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안남미
내 손으로 밥을 하던 첫날, 엄마는 알려주셨다. 쌀을 담아 손으로 눌러 손가락 마디 다섯 개가 잠기는 곳까지 물을 채우면 된다는 말씀이셨다. 이후 밥물의 양을 맞출 때 어김없이 내 손가락은 그렇게 사용됐고, 지금은 눈대중으로도 적당한 찰기의 밥이 완성되었다. 내가 이런데, 밥 짓기를 반세기 넘게 해 오신 엄마는 어떠하리. 그동안 아빠가 살짝 된 밥을 좋아한다는 점을 감안, 보슬보슬 안성맞춤으로 잘도 밥을 지으셨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엄마가 하시는 밥은 밥 짓기 초보자보다도 못하다. 일단 밥을 풀 때, 주걱에서 쌀알 하나하나가 스르르 떨어져 나간다. 토양 좋은 평야에서 올라온 최신 햅쌀로 지어도 안남미 못지않은 부실한 밥이 된다. 어릴 적부터 밥상머리에서 타박 한 번 안 하신 아빠가 어느 날부터 엄마 말고 내가 밥을 지었으면 하신다. 엄마가 없을 때 도저히 밥을 못 드시겠다고 하소연까지 늘어놓으실 정도다. 엄마는 이런 아빠의 태도에 십수 년간 당신이 한 밥을 먹었으면서 이제와 딴소리한다고 항의하며 밥 짓기 파업으로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나 다음 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또 밥을 짓는 엄마다. 때론 당신도 당신이 한 밥을 먹기 힘든지 애꿎은 전기밥솥을 탓하며 물을 말아 식사를 한다. 벌써 1년 정도 엄마의 밥 짓기 실수가 이어지고 있다. 가능한 최선을 다해 일찍 집에 들어가 밥을 짓지만 일하는 사람으로서 부재 상황도 있게 마련이라 엄마의 밥하는 과정에서의 오류를 짚어봐야 했다. 엄마가 밥하는 장면을 지켜보기로 했다. 물론 오류를 지적하고 방법을 알려줘도 엄마는 기억하지 못하고 당신의 방식대로 밥을 하겠지만! 엄마의 방식은 내게 밥 짓는 방법을 알려줄 때와 판이하게 달랐다. 거의 쌀 물이 없다. 쌀과 물의 양이 1:1 수준. 물을 더 넣으라 일러드렸더니 엄마는 말한다. “아빠가 진 밥을 싫어하셔. 된 밥을 잡숴” 아빠가 좋아하는 된 밥을 짓기 위해 물의 양을 최대한 줄이셨다. 이제는 쌀 물의 양 맞추기가 기억에서 사라져 안남미 저리 가라의 밥을 제공하시는 엄마는 그래도 언제나 당당하다. 본인이 쌀 물을 제대로 못 맞추고 있다는 인식은 전혀 없이 오직 된 밥을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서 물의 양을 줄였을 뿐이다. 된 밥을 좋아하는 아빠, 그거라도 기억하는 게 어딘가? 싶어 엄마의 우김 앞에서 입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