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이 지났지만 엠비티아이 얘기부터 해야겠다. 나는 INFP이다. 지금은 또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다. INFP의 특징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내가 본 것 중 하나는 실행력이 별로 없다는 것. 그런데 나는 인프피계의 별종인지 아니면 엠비티아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게 사람마다 정해놓은 특징이 다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실행력이 있다. 그것도 아주 대책 없이 즉흥적으로.
어쩌다 가지게 된 마음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해보자. 그래야 뭐든 얻을 수 있다'는 식의 가치관이 내 안에 있다.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고 또 아니기도 했다. 어쨌든 그만큼 무턱대고 일을 저지르고 다닌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렇게 일을 저지를 때 나는 늘 일의 시작에 있어 잘 될 것을 기대한다. 무척 잘 될 것을.
어떤 식이냐면 인스타그램에 만화를 올렸을 적, 나는 내가 그린 만화로 유퀴즈온더블럭에 나가 인터뷰를 하는 상상을 한다. 고작 한 편 업로드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 상상이란 비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상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머리에 그려진다. 나에게 질문을 하는 유재석과 리액션하는 조세호까지. 또 조리 있게 대답을 하는 내 모습도. 누군가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어처구니없겠냐만은 상상이란 나만의 것이기에 누군가의 감시나 검열은 상관하지 않고 계속 흘러간다.
그런데 재밌는 건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퀴즈 인터뷰 같은 것 말고 그냥 조금 더 현실적인 상상조차도 말이다. 가령 어디 공모전에 내가 쓴 글을 출품했을 때. 물론 공모전에 당선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음을 안다. 하지만 그래도 유명인사가 되어 방송에 출연하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하나 미리 당선을, 또 당선되어 상금을 받고 출판을 하고 이런 일련의 일들을 떠올리고 나면 마치 내 상상을 비웃 기라도 하듯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스스로 인지했다면 상상하는 것을 멈추는 것도 방법이 아닌가 싶은데 이상하게 그건 또 쉽지 않다. 내 마음속 관심받고 싶고 잘 되고 싶은 욕망이 자꾸만 미리 선수를 치고 제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정말 자연스럽다. 의식적인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나의 모습이 머릿속에 재생되고 있다. 특히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걸을 때 그렇다. 이제 나이가 들어 잠자기 전에는 그런 생각이 잘 안 들고 일부러 밖에 산책을 하다 보면 상상이 그렇게 뻗어나간다.
허황된 미래는 너무 달콤하다. 공상에 빠져 걷는 일은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기능도 하는 것 같다. 다만 나이를 먹을수록 상상이 자유롭지 않고 현실과의 차이가 또렷해지는 것이 더 체감된다. 상상은 결국 상상에서 그치는 것이라는 글을 지금 쓰게 된 것처럼.
최근 유튜브에서 그런 영상을 봤다. 인프피들은 어떤 일을 상상함으로써 이미 뇌 속에서 그 일을 이뤘다는 착각을 하고 자체적으로 도파민 보상을 받아버린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뤄진 건 없는데 그냥 상상으로 성공을 다 꿈꾸고 끝마친다. 뇌는 그걸 진짜로 그렇다고 인지하고 행복한 기분을 만들어주지만 그 이후 결국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실제로는 일을 더 꾸준히 이어나갈 힘을 잃게 만든다는 얘기였다.
그 영상을 보고 깨달았다. 내 삶이 왜 이렇게 흘러왔는지를. 끈기 없다는 얘기를 그렇게나 듣는 이유를. 무슨 일을 하든 다 상상으로 성공을 맛보고 나 혼자 만족하고 끝나니 그다음을 실행할 의지가 생길까. 아니 오히려 머릿속은 이미 다 완벽하게 끝 맞췄는데 현실은 여전히 미숙하다는 걸 알게 되면 인지부조화가 더 심하게 오는 거지. 돌이켜보니 내 삶의 전반이 그랬다. 상상과 추락.
이렇게 밑밥을 깔고 최근의 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나는 또 상상을 하고 말았다. 이번엔 더 현실적으로. 기간제를 구하는 일에 있어 내가 원하던 학교, 내가 원하던 직장생활에 대한 상상을 그만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런데 조금 억울한 건 이번 상상은 충분히 할만하지 않은가. 작년에 강사일도 그 학교에서 했고 내가 교사로서 뭘 얼마나 대단한 인생을 꿈꿨다고. 그런데 결국 나는 기간제 서류에서부터 탈락했다. 면접을 잘 보는 상상에도 근접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더 확실하게 깨달았다. 아, 상상하면 안 되는구나. 그 어떤 것도 기대하면 안 되는구나. 인생은 역시나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구나.
이런 깨달음을 얻고 나서 나는 그럼 좀 변했냐고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는 않다. 조심하려고는 하는데 자꾸만 상상하게 된다. 어떤 일이 잘 되었을 때의 나를. 너무 오랜 시간 상상의 보상에 절여진 것인지. 현실의 나를 조금도 견디기 어려운 것인지. 자꾸 상상으로 도망치게 된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하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