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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없어서 더 편안한 삶

by 뚜벅초

20대 시절에는 주말 일정이 비어 있으면 왠지 초조해졌다. 남들은 불금이라고, 불토라고 신나게 논다는데, 내가 이 빛나는 청춘을 집 구석에 처박혀 있으면 왠지 직무유기를 하는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휴대전화 주소록을 넘겨 가며 약속 잡기에 열중했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친구들에게 문자를 남겨서 약속을 잡았다. 가기 싫은 모임에 나가고 하다못해 온라인 동호회라도 가입해서 사람들을 만나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이어리를 빼곡하게 채운 일정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늘 공허했다. 사람들을 만나 웃고 떠들고 돌아오는 길에는 어김없이 마음의 허기가 엄습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소심한 성격과 좁은 친구관계가 콤플렉스였던 다는 어떻게든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넓혀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연락을 돌리고 만남을 가졌다. 심지어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지 못하고 억지로 관계를 이어갔다.


타인을 자신의 이익과 즐거움을 위한 도구로 삼기 좋아하는 나르시시스트의 가장 좋은 먹잇감은 자존감 낮고 자기 검열이 심한 에코이스트라고 한다. 에코이스트는 나르시시스트의 인신공격에도 상대방을 탓하기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돌아보느라 바쁘다.

나는 전형적인 에코이스트였다. 내가 입은 옷이 촌스럽다고, 내가 새로 한 머리 스타일이 이상하다고 불쑥 지적질을 하는 나르시시스트의 무례함에도 화를 내기보단 부끄러워했다. 초, 중학교때도 나르시시스트 친구가 있었고 대학에 가서도 어쩌다보니 나르시시스트 동기와 한 무리가 됐다. 함께 무리가 정해졌다는 이유로 거리도 두지 못하고 그의 장난과 걱정을 빙자한 지적질을 어색한 웃음으로 넘겨버리기만 했다.


그러나 이렇게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주기적인 물갈이가 됐다. 함께 속한 집단이 달라지면서, 취업과 결혼과 임신 출산이라는 인생 코스를 거치며 서로 가는 경로가 달라지면 멀어지기도 또 다시 가까워지기도 했다. 애초에 내 노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은 극히 한정적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나르시시스트 친구들은 내 사회적 처지가 조금씩 나아질 때마다 노골적으로 질투를 하며 나를 공격해왔다. 나 역시 사회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점점 강해졌고 타인의 무례를 그저 웃어넘길 정도로 미숙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더 이상 미숙하지도 어설프지도 않은 나는 재미있는 놀잇감이 아니었다. 어느새 '카톡 친구'로 이름만 저장돼 있는, 서로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지나오며 깨달았다. 단순히 많은 지인의 수는, 캘린더 가득히 빼곡하게 적힌 약속은 나의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것을. 애초에 나는 너무 많은 인간관계를 통해서 에너지를 얻는 체질이 아니었음을.



이제는 더 이상 무리하게 인간관계를 넓히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엄마들이 그렇게도 친해지고 싶어 한다는 조리원에서도 나는 밥을 방으로 갖다 주는 곳을 선택해서 '조리원 동기'가 없다. 코로나 시국으로 완전 감금 육아를 하면서 육아우울증까지 세게 겪었지만 그 와중에도 인간관계를 더 맺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나마 힘든 와중에 인간관계 스트레스까진 겪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다. 내가 굳이 육아 동지를 사귀려고 난리치지 않아도, 나와 달리 사람을 참 좋아하는 아이는 알아서 또래 친구들을 잘 사귀었다.



나를 평가하고 지적하고 시기하는 사람들, 비교 의식이 느껴지거나 마음이 불편해지는 사람들, 서로 잘못한 건 딱히 없지만 결이 너무나 달라 함께 있는 시간이 편치 않은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인간관계는 초 소수정예로 재편됐다.

그리고 그 중심엔 가족들이 있다. 내가 꾸린 내 가족이다. 같은 배를 탔기에 내가 잘 되면 가족들도 함께 좋은 일이고, 가족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나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마음 아픈 일에는 긴 위로의 말 대신 온몸으로 안아서 서로의 온기를 전해줄 수 있는 사이다.


반 의무감으로 이런저런 모임에 나가곤 했던 연말연시, 한껏 꾸미고 밖으로 나가 근황을 전하는 척 '나도 잘 살고 있어'를 서로 증명하는 모임에 나가는 대신, 무릎이 늘어진 추리닝을 입어도 괜찮은 가족들과 함께 홈파티를 한다.

남편이 직접 구운 스테이크에 아이와 함께 고른 케이크, 파스타와 샐러드로 간단한 크리스마스 파티 상을 차렸다. 예수님 생일이지만 언제나 촛불은 아이가 후 불어 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캐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아이가 추는 막춤에 박자를 맞춰 준다. 거실에서 핫초코를 나눠 먹으며 창 밖의 싸락눈이 찬 바람에 희끗희끗 날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따듯한 겨울날이다.


더 이상 억지로 주말 약속을 잡지 않는 나는 어느 때보다도 편안하다. 생일이 되면 의례적으로 보내오는 축하 연락조차 부담스러워서 아예 생일조차 숨겨버렸다. 그저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다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물줄기가 서로 만나듯 우연히 만나게 되면 반갑게 인사하는 그런 상태로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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