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다는 의식주 중에서 독일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단연 '주'인 것 같다. 처음 독일에 왔을 때 살짝 놀란 것이 거리를 지나다니는 독일인의 옷차림이 수수하다 못해 서랍에 있는 옷 중에서 젤 위에 있는 것으로 아무거나 꺼내 입은 듯 보였다는 것이다. 독일인이 실용적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 정말이지 맞는 말 같다. 그들은 실용적으로 옷을 입는다. 학교에서 마주치는 학부모들은 분명 부자들일 텐데 딱히 그 사실이 옷차림에 드러나지 않는다.
독일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한창 독일어 수업을 듣고 있었을 때 한 반 친구로 친하게 지냈던 이탈리아인 알리샤가 해 준 말이 있다. 그녀는 독일인 가정에 함께 머무르며 그 집의 어린이들을 하루의 몇 시간씩 봐주면서 일정한 급여와 잠자리를 제공받는 Aupair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어서 독일인의 생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길 독일인들은 정말 요리를 안 한다는 거다. 그들은 끼니를 대충 때운다고 했다. 아침은 빵과 커피 정도, 점심은 마트에서 파는 샐러드, 저녁은 마트에서 파는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레토르트 식품.. 본인은 객식구임에도 그 집에서 요리를 제일 많이 한다며 심지어 본인의 음식을 그 집 식구들에게 먹인다고 했다. 물론 사람들마다, 가정마다 다르겠지만 맛있는 음식이라고 하는 것이 소시지, 감자요리, 쉬니첼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돈가스 정도가 유명한 이 나라의 식문화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는데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웬만하면 독일식당은 가지 않는다.
그런 독일인이지만 집을 꾸미는 데만큼은 목숨을 거는 것 같다. 물론 집이 자기 소유일 경우 목숨을 거는 강도가 더 세어진다. 우리 동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사시는 오래된 주택가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1960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벌써 지어진 지 60년이 훌쩍 넘었는데 이 동네 대부분의 집이 그렇다. 그런데 그냥 보아서는 집이 그렇게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다. 웬만한 사람들은 해마다 철마다 보수공사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다. 내가 보기엔 그냥 살아도 될 정도로 괜찮은데 그들 눈에는 탐탁지 않은지 집을 새로 페인트 칠하고 울타리를 고친다. 우리 바로 왼쪽 옆집에 사시는 분들은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부부이시다. 오래전에 은퇴하여 연금으로 생활하시는 듯하다. 봄이 오면 그분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정원에서 보내시면서 꽃을 심고 나무를 다듬고 잡초를 뽑는다. 식구가 두 명 밖에 없고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도 아닌데 우리 집 2층에서 내려다보이는 그들의 마당을 슬쩍 보면 화사한 꽃들이 마당 구석구석에 놓여 있고 두 분이 힘을 합하여 화분에 또 꽃을 심고 계신다. 앞뜰 뒤뜰에 놓여 있는 예쁜 인테리어 소품들도 며칠에 한 번씩 바뀌는 것을 보면 이분들이 정말 정원 가꾸는데 진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연금을 마당가꾸는데 다 쓰시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될 정도이다.
우리 집 오른쪽 옆집에 사시는 분들은 우리 집 주인 분들이다. 넓은 잔디가 깔려있는 마당은 한 번도 길어본 적이 없을 것 같이 늘 짧고 예쁘게 다듬어져 있다. 화단은 잡초 한줄기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반면 우리 집 화단은 늘 일부러 심은 식물과 잡초와의 경계가 모호할 지경으로 초록색이 뒤덮고 있다. 마음을 먹고 풀을 뽑으러 나가도 완전히 깨끗이 뽑아내기에는 나의 인내심도 부족할 뿐 아니라 이것들도 생명인데, 나름 예쁜데 싶어 완전히 제거하기가 미안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 집 마당은 깔끔하거나 예쁘지 않다. 호기롭게 심어본 몇 포기의 꽃이나 식물도 곧 시들어버리기 일쑤이다. 무엇보다 내 관심이 이 방면에 있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내 마음과 시간을 주지 않아서 일 것이다.
