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라고는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는 것조차도 별로 즐기지 않는 나는 자타공인 몸치다. 어릴 때부터 6명이 달리기 경주를 하면 꼭 6등을 했다. 심지어 전교생 오래달리기를 해도 뒤에서 1~2번째를 다퉜다.
그런 나도 유일하게 좋아하는 신체 활동이 있다. 바로 걷기다. 음악을 들으며 약간 땀이 날 정도로 살짝 빠르게 걷는 운동은 한 시간을 해도 끄덕없다. 특히 30분 정도 빨리 걷다 보면 묘한 쾌감이 드는 지점을 좋아한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하기엔 염치없고 워커스 하이(Walker's high)라고 할 수 있을까.
그조차도 일과 육아에 치여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멀리한 지 수 개월이 지났다. 그래도 꾸준히 걷기운동을 할 땐 당연히 공황 증상도 없었고, 몸도 한결 가벼웠다. 내 병의 원인이 꼭 운동 부족 탓이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운동을 멀리한 댓가를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간에 망가진 몸과 마음 되살리기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다시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었다.
요즘처럼 날이 너무 춥다면 어쩔 수 없이 아파트 단지 내 커뮤니티 헬스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걷기는 역시 야외에서 하는 것이다. 특히 나무가 많아 피톤치드 향을 맡으며 걸을 수 있다면 더욱 금상첨화다. 날이 좀 더울 땐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냇가 근처도 좋다.
내가 일하는 곳 근처에는 산책하기 아주 좋은 코스가 하나 있다.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걷기 딱 좋다. 이 곳은 비포장 코스로 되어 있어 날이 너무 덥거나 춥지 않을 땐 맨발걷기를 하는 사람들도 자주 보인다. 나무가 많아 숨을 힘차게 들이마시면 선선한 풀 냄새가 허파 가득 차오른다. 여름에는 맹꽁이가 우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가끔 산토끼가 풀을 뜯고 있는 모습도 구경한다. 한참을 걸어가다 보면 작은 폭포도 보인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 소리를 들으며 땀을 식힌다. 녹색 이파리가 조금씩 물들기 시작하면 가을이 옴을 알게 되고, 그 이파리들이 땅바닥에 뒹굴고 있으면 겨울이 다가옴을 알게 된다.
키가 큰 나무들 사이로 조각조각 보이는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 이 도시에서 내가 가진 상념들과 고민들이 저 나무줄기 틈새로 보이는 하늘 조각보다도 너무 작은, 사소한 것들이었음을 다시 깨닫는다. 다시 한 번 큰 심호흡으로 나무에서 갓 나온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불과 횡단보도 하나를 지나면 높고 견고한 고층 건물과 숨쉴 틈 하나 없이 빼곡한 직장인들의 일상이 펼쳐져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연이 아주 먼 것처럼 살고 있지만 사실 인간은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음을, 아니 사실은 자연의 일부에 불과함을, 자연과 가장 먼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던 고층빌딩조차 사실은 자연의 부산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몇 년 전 정형외과에 도수치료를 받으러 다닌 적이 있다. 만성적으로 골반과 허리가 아팠다. "앉아있을 때 허리가 더 아파요. 누워서 좀 쉬려고 해도 더 아프구요." 의사 선생님의 답이 의외여서 기억에 남는다. "너무 무리를 해서 그래요." 앉아있다는 건 생각보다 허리에 매우 무리가 가는 동작이라고. 누워있을 때조차 허리에 무게중심이 쏠리며 통증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걷고, 서 있는 것은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아 편한 동작이라고 한다.
하루 8시간 이상 꼬박 자리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는 나는 육체노동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습관적으로 허리와 손목이 욱신거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이 지긋하신 선배들은 허리 디스크로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거나 심하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몸을 바쳐 육체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의 육신이 나이가 들면서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 혹사당해온 허리와 손목이 이제 그만 쉬고 싶다고 소리를 지르는 중일 게다. 인간은 서고, 걸어 다닐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려고 태어난 존재인가보다. 그래서 오래 걷고 달리면 심지어 쾌감까지도 느끼는지도 모른다.
점심시간에 숲을 걷는다. 걷는다는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쉼 없이 앉아 있는 육체노동을 해 온 내 척추와 다리와 팔과 온 몸의 근육과 뼈를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준다. 원래 태어난 목적에 맞는 모습으로 돌아간 내 몸이 행복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