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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대청소 중입니다

by 뚜벅초

명상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끌어당김의 법칙'을 알게 되면서였다. 끊임없이 상상하고 목표를 종이에 쓰면 놀랍게도 그것이 현실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법칙을 책도, 유튜브도 아닌 내 삶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10여년 전 비밀 일기장에 몰래 써 둔 나만의 목표가 자연스럽게 모두 이뤄진 걸 보고 나서였다. 이후로 이런저런 책과 자료들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목표 이루기에 골몰했다.

그 결과 실제로 여러 가지를 이루기도 했다. 이를테면 운영 중인 블로그가 상을 받거나 내 이름으로 책 출간에 성공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목표를 이루는 것이 반드시 지극한 행복으로 이어지냐면, 그건 아니었다. 책을 내고도 매일같이 온라인 서점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내 책의 판매 지수가 오르고 내리는 것에 예민해졌다. 순위가 떨어지면 마치 보유 주식 가치가 떨어진 것마냥 하루종일 우울해졌다. 책을 내기 전보다 낸 후가 더 행복하다고 단언하기 어려웠다.

목표를 이루는 것은, 목표를 이루는 것 자체일 뿐 행복과는 별개였다. 스트레스는 결국 몸에 쌓였다. 늘어가는 약 봉지를 바라보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생각해 봤다.


목표를 이루고 싶었던 건 행복해지기 위함이었다. 목표를 이루는 것과 무관하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끌어당김의 법칙을 말하는 이들의 책과 콘텐츠를 파고 또 팠더니 결국 명상이라는 새로운 목적지에 도달했다. 십여년 전, 불교인은 아니지만 한 절에서 요가를 배울 때 마지막에 명상을 짧게 했다. 머리가 가렵고 졸음이 몰려왔던 기억만 났다. 명상이란 게 이런 건가? 당시에는 크게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 가정이 생기면서 삶의 무게가 더욱 크게 다가옴에 따라 영성에 더욱 마음이 끌렸다. 명상 공부에 푹 빠져 독학했다.

가끔 본인을 구루로 자처하며 되겠다며 돈을 받고 제자를 모집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대부분 수상쩍어 보여 가까이하지 않았다. 알다시피 명상은 종교와 깊게 결부되어 있다. 불교와 같은 전통적 종교도 있지만 다수는 사이비에 한 발짝 걸쳐 있는 개인 숭배 단체들도 적지 않았다. 아직 나에게는 진짜 스승과 가짜 스승을 가려 낼 혜안이 없다. 자칫 이상한 길로 빠지느니 과감하게 스승 없이 혼자서 명상을 시도하기로 했다.


사진출처: pexels


과학적으로, 대중적으로 검증된 책들을 읽어 내려가며 내 나름대로 명상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눈 앞에 신기한 형상들이 보이고 이마 쪽에 심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등, 흔히들 신비체험이라고 하는 것들을 겪었다. 정말 이런 세계가 있나?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들은 우리의 뇌가 일으키는 하나의 착각 증상임을, 공부를 더 하고 나서야 알았다.


우리는 이미 살면서 수 많은 환각들에 마음을 뺏긴다. 이러한 환각들에게서 자유로워져 진정으로 고요한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 명상인데, 명상을 하면서도 또 환각에 마음을 뺏겼던 것이다. 고요한 상태에서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작용들을 마치 남의 일처럼 바라보고 수용하는 과정을 연습했다. 지금도 연습 중이다.


여전히 초보 수련자 신세이기에 구체적인 방법론을 길게 설파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이제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며 내가 그저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수준까진 겨우겨우 도달한 것 같다.

명상을 하면서 갑작스럽게 북받치는 감정에 크게 통곡을 하고 마음이 후련해지는 경험도 몇 차례 했다. 그저 기분이 안 좋아서, 화가 나서 우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평소 잘 울지 않는 나였기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살면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어른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맘껏 울지조차 못하던 나였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음을 알았다. 울고 나서야 정말로 괜찮아졌다.


어느 날은 아이를 재우고 캄캄한 방에서 깊은 명상에 들어갔다. 갑자기 내 몸과 외부의 경계가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갖은 걱정거리와 감정들이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모든 것에서 떠나온 느낌. 처음 겪는 상태였다. 나와 남은 결국 모두 다 하나라는, 수 많은 종교 서적과 선지자들의 말이 비로소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상태가 원래의 임을, 자연 그대로의 내 모습인데 세상의 많은 환각들에 정신이 팔려 마치 내가 아닌 것을 나처럼 착각하고 오래동안 끌려다니고 있었음을 알았다.


나는 애초에 세상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나라는 존재는 그저 하나의 아바타와 같은 존재일 뿐, 진짜 '나'는 그저 존재하며 모든 것을 관찰할 뿐이었다. 내게 일어나는 갖가지 다양한 일들, 머리아픈 고민들은 그저 내가 일시적으로 체험하는 것들일 뿐. 책에서, 영상에서 그저 이론으로 공부하면서도 알쏭달쏭했던 이야기들이 비로소 체감이 됐다.


목표를 이루면 마냥 행복해질 줄 알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도시를 떠나 숲 속 집으로 떠나면 마냥 평화로울 것만 같았다. 그러나 평화는 그런 곳에 있음이 아님을, 평화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히 존재하면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존재가 되는 것임을 명상을 하면서 배웠다.

그래서 수 많은 '깨달은 이'들은, 일상 또한 명상임을 말했는지도 모른다. 일상을 항상 명상하듯 지낸다면,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그저 관조하며 현혹되지 않을 수 있을테니.


지금, 여기, 복잡한 도시에서도, 갖가지 문제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인생사 속에서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 투성이인 상황에서도, 내가 그저 나로서 존재할 수 있기를. 오늘도 나 자신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이들을 위해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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