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 엄마가 외향 아이를 키웁니다

by 뚜벅초

육아 관련 SNS나 에세이를 읽으면 10에 9는 부모를 똑 닮은 아이에 대한 신기함을 이야기한다. 사소한 습관부터 크게는 기질, 성격까지. 요즘 유행하는 MBTI도 높은 확률로 비슷한 글자라고들 한다. 당연히 유전적으로 유사점이 많으니 당연한 현상이다. 심지어 주변의 우리 아이 또래를 키우는 가정을 봐도, 대부분은 부모와 아이의 성격이 비슷하다. 아이가 목소리 크고 활달하고 사교적이면 부모님도 모임을 좋아하고 적극적이다. 아이가 조용하고 낯을 가리면 부모님도 내성적인 편인 경우가 많다.


우리 아이도 얼굴은 제법 나를 닮았다. 아기 때부터 눈을 보면 자꾸 내 어린시절을 보는 것 같아서 깜짝깜짝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커갈 수록(물론 아직 네 돌도 안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으나) 아이의 성격은 나와 많은 점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나는 소위 '소문자 i'라고 하는 극내향 성격인 반면 우리 아이는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사람과 친분을 맺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은 전형적 외향인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의 가장 깊은 콤플렉스는 내성적인 내 성격이었다. 그냥 단순히 내향적인 정도면 모르겠는데 내 경우는 그 정도가 좀 심해서, 사회성 자체가 몹시 떨어졌다. 6살때부터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항상 기 센 아이들에게 치이고 당하기 일쑤였고 간식을 가져가면 몽땅 뺏겼다. 학창시절도 좋은 기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게다가 우리 엄마는 자타공인 '자유방임주의'셨기 때문에 그런 내 고충에 대해서는 "니가 알아서 잘 할 일이지 나보고 뭐 어쩌라고"식의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나는 홀로 외롭게 각종 처세술 책을 읽어가며 사회성을 후천적으로 길렀고, 그 결과 20대 전후부터는 그럭저럭 사회인 코스프레를 할 정도로 평균적인 사회성을 갖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나에게 여전히 기 빨리는 일이며, 코로나 시기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 전혀 답답하지 않게 느껴지는 뼛속까지 내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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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성장배경을 갖고 있다 보니 아이가 아기 때는 기관에 보내는 것이 무척 걱정이 됐다. 높은 확률로 아이는 부모를 닮는다는데, 남편도 나 만큼은 아니지만 외향과 내향으로 구분짓자면 누가 봐도 내향인에 속하는 얌전한 성격인데...우리 아이도 아마도 비슷할텐데, 자꾸만 유치원 시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악몽이 떠올라 불안했다. 내 아이도 만약 똑같은 일을 겪는다면 난 지체없이 일을 그만두고 내 아이를 보호하리라, 하는 다짐도 했다(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부분 때문에 코로나 등 다른 요인도 있긴 했지만 어쨌거나 육아휴직을 부부 모두 최대로 내서 2년간 가정보육을 하고, 맞벌이 가정 치고는 나름대로 최대의 가정보육을 한 뒤 25개월이 되어 소규모 가정어린이집에 보냈다.


나의 어린시절을 생각해보면 그래도 원아 수가 적고 선생님이 섬세하게 케어해줄 수 있는 어린이집이 그나마 아이에게 안정감을 줄 것 같았다. 당시 그 어린이집은 저출산 여파로 전체 원아수가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어린시절의 나라면 아무래도 이런 곳이 더 편안했을 것이다. 보통 아이들이 처음 기관에 가면 며칠은 울고불고 엄마를 찾는다는데...... 우리 아이는 얼마나 울까?


