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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 없이 살아보기

by 뚜벅초

언제부턴가 우리 생활 속에 깊숙히 침투해 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스마트폰 속 알고리즘이다. 이용자의 관심사, 자주 보는 것들을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를 노출시킴으로써 이용자는 자기가 필요로 하는(혹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콘텐츠 생산자는 자신의 콘텐츠를 불특정 다수에게 보다 쉽게 노출시킬 수 있어 수 많은 플랫폼들이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앗아갔다. 이를테면 '이 만하면 됐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콘텐츠 이용을 끝내고 다른 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뺏었다. 끝도 없이 무한증식하는 알고리즘 속에서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싶어져서 눈이 아파질 때까지 알고리즘을 따라다니다 보면 어느덧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난다.

다른 하나는 내게 진짜 필요한 정보가 어떤 것인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찾는 능력이다. 찾아다닐 필요 없이 플랫폼이 대충 관심있음직해 보이는, 혹은 그냥 '요즘 핫한' 것들을 마구 코앞에 밀어대니 안 볼 수가 없게 만든다.


다른 브런치북에도 썼지만 , 인간의 심리상 긍정적인 콘텐츠보단 부정적인 내용이 압도적으로 주목도가 높다. 이는 인간의 본성에 따른 것이다. 당연히 알고리즘 설계자와 플랫폼 운영자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이를 활용해 영리를 추구한다. 나는 딱히 극단적인 콘텐츠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자꾸만 유튜브나 포털 알고리즘에 극단적 내용의 콘텐츠가 뜬다면 그건 당신 탓이 아니다. 조회수를 높여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한 플랫폼 측의 철저한 계산에 따른 것이다. 이는 많은 책과 연구에서 증명됐다.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장애를 진단받고 SNS를 줄이기로 마음먹었지만, 스마트폰 사용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콘텐츠를 보거나 혹은 업무상 필요로 몇몇 가지는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포털 검색엔진과 블로그, 브런치, 전자책 앱, 그리고 유튜브 앱은 여전히 설치돼 있다. 음악을 틀거나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것을 볼 때 잘 쓰고 있다.


눈에 거슬리는 것은 무작위로 뜨는 알고리즘발 콘텐츠들이다. 온갖 자극적인 타이틀을 달고 사용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개중에는 편을 가르거나 굳이 내가 알 필요 없이 자극적이기만 한 소식들이 있다. 가뜩이나 마음이 별로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것들을 보면, 단지 제목만 봐도 속이 울렁이는 느낌이 든다. 업무상 포털 뉴스를 자주 봐야 하는데 내 분야 외의 잡다한 뉴스 타이틀이 '많이 클릭한 뉴스'라고 뜬다. 죄다 어디 커뮤니티에서 자극적인 글을 편집해다 만든 짜집기 기사다. 하기야 자극적이니까 클릭도 많고 언론사의 배도 불리고 있고 기자들 월급 주는 데 톡톡한 공을 세웠겠지만 어쨌든 내 미간은 절로 찌푸려진다.


다행히도 해외 플랫폼인 구글과 유튜브는 이러한 알고리즘 노출을 중단하는 기능이 있다. 구글은 이미 깔끔한 메인 페이지로 잘 쓰고 있고, 알고리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유튜브도 설정을 바꾸면 검색만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 유튜브 메인 페이지는 이렇게 아무 것도 뜨지 않는다. 오로지 검색 혹은 내가 구독하는 채널만 볼 수 있다.



아쉽게도 (내가 못 찾은 것일수도 있지만) 국내 플랫폼은 알고리즘을 완전히 차단하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국내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네이버도 검색창 위주로 바뀌긴 했지만 스마트폰 아랫 부분에 자꾸만 추천 콘텐츠가 뜬다. 대부분 별로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고 개중에는 상업적이거나 AI로 조작한 혐오스러운 이미지도 뜬다.

우리나라는 IT 강국 중 하나지만 그에 비해 스마트 기기나 알고리즘이 인간에게 주는 해악에 대한 경계심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유독 낮은 것 같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의 스마트 기기 노출도 유독 빠르고 심지어 정부에서 AI 교과서까지 도입하려다가 (나를 포함한)학부모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기도 한 상황이다. 생산성만 좇고 출산은 손해라고 하던 우리 세대가, 결국 저출산으로 나라가 망할 위기에 봉착한 과오를 되풀이할 것만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알고리즘 숨기기가 가능한 G사 메인화면과 대조되는 우리나라 N사 화면.(그나저나 A급 인간의 기준은 뭐란 말인가..와중에도 정말 K-스럽다)



아무튼, 알고리즘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콘텐츠 대신 내가 원하는, 내가 유익하다고 판단한 콘텐츠를 선별해 보거나 찾아다니며 적절한 시간 만큼 이용하고 있다. 충분히 봤다 싶으면 종이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아니면 가족과 이야기한다.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 보다 수월하다. 알고리즘발 검증 안 된 정보들의 벽에 갇혀 '나는 지금 다양한 정보를 섭렵하고 있어'라고 착각하던 시간보다 훨씬 다양하고 풍요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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