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 서류가 떨어지고 난 다음, 나는 좀처럼 마음을 잡지 못했다. 올해 나의 계획에는 그게 메인이었으니까. 다른 건 생각해보지 못했으니까. 은연중에 될 거라는 기대를 했으니까. 하지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해졌다. 그래서 스터디 카페를 새로 연장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기간제도 떨어졌는데 내가 왜 시험공부를 해야 하지.' 하는 의문만 가득했다. 돈을 버는 게 중요했고 스스로 살아가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조급했고 1년 정도는 자신을 위해 투자해 보라는 친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물쩡 시간을 보내다 아침, 집 현관에서 약속이 있어 나가는 엄마에게 기간제가 떨어졌음을 얘기했다. 이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해야겠다. 나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엄마에게 기간제에 떨어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다 내 이야기를 듣고는 내가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거기까지였다면 나도 괜찮았을 거다. 하지만 엄마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종교얘기를 꺼냈다. 참고로 나는 무교다. 엄마가 믿는 종교를 믿으면 그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등바등할 필요 없다고 엄마는 담담히 얘기했다.
평소 같았다면 나는 네 하고 엄마를 배웅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아니 서른다섯의 나는 화가 많아졌다. 그래서 참지 못했다. 감정이 북받쳐 오르면 눈물부터 나오는 사람인지라 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에게 무슨 말을 못 하겠다고. 엄마에게 뭘 털어놓고 싶어도 모든 이야기가 다 그렇게 흘러가버려서 내가 아무 얘기도 하고 싶어지지 않는다고. 평소와 다른 나를 엄마는 착잡한 듯 바라보다 약속시간이 되어 어쩔 수 없이 나중에 얘기하다는 말을 남기고 나가셨다. 그렇게 현관에 나는 덩그러니 남았다. 눈물이 눈에 맺혀서.
서른다섯을 먹어도 나는 이렇게나 여전히 어리고 어리석다. 좀처럼 자라지 못하고 부모님 집 한편 딱 작은 방의 사이즈만큼만 자랐다. 남들은 결혼하고 애 낳는 동안 나는 나라는 애를 좀처럼 키워내지 못했다.
방에서 한참이나 울었던 것 같다.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서. 동시에 열심히 잘 살아보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나 싶어서. 억울하고 분하기도 하고 또 서럽기도 하고 그런 감정들.
그리고 나는 집에 있기 싫어 주섬주섬 카메라를 챙겼다. 필름카메라와 영화용 필름 몇 개를 챙겨 집을 나섰다. 집에, 그 방에 처박혀 있기 싫었다. 미세먼지가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집에 있는 건 더 싫었다. 그래서 부산으로 갔다.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부산에 영화용 필름을 맡길 수 있는 현상소가 중앙역 근처에 있다. 거길 애용한다.
버스와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아직은 나에게 사로잡혀있다. 남들이 어쩌는지 보이지 않고 혼자 곱씹고 곱씹는다. 그렇게 중앙역, 남포역 전에 자갈치역에서 내렸다. 어떤 마음으로 내린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좀 걷고 싶어서. 중앙역에 띠고 내려 사진을 맡기고 나면 다 끝이니까. 그렇게 앞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갔다. 자갈치역 앞은 상인들과 노인들로 북적였다. 정신없어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오토바이나 차에 치일 것만 같은 시장바닥이었다. 비린내가 풀풀 풍겨오는 골목 안으로 들어가 자갈치 시장 가까이 다가갔다.
좌판 사이를 비집고 걸으며 대야와 수조에 담긴 물고기와 해산물들을 힐긋 구경했다. 나는 별로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못 먹는 건 아닌데 가시 바르기가 너무 귀찮아서. 또 미끌거리거나 너무 바다향이 나는 건 별로라서. 그래서 딱히 그 길을 지나며 맛있겠다거나 먹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본 건 그냥 좌판에 앉아 생선을 손질하는 사람, 그걸 구경하는 사람, 양손 가득 검은 비닐봉다리를 들고 다니는 사람. 사람을 봤다. 나에게 집중할 때는 보지 못하는 세상이 있다는 걸 나는 안다. 1인칭으로 나의 인생을 집요하게 쫒을 때는 보지 못하는 삶이 그럴 때 보인다. 누군가의 인생을 생각하게 된다. 내 삶이 너무 고달프고 힘겨운 거 같다가도 생선 대가리를 내려치는 상인의 오래된 손길에 나도 모르게 함부로 저분은 언제부터 저 자리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생선을 손질하셨을까. 또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식들 뒷바라지도 했겠지. 점심식사는 하셨을까. 쉬는 시간은 있으신가. 나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사람들의 현실과 인생을 생각하며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 별의별 인생이 있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그래, 삶은 이런 거지. 사는 건 이런 거지.
그렇게 자갈치 시장에서 사람을 구경하다 영도 다리를 건너 영도 깡깡이 마을로 넘어갔다. 거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작업복을 입고 배에 붙어 땜질을 하는 사람들이 작업장 너머로 문뜩문뜩 보였다. 아주아주 오래되어 녹이 슬어 붉어진 작업장 벽과 바닥, 제철소나 공업소의 오래된 풍경이 눈에 담기고 나는 카메라를 들어 찍고 싶어진다. 언제부터 있었을까. 또 앞으로 얼마나 더 그대로 존재할까. 나는 또 상상력을 발휘하여 시끄러운 소리가 울리는 공업소 작업자의 아침과 저녁, 그리고 퇴근 후와 출근 전을 떠올려본다. 그 생생한 아침과 저녁을. 아무리 애쓰고 애써도 틀릴 수밖에 없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고리타분한 상상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성실함에 찬사를 보내고 싶어진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사진도 찍고 길고양이 구경도 하면서. 필름 두 통을 알차게 다 채워 중앙역 현상소로 가 맡겼다. 그리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달라진 건,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흐른다.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내가 해가 저무는 길 위 달리는 버스 안에 있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한다. 이런 삶도 있다고. 서른다섯에도 여전히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는 거라고. 그 수많은 인파 속에, 영도 끝자락 공업소에도 사람이 있듯, 수많은 아파트 건물 그 중간 어딘가 작은 방에도 사람이 있다고. 그런 인생도 있다고.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좀 낫다. 조금 더 살아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