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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량음료 Jan 18. 2023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글쓰기

2022년에 나는 돈에 관심이 많았다. 어느 날 갑자기 내 마음에 심긴 ‘물질(돈)’에 대한 생각 씨앗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맘을 귀신같이 읽은 유튜브의 알고리즘으로 인해 무럭무럭 자라났다. 돈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든 자본주의 세상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돈을 벌어 경제적 자유를 얻어야 한다고 유튜브에 자주 등장하는 여러 젊은 부자들은 말했다. 그들은 시대에 잘 편승하여 유튜브 채널 운영으로, 스마트 스토어로, 부동산으로, 주식으로, 구매 대행으로 발 빠르게 돈을 벌었다고 했다. 그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예전에는 식구들 건사하기도 힘들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웠는데 이 길에 뛰어들어 포기하지 않고 하다 보니 생각보다 단 시간에 큰돈을 벌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돈에 대한 자유를 얻었다고. 그들은 그 비법을 나 같은 간절히 돈 벌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수하는 클래스를 운영함으로 또 돈을 벌고 있었다. 부러웠다. 이런 생각으로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으면서 행복하지 않았다. 금방 이룰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것도 몰랐기에 마음만 급하고 답답했다. 그렇게 1년이 흘러갔다.


최근 한국학교의 글쓰기 수업을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책들 중 하나를 읽게 되었고 오늘 완독 할 수 있었다. 강원도 산골마을의 분교에서 가르치고 계시는 권일한 선생님의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글쓰기’라는 책이었다. 경희여중의 강용철 선생님께서 아주 좋은 책이라고 추천해 주신 책이기도 다.


권일한 선생님은 오랫동안 학교 현장에서 초등학교 학생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계신다. 그런데 권 선생님이 가르치는 대상은 도시 아이들이 아니다. 한 반의 학생이 몇 되지 않는 강원도 산골 분교의 아이들이다. 시골 아이들은 때가 타지 않고, 순수하고, 자연과 함께해서 마음의 그늘도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네 명 중 세 명의 아이들 부모님은 이혼해서 한부모와 살거나 조부모님과 지내고 있다. 세상살이의 팍팍함 때문인지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살갑게 대해주지 않는다. 때로는 가정 폭력에 시달린다. 부모님이 정신질환자인 경우도 있다. 부모의 손길이 그립고 외롭다. 그런 아이들이 대다수이다.


권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과 마음을 내어놓는 치유의 글쓰기를 하신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은 왜 글쓰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귀찮고 생각하기도 싫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알고 있다. 실은 너무 마음이 아파서 내어놓지 못하고 표현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쑥스럽고 과연 이렇게 드러내어놓아도 괜찮은 걸까 의구심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멋지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자존심도 상한다는 것을.

선생님은 어떤 경우에도 가르치려고 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저 아이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쏟아낼 수 있도록 기다리고, 다독여 준다고 했다. 언제 이 아이가 변할까 의구심도 들지만 아이에게 공감해 주고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기다려 줄 뿐, 훈계를 하거나 빨간펜 선생님처럼 아이들의 글을 고치려고 들지 않는다고 했다. 때로 꾸짖을 때조차 아이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흘러서 한다고 했다. 그러면 아이들이 그 마음을 받아주고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쏟아놓으며 스스로 치유해 가기 시작한다고 했다.


사랑스러운 선생님과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이야기들, 아이들이 직접 쓴 글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내 마음이 찌릿, 울컥해 온다. 그리고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그래, 이렇게 살아야지.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서 살자. 돈이 아니고.


