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가 작가가 되다니..

by 청량음료

나의 아버지는 동화작가셨다. 앞의 문장이 과거인 이유는 나의 아버지가 16년 전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글을 쓰셔서 좋았던 점은 별로 없었다. 아니, 아버지를 이해하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고 그의 삶을 이해해 드리기 시작하기 전에 아버지와 이별을 해야만 했다는 표현이 옳겠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글을 쓰셨다.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작하셨던 몇 가지 사업장에서도 가게의 어둑한 구석에 앉아 글을 쓰셨고, 뒤늦게 들어가신 직장에서도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창고 같은 곳에 들어가셔서 글을 쓰셨다고 한다. 때로는 글을 쓰기 위해 훌쩍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셔서 엄마의 속을 상하게도 하셨다. 나 중학생 때, 30여년 전 쯤,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아빠가 정확히 어디로 가셨는지, 어디서 지내시는지, 식사는 잘 챙겨드시는지도 잘 모르다가 어느 날 아빠가 계시던 동네 주민이라는 분이 우리 집으로 전화를 하셔서 아빠가 버섯을 잘못 드시고는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전하셨다. 그 아저씨가 아빠를 잘 돌아보지 않았다며 엄마를 탓하듯 말씀하셨다는 말을 우리에게 전하며 엄마는 많이 속상해 하셨다.


아빠는 '부산 MBC 아동문학대상' 동화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시며 등단을 하셨다. 하지만 수많은 작가들이 그랬듯 생전에 빛을 보시지는 못했다. 아무도 보지 않았던 자신의 글을 누구보다 성실히, 꾸준히, 온 힘을 다해 쓰셨고 지금 우리 곁에 수많은 동화, 소설, 수필로 남아있다. 생전에 세상과 화합하지 못했던 아빠에게는 섬세한 예술가의 피가 흘렀을테다. 그래서 돈벌이에 능하지 못하여 가족들에게 늘 미안했고, 자신의 글을 가족들도 크게 관심없어 하여 많이 외로우셨을테다. 그런 아빠의 피가 나에게는 흐르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문득, 나도 글을 쓰고 싶어졌다. 아빠처럼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능력은 나에게 없는 것 같았지만, 나는 나의 솔직함을 무기로 내 생각의 흐름을, 느낌을 아주 솔직하게 표현해 보고 싶어졌다.

나는 역시 사랑하는 우리 아빠의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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