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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물정을 모르는 고요함

by 뚜벅초

공황장애를 진단받고 가장 먼저 한 것 중 하나는 스마트폰에 깔린 SNS 앱을 모두 삭제하는 일이었다.

이전에도 기록을 남겼지만, 나는 지난해부터 모든 커뮤니티와 SNS를 멀리하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책 출간 후 셀프 홍보를 하면서 슬금슬금 SNS를 다시 시작했다. 이렇다 할 명성이 없는 신참 작가가 자기 책을 알릴 방편은 SNS밖에 없기 때문이다.



SNS는 책 홍보에 그럭저럭 도움이 됐지만, 문제는 책 홍보를 한다는 핑계로 온갖 잡다한 소식들을 접하게 된다는 거였다. 불필요한 논쟁들과 시비거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신 건강에는 당연히 좋지 않을 터였다.

어쩌면 내가 생계를 그만두고 <월든>과 같은 숲 속 외딴 집으로 떠난다 해도, 손 안에 든 스마트폰의 SNS로 세상의 온갖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그로 인해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계를 버리지 않고 일단 이 도시에서 살아보기로 결심했지만, 지금 당장 단절할 수 있는 소식에는 눈과 귀를 닫을 수도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SNS를 줄이는 것이었다. SNS는 꼭 필요할 때만 이용하고, 그 이외에는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

현대인은 스마트폰이 있기에 혼자 있어도 진정한 의미에서 혼자 있기 어렵다. 언제고 누군가와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일에 분노하고, 흥분하고, 기분을 망치는 순간이 너무 잦다.



요즘은 거의 모든 현대인의 덕목으로 '트렌드에 빠삭한' 상태가 권장되곤 한다. 오죽하면 매년 연말만 되면 베스트셀러로 다음 해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책이 어김없이 등장할까. 그리고 그 트렌드의 수명은 매년 무시무시할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몇 년, 몇 달간 TV에서 방영되며 유행하는 가요와 연속극, 연예인이 트렌드였다면 이제는 실시간으로 바뀌는 스마트폰 속 알고리즘이 트렌드를 바꾸고 있다. 유튜브 15분 영상도 길다고 몇 초 분량의 숏폼이 트렌드라고 한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고리타분하다고, 꼰대라고, 늙었다고 한다. 늙지 않기 위해서는 정신없이 헐레벌떡 트렌드를 따라야만 한다.



때로는 나 역시 그런 트렌드를 따라잡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매번 바뀌는 알고리즘을 새로고침하며 요즘은 뭐가 대세인지, 어떤 것이 요즘 'Z세대'들의 대세여서 어설프게라도 숙지하고 있어야 꼰대 취급 받지 않을지 아는체를 하고자 했다.


그러나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나의 생물학적 나이는 계속 많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정신없이 뒤바뀌는 트렌드보다는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에 마음이 끌린다. 알고리즘 속 텍스트와 영상의 향연보다는 몇십 번을 다시 봐도 눈물을 흘리게 되는 영화와 마음을 울리는 고전에 깊이 감동하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병원에서 길게 대기를 할 일이 있었다. 평소 같으면 SNS의 타임라인 알고리즘을 훑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SNS를 하지 않으므로 나는 가져온 소설책을 폈다. 활자에 눈을 고정시키고 세상과 거리를 두려 노력했다. 잠깐이라도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에, 나는 정말로 혼자 있고 싶었다. 이동하는 대중교통 안에서도 타임라인 속에서 다양한 말들의 소음에 나를 노출시키는 대신 조용한 음악을 틀고 눈을 감는다. 잠과 멍때리기와 명상의 어느 중간의 상태에서 잠시 아무 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갖는다.



나는 자발적으로 세상 물정 모르는 상태를 선택했다.

마음이 다시금 차분해진다. 흙탕물 같았던 마음 속 모래알들이 가라앉으며, 맑은 물 속이 들여다보인다.

불필요한 소음으로 가려졌던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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