놀랍게도 우리 아이는 전혀 울지 않았다. 지금 44개월인데 25개월 첫 등원날 이후로 어린이집 문 앞에서 운 적이(장난감 가져가고 싶은데 못 가져가게 한다고 떼쓴 거 빼고는) 단 하루도 없다. 대충 건성으로 인사하고 다른 친구들 이름을 부르면서 같이 놀자고 꺄악꺄악 거리면서 뛰어들어간다. 선생님들 말로는 우리 아이가 분위기 메이커라고 한다. 나는 30 몇년을 살면서 한번도 인사치레로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다. 일주일만에 같은 반 애들 이름도 다 외우고 심지어 여자친구(?)도 만들고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다른 반 아이들 얼굴이랑 이름도 외워서 동네에서 만나면 아는척을 한다. 나는 학교 다니면서 같은 반 애들 이름도 잘 몰랐던 것 같은데..


참고로 내가 고심해서 고른 소규모 가정어린이집은, 아이는 처음엔 잘 다니다가 나중에는 심심하다는 식의 반응을 했다. 하긴 그 때는 지금처럼 표현을 잘 하지는 못했을 때라 그냥 가기 싫다고 이따금씩 말을 할 뿐이었다. 나는 혹시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나, 엄마랑 떨어지기 싫은가 별별 걱정을 다 했다. 하지만 때마침 그 어린이집이 원아수 부족으로 갑자기 폐원을 하고, 원아수가 훨씬 많고 규모가 큰 다른 민간어린이집으로 전원을 하게 됐다. 아이는 이쪽을 훨씬 좋아했다. 친구들도 많고 활동도 많기에 활발하고 외향적인 아이 성격에는 이쪽이 훨씬 맞았던 거다. 이처럼 부모 자식간 성향이 다르다보니, 내가 내 어릴적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게 정작 내 아이에게는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인 경우도 있었다.


내가 내향인이다보니 내 주변에는 사실 뼛속까지 외향인은 잘 없다. 우리 부모님도 굳이 따지면 내향에 가깝고 친구들도 정도는 다르지만 대체로 MBTI의 I를 담당하고 있다. 기껏해야 회사 동료나 오다가다 알게 된 사람들 중에나 외향인들을 보는데 아무래도 기질이 다르다보니 막 가까워지진 않는다. 그런데 내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 내 자식이 바로 그 외향인이다. 나는 우리 아이를 키우면서 외향인에 대한 이해를 어느 때보다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열심히 책을 찾아보고 주변 사람들을 모방하고 후천적으로 시행착오를 거쳐 배웠던 사회성과 눈치를, 우리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자연스럽게 터득하고 있었다. 난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려면 지금도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야 하는데, 뼛속까지 외향인에겐 그런 건 필요 없다. 그냥 놀고 싶으면 가서 같이 끼면 된다. 마치 원래 알던 사람처럼.


30대 후반인 내가 4살짜리 우리 아이의 눈치와 센스를 보고 속으로 놀랄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놀이터에서 누군가가 장난으로 아이를 놀리면, 아이는 싫다는 표시를 기분 나쁘지 않으면서도 분명하게 표현을 한다. 바지에 응가한다고 형 누나가 놀리면 엉엉 울거나 당황하는게 아니라 "그래 난 응가대장이다~!"하면서 장난을 쳐 버린다. 그러면 다같이 하하호호 웃고 넘어가게 된다. 한번은 경조사에 아이를 데리고 간 적이 있는데, 내 대학교 동문들이다보니 당연히 아이와는 완전 초면이었다. 모두들 어른이었고 단 한명은 초등학생 누나 한 명이었다. 집에 먼저 가면서 어른들과 우리 아이가 하이파이브를 하는데, 어른들과는 있는 힘껏 세게 손을 치더니, 누나한테는 살살 조심스럽게 손을 치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던 아이들도 좀 철이 들고 사춘기가 오면 갑자기 내향적이 되거나 정도가 덜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아이도 부모의 영향을 받아 그렇게 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내가 갖지 못한 기질을 내 아이가 갖고 있다는 점이 마냥 신기하고 때론 재밌다. 한편으론 내가 겪었던 암울한 유년기를 이 아이는 상대적으로 덜 겪을 것 같아서 안심도 되고, 이대로 쭈욱 이렇게만 커 줬으면 더 바랄게 없단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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