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복부인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집을 잘 나갔던 울 엄마

by 힐링작업소

은행 업무는 전혀 보지도 못하고 볼 수도 없는 울 엄마. 증권사 들락거리고 땅 보러 다니는 복부인 비슷한 전직이 있었다고 말하기에 지금 울 엄마의 모습은 거리가 한참이나 멀다. 내 학창 시절 특히 초등학교 시절에 엄마는 낮에는 늘 집을 비우며 뭔가 분주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저녁식사만큼은 특별음식과 과일 후식까지 빠뜨리지 않는 뭐든 다 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훗날 알게 되었지만 아빠의 샐러리맨 봉급으로도 대가족을 거느리고 자식들 대학공부까지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그때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이후 언제부턴가 엄마는 은행 업무는 물론이고 집안 경제 살림에서는 손을 놓았다. 증권사나 부동산은 당연히 손절! 대신 동네 아줌마들과 점 십 원짜리 민화투에 재미를 붙여 아침 먹고 아랫집에서 하하호호. 집에 와서 점심 먹고 다시 아랫집으로 내려가 하하호호. 그렇게 모아진 몇 백 원은 어디로 갔을까? 그 몇 백 원도 소중하고 허투루 쓰지 않는 사람이니까 우리 형제들 과자 값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시간이 지나 ATM기가 나오고 모든 업무가 기계화되던 시점부터 엄마는 은행에 가지 않았다. 갈 일이 없기도 했지만. 그런 엄마를 모시고 오늘 은행에 갔다. 화투에서 딴 몇 백 원들이 모여지고 나라에서 나이 들고 아프다고 해서 준 돈 등등이 들어있는 통장을 들고 기억에서 사라진 비밀번호를 재설정하기 위해서였다. 친절한 은행원의 안내에 따라 몇 번의 사인과 본인 인증을 거쳐 용무를 끝내는 동안 세상의 편리함도 모른 채 아니 외면한 채 살아온 엄마 삶의 에티튜드를 생각해 본다. 몇 백 원도 아끼며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온 덕에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고 있으나 민화투를 치며 단련된 손가락 끝 말초신경의 자극은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일분에 한 번씩 오늘이 며칠인지를 묻는 울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