었다. 마치 스트레스를 돈으로 해결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미련을 놓아주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구속에서 해방된 것만 같았다. 그제야 마츠야마의 파란 하늘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호주머니 사정에 쪼들리는 돈 없는 대학생이었지만, 추억으로 남길 여정을 스스로 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히로시마로 가는 페리 터미널은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나 말고 또 다른 서양인 한 명이 자전거와 함께 배에 탑승했다. 하코다테에서 아오모리까지 가는 페리 이후로 두 번째 페리 탑승이었다. 일본에 와서 거의 20년 만에 배를 한 달 만에 두 번이나 탔다.
배는 하코다테에서보다 더 작았지만, 오히려 내부는 더 깨끗하고 현대적이었다. 그때는 누울 자리밖에 없었더라면 앉아서 갈 수 있는 좌석도 많았고, 콘센트도 많고 작은 간의 편의점도 운영되고 있었다. 에비센 과자를 먹으며, 야외 테라스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으며 히로시마로 향하는 여유를 최대한 음미하고 있었다. 일종의 내게 라이딩을 쉰다는 것은, 쉴 때마다 불안해하던 나 자신으로부터의 일탈과도 같아 묘한 쾌감이 있었다.
2시간 30분이 걸려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기분이 좋아져서 그랬던 걸까? 함께 자전거를 타고 내리는 그에게 나도 모르게 “have a nice trip!”이라고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그도 내게 손을 흔들며 화답해 주었다. 왠지 이런 상황은 항상 붙임성 있다는 서양인이 말을 걸지, 반대로 MBTI도 I인 내가 먼저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는 사실에 내심 뿌듯해했다. 여행이 하루하루 조금씩, 나의 많은 것들을 바꿔가고 있었다.
히로시마 시내에는 현대적인 높은 빌딩들이 많으면서도, 동시에 과거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많은 지상철들이 도심을 누비고 있었다. 그래서 마치 도시 속에 과거와 현대가 동시에 공존하며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았다. 먼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은 유명한 일본 건축가인 단게 겐조의 작품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설계된 공원이다. 공원은 마치 교토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 말은 교토처럼 역사가 살아 숨을 쉰다기보다는, 바로 서양인과 수학여행을 온 일본 초, 중, 고등학생 무리로 구성된 인파와 다시 조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령비 주변에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는 서양인들, 그리고 앞에 오와 열로 줄을 서서 단체사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교복을 입은 일본 학생들.
이런 학생들이 많은 장소를 지나갈 때면 ‘일본 종주’라고 써붙이고 다니기 참 부끄러울 때가 많다. 고등학생들도 수군대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초등학생 옆을 지나갈 때, “일본 종주다!”라고 대놓고 떠드는 목소리가 들리곤 하기 때문이다(이럴 때는 일본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 저주와도 같다…).
공원 곳곳에는 히로시마 원폭을 추모하는 여러 조각상들이 보였다. 공원 가운데를 큰 강이 가로지르고 있는데, 강변에는 조를 편성한 듯한 다양한 일본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인솔 교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꼭 한국 학생들과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선생님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는 학생이 있는 반면, 듣는 둥 마는 둥 관심이 없는 학생들도 보였다. 학창 시절의 나는 후자였던 것 같다. 다리를 건너 원폭 돔을 가까이서 보자, 펜스로 둘러 쌓인 부서진 잔해들과 파편은 잔혹한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아픈 역사가 잠든 원폭 돔 내부에는, 불법으로 잠입하고 있던 고양이 두 마리가 어린아이처럼 뛰놀고 있었다.
