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리뷰
헌법에도 명시된 우리나라를 통치하는 원리는 두 가지입니다. 경제적 자유주의로서의 자본주의, 그리고 정치적 평등주의로서의 민주주의죠. 이 두 가지 원리 모두 서양에서 생겨나 우리나라로 전파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본주의란 대체 무엇이고 어디에서부터 왔을까요? 이건 전파를 받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자본주의를 만들어낸 지역이라는 서양의 인문학자들도 끊임없이 던져 온 질문입니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자본주의는 어느 순간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고 역사 속에 소수로서 항상 존재해왔다, 다만 1500년대 이후 여러 우연이 맞물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경제생활이 자본주의 체제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브로델은 근대 초기에 자본주의적으로 움직였던 거상들의 연결망을 보여주며 자본주의가 언제나 존재했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그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이 거상들과는 전혀 관련 없이 독립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려 합니다. 그리고 이 둘의 접점이 만들어지고, 끝내 거상들의 자본주의적 영향력에 경제생활이 포섭당하는 과정을 보여주려 합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라는 책의 내용에 대한 구상을 간단히 그려내 보여주는 강연록,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키워드는 물질생활, 시장, 자본주의입니다. 이 세 단어는 사람들의 경제생활의 영역을 구별하고 그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제시한 개념입니다.
물질생활은 사람들이 자신의 필요에 맞게 자연을 변형해서 사용하는 것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런 표현을 써도 괜찮다면, 이건 어느 정도는 인간의 본질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숙명에 가깝습니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 욕구인 먹을 것을 확보하는 일조차도 자연에 변형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시장은 인간의 물질생활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교환을 위해 나오는 곳입니다. 여기서의 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어쩌고 하는 경제학에서의 추상적인 시장이 아니라, 정말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마을 장날을 의미합니다. 이 물건들이 시장에 나오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시장에 나오면서 교환가치를 획득합니다. 이 교환가치는 화폐를 통해 드러나고요. 또 한집 건너 한집에서 비슷한 물건을 팔고 있기에 경쟁자들이 모두 눈앞에 보이는 상황이라 경쟁도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는 인간이 자신을 위해 사는 삶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자본은, 시장과 시장을 연결하는 존재입니다. 도매상, 더 나아가서는 거상이나 자본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되죠. 브로델은 우리가 흔히 ‘시장경제’라고 부르는 경쟁의 원리가 이 영역에 적용된 적은 역사에서 거의 없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시장과 시장을 연결할 정도로 규모가 큰 존재들에겐 애초에 경쟁자가 있을 리도 없고, 이 정도 조직을 갖추려 하거나 갖춰졌을 땐 이미 국가 권력과 강하게 결합해 영업활동을 보호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비약해서 이야기하자면, 대규모 상업 활동이 경쟁에서 살아남은 뛰어난 수완의 결과라는 말은 거짓말이며, 자본의 본질이 독점이라는 점은 역사적으로 사실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브로델의 관점에서 1500년 이후 유럽의 역사는, 개인의 경제생활이라는 측면에서는 시장과 접점이 늘어나면서 교환의 비중이 늘어나는 과정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이제 일한 대가조차도 교환의 수단인 월급으로 받고 있잖아요? 반대로 자본의 관점에선 화폐를 매개로 삼아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을 사람들의 물질생활 곳곳으로 넓혀가는 과정입니다. 특정한 지역에서 더 이상 독점적 수익을 올릴 수 없을 때는 이를 벗어나 외부로 나아갑니다. 이는 때로는 기업 활동의 해외진출을 통한 경제 잠식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제국주의적 식민지배로 나타납니다. 역사의 관점에서,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특징이라는 게 브로델이 이 강연에서 이야기하려는 요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이 책과 함께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주경철의 <대항해시대>입니다. 브로델을 비롯해서 자본주의를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은, 이 독특한 체제의 탄생을 꽤 긴 관점에서 봐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무작정 거슬러 올라갈 순 없지만, 자본주의적 경제 체제의 여러 특징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시기로 보통 대항해시대를 이야기합니다. 무역 중심의 경제체제라든지, 식민지 본국과 주변국 사이의 경제 불평등, 열악한 노동환경이라는 이면을 지니면서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경제 등 여러 모로 우리의 경제체제를 객관적으로 엿볼 수 있게 해주는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이 시대를 종합적으로 포괄적으로 풍부하게 바라볼 수 있는 책으로 많은 독서인들이 꼽는 책이 바로 주경철의 <대항해시대>입니다. 아마 청취자 여러분 중에서는 더러 읽으신 분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