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의 '미국 입국심사'는?

역사상 처음 겪어본 세컨더리 룸에서의 '유쾌했던' 15분

by 대왕고래

미국 입국심사, 요즘에도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미국에 도착하니 의외로 입국심사에 대한 질문들이 많다. 확실히 절차가 까다로워진 것은 맞다. 나 역시 수년간 수많은 '입국심사'에서 단 한 번도 '세컨더리 룸'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첫 경험을 하게 되었다. *'세컨더리 룸'이란, 입국심사를 별도의 공간에서 보다 심층적으로 진행해 대상자에 대하여 마구마구 파헤치는 공간을 말한다.


최근 나의 비행은 2020년 11월 시애틀 도착 대한항공 비행기였다. 탑승인원은 어림잡아 30명 남짓인 듯했다. 이중 10명 이상이 세컨더리 룸으로 모셔졌다(?). 그리고 세컨더리 룸의 10명 중 무려 7명이 남자 승객이었다. 인종, 성별, 국적 등의 요인과는 관계가 없어 보였다. 국적기였으나 코로나로 인해 탑승객은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인지 세컨더리 룸 내의 외국인도 많았다. 또한 이날 비행기에는 유독 남자 승객이 많기도 했다.


세컨더리 룸으로 모셔진(?) 승객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공통점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로는, 체류기간이 불명확하거나 매우 길다는 점. 즉, 편도 혹은 오픈티켓(돌아가는 비행기 스케줄을 자유롭게 조정 가능한 티켓)의 소유자들이었다는 것, 둘째로는 수하물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었다.


나 역시 오픈티켓의 소유자였고 가방 역시 5개나 됐다. 게다가 노트북은 3개, 아이패드 1개, 스마트폰 3개, 고프로와 드론을 비롯한 각종 촬영장비가 4~5개 남짓이었으니 나는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아마 이곳에 끌려왔을 법하다.



내 평생 처음 겪어본 '세컨더리 룸'에서의 행복한 추억


황당하겠지만 나는 세컨더리 룸에서의 그 짧은 15분 내외의 시간이 행복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신기하고, 신났으며, 약간은 설레기까지 했다.


일단 공항직원들의 태도가 시종일관 너무 나이스 했다. 코로나로 인하여 입국심사가 까다로워졌다는 안내가 첫 번째 멘트였기 때문에, 그 모든 절차들은 당연히 납득이 갔다. 혹여 내가 불안해하지는 않을까 중간중간 "걱정하지 마", "이건 절차일 뿐이야, 넌 별 문제가 없어" 등의 멘트도 날려주었다.


세컨더리 룸으로 들어간 뒤로는 그 공간을 보고 너무 들뜨고 말았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경찰서의 심문실 같은 공간과 내 눈에는 무진장 멋져 보였던 제복 차림의 경찰, 허리의 총…. 그 모든 것들이 동경하는 미국의 어떤 시네마틱한 장면 속에 나를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나를 조사한 인원은 총 2명이었는데 한 명은 심층적인 인터뷰를 진행했고, 다른 한 명은 내 모든 가방을 꼼꼼히 다 뒤져봤다. 그러던 중 짐을 뒤지던 D가 내 빤스 꾸러미를 끄집어내더니 다소 미안했는지 "요즘 판데믹 이후로 이렇게 짐을 다 꺼내보는 일도 많아졌어"라며 머쓱해했다.


또 한 번은, '시애틀에서 만날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식구들이 있다고 답하자 '사진을 보여줄 수 있냐'고 질문이 되돌아왔다. 세컨더리 룸에 들어오면 스마트폰을 맡기게 되는데, 다시 내 폰을 열어 함께 사진첩을 뒤져보았다. 그들도 내 폰을 줄곧 쳐다봤다. 내가 혹여 메신저로 불법 브로커 등과 연락을 취하지는 않는지 감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결코 기분 나빠하거나 할 이유가 없다).


그러다 미처 지우지 못한 옛 여자 친구 사진이 나왔는데 그들은 이건 누구냐, 너의 와이프냐, 지금 미국에 있는 것이냐 등의 질문을 이어갔다. 이 역시 결혼을 이용한 비상식적 국적 취득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기에 타당한 질문이었다. '헤어졌다'는 나의 말에 그들은 굉장히 머쓱해했는데 그 모습에 내가 미안해질 정도였다. 나도 그 사진이 아직까지 남아있었는 지 전혀 몰랐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내 사진첩에는 국내 곳곳의 사진도 많았다. 다음번에 가봐야겠다면서 장소를 하나하나 물어보더니 '뷰티풀', '원더풀'을 외치던 그들의 모습이 동네 형처럼 느껴지고 말았다. 내 고향 강원도의 많은 도시들로 여행을 다녀본 적도 있다는 D의 말에 나는 편안함을 넘어 약간 노곤해지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죄 안 짓고 산 스스로가 대견해지면서 뿌듯함이 밀려오는 가슴 웅장한 순간이었다.

시종일관 그저 편안한 마음이었으니….



절차와 질문은 까다로웠지만, 입국심사는 더 빨리 끝난다.


미국의 입국심사. 확실히 까다로운 절차가 늘어났고, 기준 역시 강화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 나이스 해진 것 같다. 심지어는 입국심사가 예전에 비해 훨~씬 빨라졌다. 이는 위 제목 뒤의 사진처럼, 출입국자가 매우 줄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시애틀 노선은 줄이고 또 줄인 와중에도 승객이 고작 20~30명 내외였고, 각국 공항에서는 직원들 말고는 인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부산했던 인천공항의 수많은 보안검색대도 단 한 라인만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도 줄을 서서 기다려 본 적이 없으니 말 다 한 것이다.


시애틀에는 아침 8시를 넘겨 도착했다. 이후 모든 입국심사를 마친 뒤 공항 밖을 나서는 데에 9시가 채 되기 전이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뉴욕이나 LA의 입국심사에서는 2시간은커녕, 3시간 이상이 걸린 적도 있다. 그런데 세컨더리 룸에 들어갔음에도 1시간이 채 안 되다니... 이러니 오히려 지금의 절차들이 내게는 더 편하고 유쾌한 기억으로 남았는지 모르겠다. 그들 역시 더 여유로워진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미국의 입국심사는 예나 지금이나 본인이 심각하게 죄짓고 살지만 않았다면 딱히 꿀릴 것이 없다. 그냥 천천히 편하게 대답하다 보면 그들이 입국을 막을 이유 또한 없기 때문이다.


가끔 미국 입국심사에 대해 지나치게 안 좋은 이야기들만 널브러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데, 이것 역시 극히 일부의 사례들에 불과한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들의 친절함이나 편안함은 너무도 당연하기에, 기록될 명분이 비교적 부족했을 뿐이다.

뉴스에서도 사건/사고만 나오지 보통의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는 않는 법이니까.

매 시간 수십수백수만이 넘는 입국심사 중 좋지 않은 경험들만 공유된 여러 곳의 이야기에 너무 포커스를 맞출 필요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