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이중생활

나는 생계형 워킹맘입니다 9

by 뚜벅초

복직을 앞둔 무렵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업무용으로도 사적으로도 자주 쓰는 모 국민 메신저가 '멀티 프로필'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카톡 프로필을 이중으로 설정한다는 건 얼핏 '꿍꿍이' 내지 '남에게 말 못할 사생활'이 있는 사람들이나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사유는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이중의 페르소나'를 갖춰야 하는 워킹맘으로서 너무 적합한 서비스라고 생각해서였다.


복직 후 나는 카톡 프로필에 잔뜩 올라와 있던 아기 사진을 모두 내렸다. 그리고 누구의 얼굴도 올라와 있지 않은 무난한 풍경 사진을 걸었다.

내 아기는 우리 부부가 보기에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만, 그렇기에 자랑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없을 리 없지만 그것을 불특정 다수에게 보이는 문제는 다른 얘기다. 평소 업무적으로도 카톡 연락을 자주 하는 나로서는 누가 누군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내 가족(특히 아기)의 얼굴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다. 요즘은 SNS에서도 쉽게 남의 집 아이들 얼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대라지만, 워낙 험한 세상이다 보니 다양한 SNS를 운영하면서도 아기 얼굴은 정면으로 나온 건 피하거나 가려서 올리는 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나라는 사람이 일터에서조차 그냥 '애엄마'로만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애엄마라는 정체성을 부끄러워하거나 하는 건 전혀 아니다. 단 육아와는 상관없는 일터에서 나라는 사람의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 엉뚱한 정체성이 앞서 기억되는 건 좋을 게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비록 내가 일에 별다른 열정 없는 그냥 생계형 워킹맘이지만, 그래도 직장에 몸 담은 한은 직장인으로서만 평가되고 싶었다.

카톡 프사에 아기 흔적이 전혀 없는 나는 상대방이 먼저 물어오지 않는 이상 일적으로 만난 사람들과 아이 얘기를 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엄마 아빠와 조부모님 정도로만 이뤄져있던 우리 아기의 인간관계도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즉 나 역시 '아이를 매개로' 소통하게 된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방문교육을 시작하면서 선생님을 만나고 언어치료를 시작하며 센터 선생님을 알게 됐다. 더 나중에는 어린이집에 입소하면서 원장 선생님의 연락처도 내 폰에 등록됐다. 이들에게는 내 이름 석자나 직업보다는 누구의 엄마인지로 식별할 수 있는 게 필요했다.


나는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때문에 아기나 가족사진을 올리지 않은 메인 프로필 밑에 '부캐'를 만들었다. 아기와 함께한 사진, 가족사진, 주말에 다녀온 가족나들이 사진을 올리고 내 이름 석자 옆에는 '(OO맘)'이라는 설명을 덧붙여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나의 '부캐' 프로필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나의 사적인 친구와 지인, 가족, 그리고 아이를 매개로 만난 사람들뿐이다. 간혹 누군가는 자신을 멀티프로필로 해 둔 사람을 자신을 싫어하는(?)게 아닌가 싶어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는데, 내 경우엔 오히려 멀티프로필에 등록돼 있는 사람들은 (아기를 매개로만 소통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더 가까운 사람에 속한다.

즉, '부캐'이지만 오히려 '본캐'에 가까운 모습은 이쪽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나는 이쪽의 프로필 사진을 훨씬 자주 바꾼다.


어쩌면 워킹맘의 삶이라는 것 자체가 멀티프로필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서는 자기 역할에 책임감과 전문성을 가진 직업인이어야 하지만 가정에서는 아이에게 몰두하는 엄마로서 살아야 하는, 물론 카톡 프로필은 터치 몇 번에 쉽게 분류가 가능하고 그때그때 일일이 옮겨야 할 필요도 없지만 워킹맘의 역할변신은 하루에도 수시로 이뤄져야 한다. 그 낙차 때문에 어질어질하고 때로는 아주 일상적인 생활조차 큰 맘 먹고 해야 할 정도로 괴로운 날들도 있지만, 그만큼 내 세계가 넓어지고 깊어진다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 아닌가 싶다.

물론, 가끔은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넓어지고 깊어지고 싶지 않다'고 외칠 때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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