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영하의 겨울이지만, 얼마 전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다녀 왔다. 직장인으로서는 짧지 않은 5일이라는 시간 동안 20도에 육박하는 따듯하다 못해 더운 날씨를 만끽했다.
우리는 왜 여행을 가는 걸까. SNS에 자랑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평소에 경험하기 어려운 것을 보고 듣고 맛보며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 색다름을 경험하기 위해서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건 일상의 무게를 잠시나마 벗어버릴 수 있는 수단이어서일 듯하다.
집과 회사를 왕복하는 삶에서 다름을 추구하기란 어렵다. 매일같이 체크리스트 속 항목에 체크를 하며 그날그날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물론 여행조차 철저한 계획하에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한국형 여행이라지만, 요즘은 모두가 그런 건 아닌 듯하다. 여행이 희귀하던 시절처럼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걸 보는 걸 넘어서 아예 한달살기, 일년살이처럼 단기 숙소를 구해 그 지역의 주민이 되어 내 삶의 일부를 그 장소로 채우는 시도들이 많다. 한달살기라는 이름 안에는 일정한 시간이나마 각종 의무에서 벗어나, 느긋하게 쉼의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한 달이나 일 년이라는 긴 공백을 내기 어려운 평범한 도시의 직장인으로서, 아직 이런 삶은 그냥 버킷리스트에 머물고 있다. 언제 현실화가 될지는 모르겠다. 이번 여행에서도 아쉬움을 가방 안에 꾹꾹 눌러담으며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는 공항으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더 에메랄드빛 이국의 바다를 눈에 담고 싶어서 차창 밖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러나 문득 규칙적으로 일렁이는 파도를 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 밖의 일상이, 도시에서 매일매일 집과 직장을 왕복하는 삶이 그저 의무만으로 채워진 스트레스에 불과하다면, 여행을 아무리 자주 떠날 수 있다 해도 그 삶을 행복하다 할 수 있을까? 설령 한달살기를 떠난다 해도, 한 달 뒤 그 지긋지긋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와야만 한다면 그 아쉬움은 또 어찌할까? 마지막에 크게 웃는 놈이 아니라 자주 웃는 놈이 인생의 승자였다는 어느 노인의 말처럼, 산과 바다로 떠나지 않더라도 도시에서의 인생도 여행지에서의 한 달 살이처럼 살면 안 되는 걸까?
여행의 즐거움은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맛있는 음식에도 있지만 의무에서 해방돼 오로지 즐거움만을 추구한다는 데 있다. 설령 엑셀 파일에 여행 계획을 짠다 해도, 계획이 틀어진다 해도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어차피 죽고 사는 문제가 걸리지 않았으니까. 이 가게가 문을 닫으면 다른 가게를 가면 된다. 오늘 비가 와도 좀 아쉽긴 하지만 실내 장소를 찾아 가거나 아니면 그냥 숙소에서 바깥 풍경만 봐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사실은 여행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죽고 살 만큼 큰 문제가 걸린 게 얼마나 흔한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당장 이걸 완수하지 않으면 큰 일이 날 것처럼 수선을 떨 때가 많았다. 그러다보면 정작 중요한 건 놓치게도 된다. 회사에서의 평판을 챙기기 위해 내 아이와의 시간을 포기한다든지, 돈 몇 푼을 아끼기 위해 건강을 버린다는지 하는 선택 등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오로지 타인들로만 구성된 낯선 사회에서 주는 묘한 해방감도 있다. 아파트 단지에서만도 아이 친구 엄마를 마주칠까봐 머리를 감지 못하고 나온 날은 모자를 깊게 눌러 썼다. 한때는 나와 비슷한 처지였던 지인들이 언젠가 훨씬 잘 풀리는 모습을 보면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내 처지가 비교가 됐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의 열등감으로 인한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삶의 동질성이 높은 한국 사회에서는 서로서로 사는 모습이 더욱 자주 비교가 되곤 한다.
문득 20대 초반에 떠났던 호주 배낭여행이 생각난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9개월간 호주 대륙 절반을 홀로 돌아다녔다. 당시 나는 약한 거식증이 올 정도로 체중조절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호주에 오자마자 몸무게가 역대 최대를 찍었지만 날씬하기만 한데 뭐가 문제나고 진심으로 묻는 친구들을 만났다. 처음으로 다이어트를 잊고 생활했다. 가져온 옷이 맞지 않을 수준이 됐지만 워낙 플러스 사이즈가 많아 길거리 옷가게에서도 쉽게 옷을 살 수 있었다. 55kg만 넘어도 보세 옷가게에서 옷을 사기 어려운 나로서는 놀라웠다. 덕분에 역대급 몸무게에도 한국에서보다 더 자주 웃을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혼자가 아니었지만 오롯이 우리 가족과 함께였다. 다른 사회적 관계와 의무를 신경쓸 필요 없이 우리 가족끼리만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왠만한 음식도 잘 먹고 화장실도 잘 가는 아이 덕분에 '원정 육아'가 아닌 나름대로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내 가족과만 잘 지내면 됐다.
일상도 여행처럼, 조금 안 풀리더라도 괜찮다고,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 없이 오롯이 나와, 내 가족과 잘 지내면 된다고 생각하면 삶의 무게가 훨씬 가볍지 않을까.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다짐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마음만은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자고. 알고보면 세상에 그렇게 필사적일 것도 없고, 내 가족보다 더 중요한 사회적 관계나 의무도 별로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무거웠던 귀국길이 한층 가벼워졌다. 아파트촌에 돌아와도 마음속에 저장된 푸른 바다의 수평선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 넓은 바다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한 조각의 파도와도 같다고.
파도와 같이 일렁이며 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