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 다시 죽이기
<나의 서평과 무라카미 하루키>
오랜만에 울린 핸드폰에는 책 서평에 대한 제안이 들어와 있었다.
예전에 만났던 모임에서 글쓰기와 키보드에 대해서 대화했던 적이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을 기억하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소책자 형식으로 10년간 써온 자작 시와 에세이를 묶었다는 짧은 대화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심정으로 출간하시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서 좋은 글이 나오긴 힘들 거 같아서 정중히 사양하면서도 지인들끼리 모이는 출간회에는 꼭 가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축하해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렇게 개인이 자가출판을 했다며 책을 보내주는 분들이 늘었다.
다소 글이 어렵게 느껴져서 자주 읽어보진 못했지만, 추천사나 머리말은 읽어보려 노력하는 편이다. 대부분 글쓴이의 훌륭한 부분이나 그동안의 업적을 치켜세우는 내용이 많았지만 간혹 책의 어느 부분이 재미있다며 추천해주거나 어느 부분은 꼭 읽어보라고 권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서전 형식이라면 개인의 삶에 밀접하다는 특징도 있다. 그래서 읽다 보면 가끔은 나와의 에피소드를 올려주시는 경우도 있어서 조금 쑥스럽기도 하지만, 타인의 시점에서 시간을 다르게 경험하는 것이 재밌기도 하다. 이미 거절한 서평에 대해서 생각하던 중,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해서 감히 서평을 써볼까 하는 흥미가 생기게 되었다. 결국은 감상문이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무슨 책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 동네에는 서점이 사라진지 오래라 그나마 책에 가까운 도서관으로 향했다. 평일의 도서관은 사서들의 무거운 적막만 있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음악을 틀어두고 카페 같은 테이블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람실이 있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래서 과거의 베스트셀러를 보다가 괜히 꺼내든 책이 "기사단장 죽이기"였다.
저자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는 이미 엄청난 작가였다.
당시 대학생들의 책장에는 상실의 시대가 집집마다 있지 않았던가? 일본인 작가임에도 한국에 살고 있는 내가 알정도라면 시대를 풍미한 그런 작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아는 작가의 내력은 거기까지다. 이제는 상실의 시대가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으로 바뀌었다. 아니지, 기사단장 죽이기는 라디오의 신간 추천에서 얼핏 들었던 거 같기도 하다. 제목만 들어보면 잔인함과 복수가 남무하는 과거를 떠올렸지만 책의 배경은 인터넷이 사용되고 있는 현대였다.
주인공은 이혼을 겪은 화가이다. 젊은 적에는 좋아하는 추상화를 그리고 싶어 했지만 현실의 벽을 느끼고, 장르가 다른 초상화를 그리며 착실히 경력을 쌓아온 30대 후반이다. 취미도 꽤 고풍스럽다. 자차를 소유하기 불편한 일본에서 빨간색 핫해치를 몰지 않았던가? 이야기 진행 중에 팝과 클래식의 소양을 밝히는 것만 봐도 나는 나대로 인생을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주인공과 작가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부정적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주인공의 이야기와 작가의 표현은 상당히 재미있다.
그는 한동안 일본을 떠돌아다녔다.
오래된 차로 여행하는 것은 몸도 피곤하겠지만 자신을 혹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랑한다고 생각한 아내에게서 갑작스런 이별을 통보받고 혼란스러운 기분을 어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동안의 십수 년을 다시 돌아보며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결혼 생활이 행복하기만 한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런대로 의미 있는 시간은 아니었던 것일까? 비록 결혼의 끝이 이혼이라는 결과였을지라도 말이다.
반면 결혼 전에는 서로에게 교제하는 애인이 따로 있었음에도 당시 애인과 헤어지고 아내와 결혼까지 했다면, 이전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주인공처럼 이혼 같은 기분을 먼저 느꼈으리라 생각했다.
의외였던 점은 초반부 외도한 아내의 표현에는 비난이 없었던 것이다. 적어도 자신은 억울함이 있었겠지만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신을 추스르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행위로 여행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되었다.
여행 중 많은 것을 보고 경험했겠지만 아내와의 첫 만남을 추억하면서, 어릴 적 죽은 자신의 누이동생에 대한 마음을 줄줄이 풀어두었다. 처음에는 아내에게서 사랑보다 누이동생의 잔상을 느꼈고, 결국 연애를 통해서 결혼이라는 형태의 소유를 하고 싶어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아내에 대한 마음은 여동생에 대한 그리움이 만들어낸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어린 시절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을까?
그가 정착한 곳에서 만나게 된 '공간'과 '기사단장'은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과거와 상실이라는 글의 핵심으로 접근하는 장치로 느껴졌다. 만일 내가 비슷한 구조로 글을 썼다면 단순히 중년 남성의 이혼 후 극복이라는 진부한 내용이었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기사단장 죽이기"이라는 2권의 두껍고 상세한 책으로 재미있게 담아냈다고 말하고 싶다.
챕터의 중간마다 갑자기 찾아오는 성적묘사는 대사가 있는 품격있는 AV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성과 만나는 시간이 적지 않은 만큼 책을 읽으며 주인공을 인간적으로 알아가는 것에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게다가 베드신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소 지루한 시간대에 집중력과 활력을 준다고 알려져 있으니, 잘 팔리는 책이라면 자주 들어가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