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 무너지는 순간
나는 생계형 워킹맘입니다 8
사실 코로나 유행의 지속에다가 내 업무의 특성상 복직 이후론 거의 재택근무를 주로 해 왔다. 물론 집에서 일을 하다 아이가 하원을 하면 노트북을 보자마자 다가와서 꺼버리기 일쑤이므로, 어디로든 나가서 일을 하기 때문에 진짜 '재택근무'를 하진 못하는 게 함정이긴 하다. 또 가까이 사는 친정엄마, 육아와 살림에 나보다 더 적극적인 남편, 무엇보다 지금까지 열 한 번 안 나고 건강하게 커온 아기라는 여러모로 행운이 따른 주변환경 덕분에 워킹맘으로서 나의 처지는 크게 나쁘지 않은 편이긴 하다.
그렇지만 이런 나조차도 수 차례 회의감에 빠질 때가 있다. 아이가 콧물감기에 걸려 등원을 쉬었을 때도 기적적으로 남편의 근무스케줄이 바뀌어 비번이 되었기 때문에 무사히 가정보육을 했다. 갑자기 회사에서 출근을 하라고 할 때도 근처 사시는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등원을 부탁드리고 출근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순간은 나 자신의 체력적 정신적 한계에 맞닥뜨릴 때다.
육아휴직을 하고 집에서 전업으로 아이만 돌볼 때도 난생 처음으로 우울증에 걸려 항우울제로 버티며 육아를 했을 정도로 내게 육아는 '진빠지는' 일이다. 남들도 다들 힘들다지만 그래도 행복감이 더 커서 그 스트레스가 상쇄되는 것 같은데, 아기에게는 너무너무 미안하지만 나는 솔직히 말해서 내 몸이 힘들면 행복이고 뭐고 다 소용없어지는 편이라 오로지 '내 의지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아이'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책임감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편이다. 더군다나 일까지 병행하니 아무리 매일같이 출근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돌발상황이 일어나면 걷잡을 수 없어진다.
남편이 야간 출근이라 전날 저녁부터 밤, 그리고 다음날 등원까지 혼자 해야 하는 날이었다. 교대근무직이기 때문에 이틀에 한 번씩 이런 패턴으로 지내고 있다. 사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서 오롯이 혼자 아이와 놀아주고,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나서 다음날 등원까지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긴 하다. 그나마 아이가 이젠 두 돌이 넘어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간혹 여러가지 이유로 아이가 심하게 잠을 설치는 날은 그야말로 불지옥을 맛본다.
이 날도 그랬다. 아이를 겨우겨우 재우고 거실로 나와, 하필 다음날 업무 일정이 조금 바빴기에 부엌에서 노트북을 켜고 일을 미리 조금 해두니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려던 찰나, 갑자기 잠에서 깬 아기는 끝도 없이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이가 나려는 건지 악몽을 꾼 건지 알수가 없었다. 원래부터 밤잠이 없어 자주 깼고, 지금도 안 깨고 자는 날이 월 1회도 되지 않을 정도로 유독 밤잠이 예민한 아기다. 그러나 이 날은 특히 심했다. 안고 달래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다음날 출근은 해야 하는데 세 시간이 지나도 잠에 들지 않는 아기를 안고 같이 울다가 성장통이나 이앓이면 해열진통제를 조금 먹여보면 낫다는 말이 생각났다. 문득 신생아 시절에 첫 예방접종을 맞고 혹시나 접종열이 나면 먹이라고 받았던 챔프시럽이 떠올랐다. 그 뒤로 아이가 아픈 적이 딱히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맙소사 유통기한이 지나 있어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너무 '건강한' 아이를 둔 탓(?) 이었나.
