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느껴도 괜찮아

by 뚜벅초

워킹맘으로 육아를 하면서 각종 육아 조언과 책을 읽다 보면 '귀에 박힐 정도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그건 바로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많은 엄마들이 육아를 하며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음을 방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조언이 무색하게도 나는 엄마가 되자마자 거의 죄책감과 항상 함께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른 엄마들도 비슷한 것 같다. 36개월까지 가정보육해야 한다고 어떤 소아과 의사가 유튜브에서 그랬다는데 주어진 육아휴직은 1년 남짓 뿐이라 돌쟁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복직해야 하는 친한 워킹맘 동료도 죄책감으로 눈물을 쏟았고, 요리에 소질이 없어서 각종 재료를 정성껏 사다가 밤새 이유식을 만들어도 아기는 온통 뱉을 뿐이라 결국 시판 이유식을 사서 고기를 더 넣어 먹인다는 어떤 엄마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 역시 참다 참다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나면, 몸살이 나거나 집안일로 바빠서 아이에게 영상을 틀어주고 나면, 그 외 이런저런 이유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놈의 육아서와 유튜브들은 어쩜 그렇게 '병 주고 약 주고'의 달인들인지, 36개월까지 가정보육을 해야 아이가 안정적으로 자라고, 영상은 되도록 보여주지 말고, 이유식은 탄단지 맞춰서 유기농으로 엄마가 직접 만들어 줘야 하고, 모유수유하고, 자연분만해야 아이가 건강하게 자란다고 열변을 토해 놓고는 마무리에 급하게 '이렇게 못 한다고 해서 엄마가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어요'라고 한다. 하지만 정상적인 인지기능을 가진 엄마라면 저 중에 하나라도 못하면 묘한 죄책감이 들 수밖에 없다. 그게 응당 당연한 반응이다. 너 그렇게 살지 말라고 혼내 놓고는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죄책감 갖지 말라니 이게 말이야 방구야.


사본 -pexels-kelly-3119975.jpg 사진: pexels


그래서 요즘 엄마들은 이중고에 시달린다. 일도 육아도 다 잘해야 하기 때문에, 엄마가 몸이 한 개인 탓에 육아서대로 정석 육아를 하지 못하지만, '죄책감도 갖지 말고 당당하게' 육아를 해야 한다는 것. (생각해보니 삼중고+a인 것 같다..) 그래서 애써 마인드 컨트롤까지 해야 한다. 죄책감 가지면 아이가 그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정서에 악영향을 받는다고 하니까.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이런 말을 하시는 분들은 자신의 부모님이 말하시지 않은 속 마음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도 있거늘...난 말하지 않는 속마음은 잘 모르는 불효자식이라서 그리 공감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아이도 딱히 부모님의 의중 같은 건 관심 없어 보인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죄책감이라는 게 과연 무조건 불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도 남는다. 죄책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스스로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감정'을 의미한다고 나온다. 여기서 잘못이라 함은 법으로 명시된 것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는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테면 돌까지 모유수유를 한다든지 2박3일 진통에 시달리면서도 꿋꿋이 자연분만을 한다든지 36개월까지 가정보육을 한다든지 등 말이다. 여기에는 딱히 정답도 없고 심지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문제가 되는 건 '자신'의 가치관에 의거해 다른 사람의 육아방식을 판단하고 죄책감을 강요하는 것이다. '내 기준에 자연분만을 안 하는 건 잘못인데 왜 너는 죄책감을 갖지 않지?'하는 것들 말이다. 본인이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게 아닌 이상 다른 사람을 정죄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육아에서는 유독 무경험자조차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참견하는 것이 일반화돼있다.


하지만 내가, 내 가치관에 의거해 잘못이라고 생각되어 죄책감을 갖는 건 과연 나쁜 건가? 이는 내 양심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과정일 뿐이다. 양심이 없는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속칭 '사이코패스'라고도 한다(이것이 정신의학적으로 옳은 정의인지 여부를 떠나서). 우리가 사이코패스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살면서 죄책감을 안 느낄 수가 없다. 더군다나 육아라면, 대상이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우리 아이라면 뭔가 조금만 잘못된 것 같아도 죄책감이 찾아오는 것 자체는 너무 당연한거다.


그래서 나는 육아를 하면서 느끼는 죄책감을 무조건 애써 몰아내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적절하게 이용하려고 한다. 일을 하느라 평일에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는 데 죄책감이 들면, 그 죄책감을 원동력 삼아 퇴근 후와 주말은 피곤함을 무릅쓰고 개인 시간을 최소화하고 아이와 양질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아이에게 영상을 너무 많이 보여준 것 같아 죄책감이 들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이와 밖으로 나가서 신나게 놀려 주려고 노력한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나면 100% 죄책감에 시달리며 잠을 설칠 게 뻔하므로, 3번 화 낼 것 1번 화 내고 참게 된다. 여전히 완벽하지 못하고 허점 많은 엄마지만 죄책감이 주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이를 더욱 아이를 위해 노력하는 원동력으로 삼으면, 좋은 엄마로 가는 방향으로 1mm라도 더 가까이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