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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빠에서 일한다는 서울대생

내가 특별하다는 착각

by 루로우

합정 교보문고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문득 매대에 진열되어 있던 책 하나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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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유치한 제목의 <강철멘탈 되는 법>이라는 책. 또 뒤에 있는 <남자 대처법>이라는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의 '남성독자 열람금지'라는 마케팅 문구에 바로 홀린 듯이 책을 집어 들어서 살펴보았다.


이드페이퍼라는 저자는 알고 보니 저자명이 아닌 커뮤니티 사이트였다. 커뮤니티 사이트의 아마추어 독자가 소정의 원고료를 받으며 발간하는 글들을 모아서 출판한 책이었다. 데이원이라는 출판사는 작년 유명했던 '세이노의 가르침'을 출판했던 회사인데, 세이노가 허락을 해 준 것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뭔가 기발한 방향으로 승부를 보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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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책이 너무 재밌다. 부모가 사기를 당하든 선을 그으라는 것, 미안한 마음을 절대 먹지 말라는 것, 조금은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서 책의 어투도 공격적인 어투이지만 이렇게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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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강철멘탈 되는 법'이니 만큼, 책에서는 유리멘탈이 특징인 사람들로 '자격 강박'을 강조하곤 한다. 자격 강박이란 예를 들어 연예인을 보며 '쟤는 스타가 될 자격이 없다', '죄를 지은 연예인은 TV에 안 나와야 한다'와 같이 남에게 잣대를 부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나아가서 본인 자신에게도 투영하는 '나는 반에서 몇 등이었으니까', '누구와 명함을 주고받았으니까'라는 모든 것들이 자격 강박이라고 한다.




내가 요즘 즐겨보는 <나는 솔로>라는 티비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은, 소위 SKY 의치한 출신들이 꽤 많이 나오는데 그런 사람이 꽤나 있다.


'나는 남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고 나는 특별한 길을 걸어왔다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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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연히 프로그램에서 자기소개를 통해 자기 어필을 하는 것이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저 사람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유독 저 '특별하다'라는 부분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존재하곤 한다.


그리고 항상 저런 말들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정해진 트랙을 따라가지만 나는 그런 걸 탈출하고 싶었다'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보통 나 같은 SKY생들은 너드처럼 취업하고 평범하게 살아'

'나는 그런 애들과는 달라'

'나는 개중서도 특별하다',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실제로 내가 학교를 다니며 알게 된 사람들 중에 극단적인 예시를 들어보자면, 서울대를 다니며 호빠에서 일을 하고 있다거나, 어디 외국에 가서 마약을 해보았다는 사람, 클럽에서 연예인이나 상류층 남자를 많이 만나봤다는 여자, 별의별 사람들이 자기 입으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약간 그런 일탈적인 행동에 은근히 일부러라도 특별해지고 싶다는 심리가 깔려있는 듯하기도 하다. 어릴 때에 나도 타투도 하고, 남들과는 삐딱선을 타며 그걸 대단하고 특별한 것이라 착각하기도 했다.




새로운 경험을 찾아서 떠나는 것도 참 좋은 일이지만, 그러한 내 경험을, 본인의 경험을 특별하다고 자만하는 것을 가장 멀리해야 한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만 한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물으면 "난 진짜 좋아서 하는데?"라고 말하면서도,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꼭 자기가 그런 것을 해봤다고,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동네방네 사방팔방 말하고 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야 너 특별하네'라고 말을 듣고 싶은 심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러한 특별한 경험을 할 시간에 아침 일찍 출근해 일하는 사람들, 학점을 위해 전공 공부 하는 사람들,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 취업 준비, 그게 과연 모두 특별하지 못한 일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본인이 본인을 특별하다 생각하면 자의식이라는 냄새가 피어나고, 자의식이 풀풀 풍기면 주변 사람들이 멀어지게 된다.


대신 그와 가장 반대되는 것이 내가 매번 블로그에서 적었던 감사하기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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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멘탈이 강해지는 방법으로 '타인과 미래와 결과에 대한 어떤 기대도 예상도, 희망도 가지지 마라'라는 어찌 보면 체념적인 방향을 제시하곤 한다. 여기에 내가 덧붙여보고 싶은 능동적인 행위는 바로 '감사하기'이다. 흔한 자기계발서처럼 막연히 좋다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감사하기가 가장 아이러니하지만, 낙관론이 아닌 비관론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응당 내가 저번에 밥을 샀으니 이번에 네가 내게 밥을 당연하게 사야 한다는 믿음, 그런 희망을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는 것이 바로 밥을 사줘서 감사하다고 적는 것이다.


부모님은 날 낳아줬으니 자식에게 할 도리는 당연히 해야 한다는 기대를 버리는 비관이야말로 바로, 부모님에게 감사하다고 진심으로 말하는 것이다.




일본어 중에 한국말에서 쓰지 않는 잘 안 알려진 쟈도(邪道)라는 표현이 있다.



네이버 사전에서는 '올바르지 못한 길', '나쁜 짓' 비슷한 표현으로 설명하는데, 사전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되는 듯하다. 막상 일본인들은 그런 뜻으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라멘에 와사비를 넣어먹는다던가, 남들과는 다른 특이한 취향을 하는 것이 쟈도이다. 한국어로 로컬라이징하자면 순대를 식초에 찍어먹는 사람, 정도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남들과는 다르게 특별하게 색다르게 사는 게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걷는 길이 쟈도(邪道)라고, 특별하다 생각 말고 하루하루 감사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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