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NS에서 그야말로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드는 문구를 봤다. '요즘은 결혼하고 육아하는 걸 힙하다고 하더라'. 결혼해서 애 낳고 키우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정말 의외의 이야기였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고 출산은 바보들이나 하는 선택인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파다했다. 나 역시 그런 분위기의 영향을 받아서, 결혼 전까지도 '내가 정말 눈이 멀어서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 싶은 걱정에 잠을 설쳤다. 물론 결혼을 하고 나서는 그때의 걱정이 무색하게 훨씬 편안해진 마음으로 살고 있지만. 아닌게 아니라 올해 들어서 혼인율과 출산율도 제법 유의미하게 반등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여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혼과 출산을 경원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출산율은 유례없을 정도로 바닥에 내리꽂혔고 그에 대한 경각심이 애 키우는 우리같은 사람들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확산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몇 년 전처럼 '돈 없는데 애 낳는 것은 자식에게 죄 짓는 것', '뭐하러 애를 주렁주렁 낳아서 고생시키냐' 같은 무지성적인 비난은 자중하는 분위기가 된 듯하다. 무계획적으로 낳아서 아이를 방치, 학대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고서야 그래도 결혼해서 출산하고 육아하는 것은 애국자까진 아니더라도 그래도 공동체를 위한 관점에서 적어도 이로운 선택이라는 인식은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아무리 애를 애국하려고 낳는 건 아니라지만, 어쨌거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다음세대가 존재해야 현 세대도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건 가치판단 이전의 현실이기에 나도 이에 동의한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서, 결혼과 출산이 왜 힙하다는 걸까? 물론 단순히 반어법일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여러 가지 뜻이 내포돼 있는 것 같다.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해 보자면, 이제 결혼과 출산은 과거 부모님 세대처럼 그냥 인간이면 모름지기 무조건 해야하는 필수 코스가 아니라 '일정 수준의 경제력과 안정성을 보장받은 계층에 한해서만 허용되고 있는' 것으로서 그것을 해냈다는 것은 본인이 '그럴 만 하다'는 것을 인증했다는 소리가 아닐까 싶다.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인 시대에 그래도 가정을 꾸릴 만한 집을 자가든 전세든 마련할만한, 수입과 자산과 직장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소리다. 말하자면 과거에 오마카세와 호캉스가 힙했던 이유는 그걸 소비할 만한 여력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도구였지만 이제는 고작 몇십 만원 대 오마카세, 호캉스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자금동원력을 시사하는 결혼과 출산은 더욱 선망의 대상이 되어버렸음을 자조적으로 이르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렇게 뻔한 해석 말고, 조금 다른 각도로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를테면 이런저런 변주에 질린 사람들은 결국 클래식한 것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견 고리타분해 보였던 결혼하고 출산해서 아이 키우고 사는 삶 그 자체가, 인류 역사 수십억년동안 이어져왔던 클래식의 끝판왕인 이 라이프스타일이 또 새롭게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사 별 게 있는가. 나도 내일모레 마흔줄을 앞두고 있다 보니(비록 인생선배님들 관점에선 애송이의 주름잡기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인생이란 거 참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막 그렇게 지극히 행복하기만 한 삶이라는 건 애초 파랑새와 같고, 그냥 잔잔한 고해 속에서 순간순간 나타나는 행복의 순간들을 만끽하는게 보편적 인간의 삶이라는 것. 결혼 안 하고 출산 안 하면 엄청나게 꽃길만 열릴 것 같지만 사실 인간의 삶은 어떤 선택을 해도 어느 정도의 고해를 동반하고야 만다는 것.
생각해보면 나의 경우 출산하기 전, 결혼하기 전에도 딱히 힙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어른들이 사회가 시키는대로 이런저런 통과의례를 준비하느라 바빴고 예기치 않은 삶의 고난으로 고통스러운 시기들을 겪었다. 돈도 없고 아는 것도 별로 없던 어리고 젊은 시절에는 어디 가서 즐길 여력도 없었다.
오히려 나는 아이를 낳고 사회에서 소위 트렌디하다고 여겨지는 행동들을 하게 된 편이다. 예를 들면 싱글일 때는 잘 가지 않던, 핫하고 사람 많고 재미있는 곳을 주말이면 차 끌고 아이 보여주러 가서 열심히 사진도 찍고 아이를 놀아준다. 셀프 브랜딩이 대세라는데 아이 낳고 육아 블로그하고 브런치에 육아 글도 쓰면서 처음으로 책도 내고 외부 강연도 나갔다. 갓생이 유행이라는데 20대 때는 맨날 침대와 한몸이 됐던 거 같은데 이제 아이를 키우니 강제로 미라클 모닝,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세 끼 챙겨 먹고 방탕한 삶 따위는 꿈도 못 꾼다. 알지도 못하던 '아파트' 같은 최신 유행곡을 아이가 유치원에서 듣고 와서 부르느라 반강제로 트렌드에 발맞추게 된다. 앞으로 아이가 더 자라면 최신 유행에 더 빠삭해질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혼과 육아가 힙한지 아닌지는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반가운 점은 예전과 달리 결혼과 육아에 대해 무작정 부정적인 관점만 늘어놓다가 또 무책임하게 '하지만 낳고 나면 사랑에 빠져서 힘든 건 다 잊어버릴 거야', 혹은 '지 먹을 건 다 갖고 태어나니까 걱정 안 해도 돼'라고 얼버무리는 식의 담론보다는 좀 낫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결혼과 출산과 육아에 적합한지 여러모로 심사숙고하되, 그 이후에는 충분한 책임감이 동반된다면 무조건 지옥길만 열리는 것이 아닌 '진짜 어른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열릴 수 있음을 알려 주는 기성세대가 되고 싶다.
결혼 출산 육아라는 요즘 가장 힙한 삶을 살고 계시는 여러분께 추천하는 책,
<두 마리 토끼 잡는 워킹맘 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