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느린데도 일을 계속한 이유

나는 생계형 워킹맘입니다 7

by 뚜벅초

아이가 돌이 한참 지나서도 걸음마를 하지 못했다. 당연히 말도 하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은 걷다 못해 뛰어다니고 말도 제법 단어로라도 하던데 우리 아기는 도무지 소식이 없었다.

때맞춰 해야 하는 영유아 검진을 하러 소아과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그나마 잡고는 걷는다고 하니 좀 기다려 볼 수는 있다 했지만 어쨌거나 많이 늦다는 게 결론이었다.


그 시기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다.

복직 후 직장에서는 이래저래 나를 소외시키며 스트레스를 줬고 아이는 도무지 유의미한 발달을 보이지 않으며 점점 또래와 차이를 보였다. 지난 1년 3개월간의 육아휴직 동안 그 흔한 미디어도 한 번 안 보여주고, 한번 할 때마다 집안 청소와 목욕을 해야 했지만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엄마표 오감놀이를 검색해서 해 주고, 아이의 옹알이에도 일일이 반응하며 자극을 줬건만 뭐가 문제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어서?

이유식, 유아식 만든다고 주방에만 있느라 아이랑 덜 놀아줘서? 우리 아기는 돌무렵까진 계란이나 갑각류 등 일부 낯선 재료를 먹으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이 때문에 혹시나 싶은 마음에 복직 전까지는 유기농 매장에서 산 재료로 밥, 반찬, 간식까지 손수 해 먹였다. 아이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학습이나 발달적인 면 보다는 먹거리에 신경을 더 쓴 것이 사실이었다.

그 와중에도 난 이기적인 엄마였는지, 아이한테 미안한 감정보다는 '억울함'이 앞섰다. 왜 나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내가 그렇게 육아를 잘 못했나?


큰 병원에서 종합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자폐나 다른 유전질환은 의심되지 않으나 발달이 늦는 것은 맞으니 결국 치료를 열심히 '달려야'한다는 모호한 결론밖에 받지 못했다.

지역 맘카페를 검색해 보니 다행히 몇 곳의 복지관에서 발달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상업성도 없고 가격도 저렴해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수업을 받으려니 무려 1년의 대기가 필요했다. 일단 대기라도 걸려고 전화를 거니 아이가 몇 개월이냐고 물어 왔다. 16개월이요, 라고 했더니 그렇다면 아이가 너무 어려서 등록이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니, 병원에선 최대한 빨리 치료를 받으라고 했는데? 어쨌거나 대기가 1년이라니 지금 미리 걸어두면 1년 뒤면 치료를 받을 수 있겠네요, 했더니 대기를 걸어 주셨다.


MART PRODUCTION 님의 사진, 출처: Pexels


결국 동네 사설센터에 방문했다. 센터 원장은 우리 아기를 보더니 다짜고짜 놀이치료만 받을 게 아니라 언어치료와 특수체육까지 받아야 한다며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다 받으려면 가격이 얼마인가요? 한 수업당 8만원이고, 언어치료는 좀 더 높아 10만원입니다. 한달이요? 아뇨, 한 수업이요. 30분 수업에 10분 상담이요.


즉 계산하자면 8만원 짜리 수업을 주 1회씩 총 2가지를 듣고, 10만원짜리 언어치료는 주2회가 기본이므로 주당 20만원씩을 하면.... 한 달에 최소한 164만원의 금액을 두 돌도 안 된 아기의 재활치료비로 사용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물론 알고 있다. 아기가 정상발달이 될 수 있다면, 혹은 되지 못하더라도 그나마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면 저 정도 돈은 부모된 입장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하지만 매달 백수십만원은 정말 객관적으로 볼 때 일개 서민의 입장에서 '아무렇지 않은' 돈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발달 관련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니, 그런 언어치료니 놀이치료니 하는 것들은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 불과한 것이었다. 많이들 하는 ABA나 조기교실 같은 건 수업 한 번당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수백만원까지 호가한다는 게 선배맘들의 전언이었다.


처음 아이가 느리다는 걸 알게 됐을 땐 아무리 그래도 아이가 정상발달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는데, 마땅히 일을 그만두고 아이에게 전념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리 잡기도 힘든 센터 수업 라이딩을 다니고 집에서 열심히 자극을 주면서 발달 관련 전문 지식도 공부하는 게 마땅히 내가 할일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기준에) 어마어마한 센터 비용을 들으니 섣불리 직장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많은 선배 엄마들은 어차피 발달 치료라는 건 장기전이 되기 쉽기 때문에 외벌이로 치료비를 감당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조언을 했다. 더군다나 우리는 지난 1년 반 동안 열심히 가정보육을 해왔지 않은가? 어차피 가정보육을 해도 느릴 수밖에 없다면 굳이 직장을 그만둔다고 해서 당장 수가 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일단은 열심히 돈을 벌어 아이의 발달에 필요한 것들을 해 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당시는 남편이 휴직중이라서, 남편이 센터 치료와 함께 혹시나 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대근육을 늘릴 수 있는 문화센터 수업을 데리고 다녔다. 그 전에는 거들떠도 안 봤던 방문 수업도 결제해 매주 한 번씩 집으로 선생님이 방문해 1:1 수업도 시켰다. 신경을 쓴 덕분인지 아니면 때가 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아이는 개월수가 차니 스스로 걷고 단어 수준이지만 말도 하기 시작해서 한 시름 놓게 됐다.


물론 우리 아기는 아직 세 돌도 되지 않은 만큼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다. 우리 부부가 둘 다 복직을 하면서 아이를 기관에 보내게 되며, 언어치료 수업도 부득이하게 줄였기 때문에 걱정되는 마음도 크다. 아직도 아이에게 혹시나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일반적인 기관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또래와 차이가 나게 된다면 바로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할 각오도 하고 있다. 하지만 일단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 지금 현 시점에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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