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애덤 스미스가 말하노니, "악덕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맨드빌의 말은 어떤 부분에선 현실에 대한 설명으로 받아들일 만 하지만, 다른 부분에선 잘못된 정책에 대한 제언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렵고, 또 다른 부분에선 이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맨드빌의 세계에는 착한 사람이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애의 원리에 따라 마음을 먹고, 행동한다.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행위를 하는 데 있어서도 거리낌이 없는데, 그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보단 들키는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들키면 자기애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명예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들 하는 거짓말은 오히려 우리에게 풍요를 가져다준 동력이 되기 때문에, 이 국면에선 도덕적 고결함보다는 우리가 현재 영위하는 삶의 상태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
이런 삶의 모습이 형성되는 더 근본적인 동기는, 자기애가 이해타산이 아니라 감정이기 때문이라는 게 맨드빌의 생각인 것 같다. 심지어 이것은 물욕마저도 초월하는데, 자기애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때로 인간은 어떠한 종류의 막대한 지출도 감수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칭찬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보장받을 수만 있다면 사람들은 죽어서도 칭찬받길 원한다. 그래서 맨드빌의 세계는 물질과 이익의 세계가 아니라 감정 경제의 세계인 것 같다.
하지만 몇 가지 잘못된 전제와 더불어, 국가 운영의 관점에서 정책을 제시할 때는 자주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시대적 한계 때문에 경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은 책의 각주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내용인 데다가, 결정적으로는 감정 경제의 팽창을 위해서 필수적이어야 할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계층인 하층계급(일하는 사람들)의 수요를 일정한 수준에서 묶어놔야 한다는 견해를 냄으로써 자기가 했던 말과 스스로 충돌하고 마는 것이다. 자선사업에 대한 비판은 현재 (이른바) 우파들이 동원하는 복지 축소 논리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 원형인 만큼, 그 견해는 훨씬 날것이며 공격적이다.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사람이 아니라 거의 기계처럼 보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 물론, 그가 설명하는 세계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그렇게 많이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실제로도 그러하고, 비슷한 의견이 마치 인간을 통찰하는 진리인 양 아직도 떠돌아다니고 있으니까.
그래서 궁극적으로, 나는 자기애를 사회 구성의 중심 원리로 삼는 맨드빌의 견해에 의문을 갖게 된다. 정말로 번영하는 사회는 맨드빌의 의견처럼 자기애를 중심으로 구성되는가? 지금까지 그런 사회가 번영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래야 하는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살 수 있다면, 조금 덜 풍요로워도 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정말로 그의 말처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아직 이런 질문들에 답을 내리지 못했다. 이럴 때는 확고한 의견을 가진, 특히나 이 책처럼 그 주장의 원형을 날 것으로 그대로 보여주는 책을 읽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