Polina Smelova 님의 사진, 출처: Pexels
그렇게 5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겨우 잠이 든 아기와 세시간 남짓의 쪽잠을 자고 비틀비틀 일어나 아침을 주고 등원준비를 하는데 이번엔 옆집에서 하는 인테리어 공사 소리가 온 집을 울렸다. 유독 드릴 소리를 무서워하는 아기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엉엉 울며 품에 안겨 떨어질줄을 몰랐다. 아무리 괜찮다고 달래도 소용없었다. 이날은 재택근무가 아니라서 출근을 해야 했고 시간은 한없이 지나가고 아이는 품에서 떨어질줄을 몰라 옷도 못 갈아입히고 양치도 할 수 없었다.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를 달래려고 했는데 빌어먹을 공사소리는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그만 좀 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좀 떨어져 있어야 어린이집을 갈 거 아냐!"
나도 모르게 이성을 완전히 잃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말았다. 지금껏 아이에게 짜증을 낸 적은 간혹 있었고 이조차도 너무 미안해서 바로 사과를 하고 난리였지만 이렇게 어린아기에게 소리를 지르다니 내 자신이 너무 몹쓸 아동학대범처럼 느껴졌다. 아기도 깜짝 놀라서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결국 아기를 억지로 떼어놓고 옷을 입히고 양치도구를 가져와 시켜 부랴부랴 집밖으로 나왔다. 이제야 정신이 들어 아기를 끌어안고 미안하다며, 공사소리가 많이 무섭고 놀랐지, 네가 미워서 잘못해서가 아니고 내가 너무 힘들어서 잠시 정신을 잃고 나쁜 행동을 했다고 사과했다. 드릴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아이도 금방 안정을 되찾고 편안하게 주변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무일 없었던 듯이 평범하게 주변 꽃들을 설명해주며 등원을 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엉엉 울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한테 쓰레기처럼 소리를 질렀다고, 이런 생활은 더 이상 못하겠다고, 내가 너무 부족한 엄마고 자격이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 다행히 지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위로하며 퇴근하면 저녁엔 자신이 아이를 볼 테니 저녁으로 맛있는 걸 먹고 밤엔 따로 푹 자라고 했다. 다정한 남편 덕분에 그 날은 어떻게 넘어갔지만 나는 다시 한 번 내 한계를 보고 만 날이었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절망감으로 고통받는 건 휴직 중에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나는 만약 내가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됐다면, 그렇게까지 화를 내지 않고 넘어갔을 수도 있었을텐데 싶어서 몹시 괴로웠다. 내가 일을 하지 않고 좀 더 여유롭게 아이를 볼 수 있었다면, 일을 안 해도 될 정도로 우리 집이 여유로왔다면, 옆집 공사 소리 따위를 들어야 할 정도로 낡고 좁은 아파트에 살지 않았더라면, 아니면 하다못해 입주 도우미를 둘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면 엄마자격 없는 나는 돈이나 벌고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도 됐을텐데 같은.
하지만 어차피 이런 것들을 불평하는 것은 다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무방비 상태의 안 그래도 스트레스로 예민해져 있는 아기에게 소리를 지른 나의 잘못은 어떤 말로 꾸며도 합리화되기 어려운 명백한 실책이다. 사실 여기에 이 내용을 올릴까 말까도 고민했었다. 자칫 '엄마도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다'라는 식의 위로를 듣고 합리화를 하려는 의도로 읽힐까봐 걱정이 됐다.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 역시 어릴적 부모님이 감정 조절을 못 해 나에게 화풀이를 하고 때로는 맞고 자라며 그 상처를 고스란히 적립해 왔기 때문에, 부모의 감정조절 미숙이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사람이니 완벽할 수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아이에게 안정적인 환경을 주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하는 어른이다.
어쩌면 이런 순간들이 누적되면 나는 결국 미래의 가난을 감수하고 일을 그만둘지도 모른다. 지금은 따뜻한 남편의 배려와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아 그럭저럭 워킹맘 생활을 이어가지만 상황이 언제 바뀔지도 모른다. 워킹맘 생활은 살얼음판같다는 선배 엄마들의 경험담이 뼈아프게 다가오는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