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재의 <해방촌 가는 길> 리뷰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키워드는 ‘욕망’입니다. <해방촌 가는 길>을 비롯해서 이 책에 실린 네 권의 단편은 1950년대 전후를 배경으로 삼습니다. 이 시기를 표현할 가장 적당한 말을 찾다 보니 처음엔 “폐허”라는 단어에 이르렀는데요. 이런 폐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측면 중에 이 책에 실린 소설은 무엇에 주목했는가 생각해보니 “욕망”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더라고요.
1950년대 한국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 내부 갈등으로 인한 폭력과 한국전쟁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게 사라져 버렸고, 그만큼 사람들의 신념체계 또한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세상에 믿을 놈도 믿을 것도 하나 없는데, 몸은 살아있으니 어쩔 수 없이 목숨을 지탱해야 했던 때로 이 시대의 분위기를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생존 자체가 사람들에게 절대적 명령으로 간주되던 정신적 상황이 2020년 지금 우리의 모습을 만든 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스쳐갑니다.
신념이 없으니 생존에 필요한 것은 욕망뿐인 듯합니다. 누군가는 이전 시대엔 결코 용납되지 않을 방법으로 사람들의 삶을 떠받치고, 그에 기대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동력이 그 잘못된 방법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함부로 손가락질하지 못합니다. 그 누구도 자신을 욕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그 누군가는 더욱 대담하게 원하는 것을 갈망하고 요구하는데, 그게 사람들의 삶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정당한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진짜로” 원하는 최선의 삶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최선의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세계는 사라졌다는 걸 모르진 않는 공통감각 같은 것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이전에는 억압과 은폐의 대상이었던 여성의 행동과 욕망이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을 떠받치고 있다는, 자신을 주장할 정당한 ‘몫’이 생긴 것이니까요. 물론 이 시대 전에 여성이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역할을 정당하게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의 압력이 훨씬 더 셌던 것이죠. 반면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이고요. 어쨌든 사람들에겐 과거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고, 그에 비춰봤을 때 이전엔 용인받지 못하던 행동을 더 드러내놓고 당당하게 하기 때문에 눈에 더 띄는 것일 수도 있고요.
그렇기에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 노동에 종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해방촌 가는 길>의 기애나,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은밀한 소원을 지닌 <황량한 날의 동화>의 명순 같은 캐릭터가 전면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고, 부유층의 이복 남매가 서로를 좋아한다는 <젊은 느티나무>의 설정 또한 이런 이른바 여성의 욕망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어요.
제가 이 책과 같이 하면 좋을 것으로 꼽은 콘텐츠는 손창섭의 단편 <비 오는 날>입니다. 우리가 읽은 강신재의 단편이 1950년대 여성의 욕망을 보여준다면, 손창섭의 단편은 1950년대 남성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중에서도 <비 오는 날>이나 <잉여인간>이 대표작일 텐데, 강신재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들, 이를테면 고백했는데 까였다고 자살하는 <해방촌 가는 길>의 남성이나 아편 중독으로 자기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황량한 날의 동화>의 남성 같은 이들의 자기고백이라고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기들에게 권력을 부여하던 제도와 사회적 권력은 사라지고 전쟁에 나갔다가 몸이 다쳐서 돌아왔으니 언제나 누군가의 돌봄의 대상이 되어야 하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모두 무너져내려 “위기”에 봉착한 남자의 모습을 굉장히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들은 정말 처절하게 찌질하고 비참하고 굴욕적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