몇 년 전 서울 노원구 도서관 연합회에서 주최가 되어 진행하는 ‘방과 후 책 읽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프로그램을 신청한 학교나 기관에 가서 어린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 프로그램이었다. 복잡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내가 골라간 몇 권의 그림책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것이었다. 네 번의 교육 후 내가 가게 된 곳은 상계동의 가장 끝자락에 있는 산밑의 어느 초등학교였다. 그 동네는 아직까지 달동네가 남아있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들었다. 노원구에서 가장 소득 수준이 낮은 가정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의 방과 후 교실을 이용하는 어린이들 중 대여섯 명이 나의 그룹에 속해있었고 나는 그 어린이들을 위해 재미있는 그림책들을 4권 정도 골라 일주일에 한 번씩 학교로 찾아갔다. 아이들 중에서는 할 수 있어야 하는 나이가 한참 지났는데도 아직 글씨를 못 읽고, 못쓰고,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고, 부모님 선생님 모두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던 친구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데면데면하던 아이들도 한주 두 주 내가 찾아가자 나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너무나 바른 자세로 둥그렇게 둘러앉아 책 읽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교실문을 열자마자 내 눈에 들어왔던 그 예쁜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당시 나는 그림책 관련 수업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그림책을 많이 알고 있었고 그림책을 읽는 방법, 읽어주는 방법을 조금 알고 있었다. 먼저 겉표지를 앞 뒤 모두 연결되게 쫙 펼친다. 많은 그림책들은 겉면의 앞면과 뒷면의 그림이 연결되어 있다. 그 표지를 먼저 함께 보며 이야기를 간단히 나눈다. 그리고 맨 앞에 등장하는 그림을 보며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해 준다. 본문은 최대한 실감 나게, 또렷한 목소리로, 연기하듯 읽어준다.


아이들은 몇 번의 수업 만으로도, 내가 그림책을 읽어 주기도 전에 스스로 앞뒤의 겉표지를 펼쳐서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글을 잘 못 읽던 친구도 글자를 더듬더듬 읽어보려고 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들과 본격적으로 독서 수업을 한 것도 아니었고, 글을 써보자 한 것도 아니었고, 본문의 내용을 가지고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내가 읽어주는 몇 권 안 되는 그림책에 집중했다. 그 예뻤던 얼굴과 눈빛이 또 눈에 선하다.

나의 봉사활동에 칭찬을 보내기에는 그 어린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은 너무 짧게 끝나버렸다. 봉사를 시작하고 난 후 3개월쯤 뒤에 나는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독서교사로 일을 하게 되어서 어린이들과의 만남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일을 통해 나는 책이 선사하는 치유의 힘을 믿게 되었다. 책에 나오는 고운 색감의 그림이 아이들에게 주는 기쁨을 목격했고, 새롭고 신기한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나도 함께 행복했다. 이후 노원구 소속 아동복지교사로 네 군데의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게 되면서 만났던 많은 아이들도 신상계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어쩜 사연 있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은지.. 아이들은 책에 나오는 새로운 정보에 대해 신기해하기도, 가슴 아픈 이야기에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슬쩍 꺼내놓기도, 자신이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독일로 오게 되면서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중단되었고 꽤 오랫동안 그 시절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글쓰기’를 읽으며 내가 만났던 보석 같은 아이들이 보고 싶어 졌다. 그리고 그동안 고민했던 나의 진로 문제에 있어서도 답을 찾은 듯하다. 나는 이미 책의 힘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리고 권일한 선생님을 통해 한 명의 좋은 선생님이 아이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도 목격했다.


조금 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졌다. 내가 어디에서 학생들을 만나게 될지 아직은 모르지만, 어디에서 어린이들 혹은 청소년들을 만나든 많은 사랑과, 공감과, 위로와, 지식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돈을 못 번다며 안달복달하면서 보낼 것이 아니라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언제든 인연이 찾아온다면 그 아이에게 좋은 선생이 될 수 있게 준비를 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3월부터 새롭게 시작될 한국학교의 글쓰기 수업에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권일한 선생님께 배운 대로 그들이 마음을 쏟아낼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다독여주는 연습을 할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란다. 돌이켜보면 그 어느 작은 것 하나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험이 없었다. 신상계초등학교 방과 후 어린이들과의 만남도, 아동복지교사로 만났던 네 군데의 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과의 인연도, 우울한 날이 많았던 어린 시절 ‘닐스의 모험’을 읽으며 깔깔대고 웃으며 슬픔을 털어냈던 나 자신의 경험도, 두 아들을 키우면서 엄마로서 성장했던 시간들도 그 모든 것이 이어져 내가 나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기꺼이 마음 한 자락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갈 수 있었음을 믿는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서 치유받고 인생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독서와 글쓰기를 통한 카타르시스를 맛보기를 바란다. 옛 경험에 근거하여 조금 더 큰 꿈을 꾸고 있는 지금, 이제는 맞는 옷을 입은 듯 마음이 편하다. 물론 돈 벌기를 아주 포기하지는 않을 거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좇다 보니 돈도 따라오더라 하는 부러운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꿈은 공짜니까 크게 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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