히로 산책을 위해 어두워진 동네를 지나가다 보면 밝은 집 안이 슬쩍 들여다보일 때가 있다. 그들의 집안은 그들의 바깥 마당과 같이 놀랄 만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어느 집은 오래되어 보이는 책장에 역시 오래되어 보이는 책들이 가득 꽂혀 있어 멋스럽고, 어느 집은 새로 인테리어를 한 듯 모던한데 적절한 식물들이 배치되어 깔끔하면서도 아늑하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반짝이는 전구들과 장식품들을 집 안팎으로 내걸어 분위기를 한껏 낸다. 그럴 때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마음이 어느 정도 충족된다. 하긴 만약 이웃의 마당이나 겉모습이 깔끔하지 않다면 경찰에 신고까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독일인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그들이 공간을 얼마나 깨끗하게 가꾸길 원하는지 알만하기도 하다. 정말 선하시고 따뜻하시고 다정하신 주인집 할머니도 동네의 허름한 집들을 보면 진심으로 화를 내시며 험담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 것을 보면, 이 분들이 이렇게 목숨 걸고 화단을 가꾸는 건 남들에게 보이기 위함인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집이라는 공간에 커다란 애착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집은 그냥 식구들이 머무는 곳이고 적당히 정돈되어 있으면 되는 그런 장소였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나의 공간을 예쁘게 꾸며보려고 시도했던 적이 없었다. 공간 꾸밈에서만큼은 나는 막눈이다. 어떤 소품을 가지고 어디에 놓아야 조화를 이루고 멋스러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제껏 어느 정도 남이 해 놓은 인테리어를 물려받아 ‘이 정도면 좋네’ 하고 만족하며 살아왔다. 내 막눈이 조금이나마 발전되지 못한 이유는 너무 잦은 이사 탓도 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계속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던 적이 없었다. 결혼 후 살게 된 러시아에서도 집주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집에서 적당히 맞추어 살다 돌아왔고, 한국에서는 5년간 무려 3번의 이사를 하느라 집을 꾸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또다시 해외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조그만 가구 하나도 제대로 사지 못했다. 이사를 하다 보면 그것이 다 짐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최소한의 가구로만 살았다. 독일에 와서도 마찬가지이다. 집주인의 가구가 가득 채워져 있던 러시아 집과는 달리 독일은 집만 빌려주기 때문에 우리 취향껏 꾸밀 수는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껏 그런 눈을 키워 보지 못한 나는 새하얗기만 한 이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몰랐다. 그냥 한국에서 가져온 최소한 가구를 놓고 여전히 멋없이 살고 있다. 요즘 들어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일이 많아지자 나만의 공간이 절실해졌다. 그런데 나의 서재로 쓸 만한 남는 방이 없어서 고민이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어떻게든 공간활용을 하셔서 조그만 공간을 꾸밀 수 있으실 텐데 나는 마음만 있을 뿐 방법을 몰라 푸념만 하고 있는 중이다. 아마 책상이나 하나 들이고 만족할 것 같다.
나는 과연 우리만의 소담한 집을 가지고, 나의 마음에 꼭 드는 간소한 가구들로 그 속을 채우고, 우리들의 추억이 서려있는 물건과 사진들로 세월의 흔적을 집안 곳곳에 새겨 갈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떠돌이 생활보다는 정착을 하여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 오랜 세월 노매드 인생을 살아온 탓에 이제 어디로 떠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찾아오더라도 내 마음이 이미 불안정한 상황에 익숙하여 내 공간을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인이 박힌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사실 나는 어느 공간에 뿌리를 내리고 싶은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평생 외국에서 살아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국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한국에서 살게 된다면 어디서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도 아파트일지, 주택일지, 서울 도심지일지, 자연 가까운 한적한 곳일지 잘 모르겠다. 모든 장소가 장단점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엉덩이가 가벼웠던 나는 한 곳에서 좀 살다가 좋은 점보다는 부족한 점이 더 크게 느껴지면 또 옮기다가, 거기서 또 옮겨가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까 스스로가 염려스럽다. 한 집에서 60년 이상을 살아온 옆집 할아버지는 다른 곳으로 이사 가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까? 어떻게 이 집이 평생을 살아도 좋을 나의 공간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을까.
2년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다시 우리 집을 찾아야 한다는 숙제에 당면하게 된다. 예전에 살던 노원구의 한 아파트는 사람들이 살기엔 더없이 편리하게 모든 편의시설이 도보 이동 가능 거리에 위치해 있었지만 히로가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사실 그 동네가 크게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은 우리 부부는 다시 네이버 부동산을 훑어보며 동네들을 찾아보고 있다. 히로와 함께 살만한 곳, 자연이 가까이 있으면서도 도심과 멀지 않은 곳, 편의시설이 가까운 곳, 학군도 괜찮은 곳, 무엇보다 가격이 착한 곳. 과연 찾을 수나 있으려나 모르겠다.
우리의 삶에 얼마만큼의 물질이 있으면 만족할 수 있는지는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를 것이다. 내가 살 공간의 평수, 방의 개수, 화장실 개수, 가구 종류와 품질 등도 전적으로 자기 취향이라 경제적인 능력만 있다면 취향에 맞게 집의 크기를 정하고 그 속을 채워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방면으로는 취향이 없다. 앞으로 집을 구한다면 정말 그 공간에서 남은 인생동안 살고 싶을 정도로 좋은 집을 만나고 싶은데 나에게 그런 안목이 있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좋은 집이란 돈이 비싸거나, 크거나, 비싼 가구를 들여놓는다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과 정이 가서 언제든 그 공간으로 돌아오는 걸음이 가벼운 그런 곳, 고향과 같은 곳, 치유가 있는 곳이 나의 집이었으면 좋겠다. 집이라는 공간은 가구보다, 평수보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할 것이므로, 언제나 서로가 사랑하는 공간, 우리 건이 완이가 어른이 되어 떠나가더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운 그런 공간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속적인 공간이 아니었을뿐 사랑하는 나의 가족 덕에 충분히 그런 따뜻한 공간을 가져왔구나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