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인덱스

잊지 말자! 속마음

by 힐링작업소

노화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기억력 감퇴다. 노안, 피부 처짐과 함께 삼총사를 이루는 이 얄궂은 기억력 감퇴를 나는 매일 맞닥뜨리고 있어야 한다. 일단 대부분의 아침, 자동차 키를 두고 주차장에 내려오거나 휴대전화를 들고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고 우왕좌왕하는 나, 이미 약물에 의존하고 있는 울 엄마, 이어서 내가 보기엔 예전 같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 본인은 극구 부정하는 아빠까지 우리 세 식구는 기억력 난조에 빠졌다. 이 셋 중 가장 젊은 나는 스스로의 예전 같지 않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머지 울 엄마는 아주 가끔, 울 아빠는 절대 인정 못함으로 일관한다. 특히 울 아빠, 본인 스스로는 기억력에 관한 한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엄마 앞에서 좀 으스대는 경향도 있다. 그런 아빠가 오늘 아침 벌써 한 시간이 넘게 물건을 찾고 있다. 아무도 손대지 않는 본인만의 공간에서 본인이 정리해둔 물건을 한 시간이 넘도록 찾는 모습에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꽤 오래전부터 인덱스를 권했으나 본인의 기억을 믿고 절대 실행하지 않았던 아빠다. 일전에도 제 자리에 놔둔, 그것도 본인이 정리해둔 물건을 찾지 못해 물건 찾아 삼만리를 했었다. 본인의 정리기술에 대한 묘한 희열과 기억력에 대한 자부심으로 고집을 피우시더니 결국 오늘도 한 시간이 넘게 본인만이 알고 있는 그 공간을 헤매 다니고 있다. 매일 수도 없이 날짜와 요일을 물어보는 엄마로 인해 긴 한숨인데 아빠까지 고집을 피우시니 울화통과 인내심이 격전을 벌인다. 그러나 나는 참을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아빠가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 씁쓸해진다는 속내를 친구분께 털어놓는 통화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가족들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아빠는 당신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강한 아빠라는 얼굴로 살아오시는 내내 마음 안에서 부대꼈을 아빠만의 비빌스러운 상처들이 가슴에 파고들었다. 가끔 엄마, 아빠의 엉뚱한 고집에 화가 나면 아빠의 통화 내용을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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