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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쉬 Feb 24. 2023

나의 한 달 휴직기

풀린 신발끈 묶기

2023년 2월 한 달간 휴직을 했다. (쓰고 있는 지금은 2월 말이니 '하고 있다'가 맞다만-)


휴직은 퇴사를 눈앞에 둔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과 같았다. 당시 가지고 있던 목표를 어느 정도 이뤘고, 직군 특성상 이직을 한 번 할 때도 되었기 때문에 나의 퇴사는 누구에게도 놀랍지 않을 선택지였다.


회사에 휴직에 대해 말할 당시, 나는 정신과 치료를 6개월째 하고 있었다. 우울증과 불면증, 가벼운 공황장애 때문이었다. 치료는 효과가 있었다. 약은 나를 매일 푹 잠들게 했고, 우울감도 어느 정도 나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즈음 나는 근본적인 부분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면서 약으로 버텨내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뿌리가 되는 원인이 바뀌지 않는다면 의사 선생님의 의견에 따라 단약을 하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때문에 처음에는 퇴사를 고민했다. 내가 가진 가장 큰 원인은 불안감이었고, 이 불안감은 현재의 에이전시 근무 형태에서는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좋았다.

학창 시절부터 첫 번째 회사까지 사람에게 지독하게 질린 이후로 좋은 사람의 소중함을 실감하고 있었기에, 현재 회사의 사람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이런 내게 회사에 코 꿰였다고 할 만큼 나는 회사사람들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나름 큰 프로젝트였기에 여기서 하차를 할까, 남아있는 연차를 죄다 몰아 사용할까- 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자연스레 휴직이 떠올랐다. 당시 알던 휴직은 육아휴직 정도가 전부여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나 같은 사례가 꽤 있었다. 그래서 휴직을 결심했다. 결심한 이후로는 아주 쉬웠다. 회사에 얘기하고, 기간을 정하고, 업무를 정리했다. 물론 이 과정이 쉬울 수 있었던 건 회사에서 그 어떤 반대도 없이 휴직을 승인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당연하지 않으며 아주 특수한 상황임을 알고 있어 매우 감사하다.


하반기 비수기에나 쉬겠거니 생각하던 나와 달리 회사에서는 당장 휴직해도 된다며 나보다 더 열심히 추진해 준 덕분에 2월 한 달을 쉬고 있다. 

4주째가 된 지금, 더 쉬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쉬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얼마든지 쉬어도 질리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돌아갈 곳이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 그것을 알기에 더 즐겁게 쉴 수 있었을 것이다.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돌아가면 내 자리 없는 거 아니냐며 깔깔거린다. 이 또한 그러지 않을 것을 알기에 온전히 웃을 수 있는 것이다. 회사 안에서 불안했던 나는 회사 밖에서, 회사 덕분에 단단함을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휴직하기 전 나는 꼭 신발끈이 풀린 채로 뛰는 것 같았다. 신발이 덜렁거리니 속도는 낼 수 없는데 뛰어야만 하니 뛰는 척이나 겨우 하며 지냈다. 지금의 나는 그 신발끈을 두 손으로 꼭 묶어낸 듯하다. 고작 한 달의 시간으로 무엇이 바뀌겠거니-라는 생각도 했지만 정말 많은 게 바뀌었다. 나는 나를 옥죄던 불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 정말 놀랍게도. 내게 불안은 평생 함께해야 할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다. 돌아가면 다시 불안해질 수 있는 것도 알지만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신발끈이 꽉 묶여 있으니까.


어떤 이유로든 휴직을 고민한다면, 휴직을 꼭 했으면 좋겠다. 

쉰다고 뒤처지지 않는다. 그저 삶에서 신발끈을 묶을 뿐이다. 다시 나의 속도로 걷고 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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