학생일 당시 수학여행에서 딱히 박물관이라던지 역사적인 장소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처럼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에 들어갈 때에도, 박물관 같은 단어가 주는 고루한 이미지처럼 ‘뭐, 그냥 원폭 관련 자료 및 영상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겠지’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입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그저 검색해 찾아보거나 억지로 학교 수업을 들으며 교과서에서 보는 것과, 실제 역사의 현장이었던 이곳 히로시마에서 직접 두 눈으로 전쟁으로 남겨진 잔상을 보는 것은 확실히 체감이 달랐다. 전쟁으로 죽거나 다친 수많은 일본 민간인들의 모습, 특히 어린아이들이 크레파스로 형형색색 그린 원폭 당시의 상황은, 잔혹한 실제 사진보다 그 당시의 아픔을 더욱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만 같았다. 마음이 너무 아려왔다.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다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뉴스로 보면서도, 얼마나 나는 그 일에 대해 무관심하고 공감하지 못했던가. 전쟁이라는 것이 비단 남일이 아님을 이곳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어떤 비싼 전시들보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은 깊은 마음의 울림을 느낄 수 있던 곳이었다. 전시가 끝나고 무거워진 마음과 함께, 출구로 이어지는 복도를 걸으며 창문 너머로 멀리에 있던 원폭 돔을 바라보았다. 공원의 수직축을 기점으로 이곳 평화기념관과 위령비, 원폭 돔은 의도적으로 정확히 직선을 그리며 이어지고 있었다. 내 시선은 그 축을 따라 머물면서 잠시동안 전시의 여운에 잠겨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체크인을 끝마쳤다. 저녁을 먹고도 시간이 남아돌길래 로비에 앉아 태블릿을 켜고 글을 쓰고 있었다. 다른 테이블에 검은 단발머리의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2시간 동안 내리 글을 쓰는 동안에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휴대폰을 하거나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히로시마 여행을 왔는데 저렇게 로비에만 머물고 있는 걸까? 흘긋 바라보니 노트북 화면에서 야구 경기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말이라도 한번 걸어볼까….’
일본에 온 뒤로도 제대로 일본인과 일대일로 오래 대화한 적이 없었다. 여행 유튜버들은 잘만 대화를 하고 다니던데… 내 성격이 문제인 건가, 아니면 내 얼굴이 문제인 건가. 어쨌든 그녀도 딱히 함께 여행 온 일행도 없이 혼자인 것 같았다.
“저, 일본 야구 보시는 거예요?”
“아, 네. 맞아요. 야구 좋아하세요?”
“아뇨, 사실 전 야구를 잘 몰라서… 하하.”
내가 말을 걸자 그녀는 기쁜 내색도 아니었지만, 다행히 싫은 내색도 없이 친절하게 내 대화를 받아주었다. 며칠 전 비젠에서 보았던 야마모토의 사인 티셔츠를 찍은 사진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예요! 여기 도대체 어디예요?”라고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위치를 알아도 갈 수 있을 만한 거리가 아닌 것 같았지만 가게를 알려주었다.
“혹시 몇 살이세요?”
“저는 94년생이요.”
“정말요? 저도 94년생인데!”
알고 보니 신기하게도 20대 중반 정도로 앳돼 보이던 그녀는 나와 동갑내기였다.
“히로시마에는 여행 오셨나 봐요?”
“아. 사실 전 여행이 아니고… 여기 스태프예요. 오늘 쉬는 날이라 그냥 야구 보면서 쉬고 있었던 거라서요.”
심지어 그녀는 일본인도 아닌, 대만인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에 와서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고 있던 외국인이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 한국에, 혹은 대만에 간 적도 없었다. 한국인과 대만인이 일본어로 게스트하우스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누가 보면 정말 이상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서로 일본인이 아니다 보니, 얼추 고만고만한 일본어 실력으로 2~3시간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이번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일이 끝나고 겨울이 되면, 그녀는 홋카이도의 ‘호시노 리조트’에 일하러 갈 거라고 이야기했다. 같은 동갑내기이지만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던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왠지 모르게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워킹홀리데이처럼 교환학생이야 나도 가고 싶었지만 ‘이제 가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던 나. 부모님의 눈치를 보고 대학을 가고, 주변 사람들이 취직을 하니까 나도 빨리 취직을 해야 할 것 같고. 그렇게 수많은 버킷리스트들을 지우고 잊어갔던 나. 늦었다는 것을 결정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아쉽지만 아침 일찍 라이딩을 출발해야만 했기에 저녁 10시 즈음 그녀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게스트하우스 명함 위에, 만나서 반가웠다는 짧은 인사말을 적어 침대 머리맡에 두었다. 내일 그녀가 근무할 때 손님들의 침구류를 정리하다가 내 쪽지를 발견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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