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노예 탈출기 -7
익명 커뮤니티에는 사소하게는 야식을 먹을까 말까부터 자기의 연인이 결혼 상대로 적합한지 여부를 묻는 등 인생의 중대사를 묻는 글까지 올라온다. 그도 그럴 것이 오프라인에서는 쉽게 조언을 얻을 수 없는 것을,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기에 그렇다.
과거에는 전문 기관만이 할 수 있었던 대중을 상대하는 여론조사가, 이제는 내 방 침대에서 몇 줄의 텍스트를 입력하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미니 여론조사'가 가능한 것이다. 굳이 글을 올리지 않더라도 내가 궁금한 부분을 검색함으로써 앞서 질문한 사람들의 글과 댓글을 보면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다.
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할까? 이는 당연하다. 사람은 혼자 사는 생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함께 부대껴 살기 때문에 어떤 게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정도인지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한국처럼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에 엄격하게 정답을 매기고, 요새는 조금 나아졌다지만 그래도 표준에서 벗어나면 지탄과 도태를 각오해야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날이 좀 쌀쌀한데 코트를 걸쳐도 좋을지부터, 지금 만나는 사람과 결혼해도 좋을지를 남에게 묻는 것이다. 사실 위의 두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본인이 추우면 입는 것이고, 본인이 감당 가능하면 결혼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온라인 상의 의견 교류가 건전하게 이뤄지지만은 않는다는 데 있다. SNS와 익명 커뮤니티는 이미 계층별로, 성별별로, 지역별로, 이념별로 나눠져 갈등의 장이 된지 오래다. 왜일까? 물론 현실에서도 이러한 갈등과 반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에서는 유독 이것이 더욱 극대화되는 측면이 있다. 익명성에 기대어 현실에서는 차마 하지 못한 날것의 감정을 쏟아내고, 이에 동조하기도 쉬운 구조여서도 그렇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평화보다는 갈등이, 사랑보다는 미움이, 이해보다는 증오가 조회수가 잘 나오고 재밌기 때문이다. 그리고 SNS와 커뮤니티는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용자 간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솔직히 말하면 더욱 돈이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정신과 전문의 안데르스 한센이 쓴 <인스타 브레인>에서는 이를 수렵채집 시절부터 지속돼 온 인간의 생존본능과 연결한다.
뇌는 왜 부정적인 소문을 더 좋아할까? 어쩌면 그러한 정보가 특히 중요하고 믿을 만한 내용을 가르쳐주는데다 거리를 두어야만 하는 대상에 대해 알려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특히 갈등에도 관심이 많다. 만약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적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두는 게 도움이 된다. 잠재적인 동맹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인류의 10~20%가 다른 사람에게 맞아죽던 세계에서 누가 누구에게 적의를 가졌는지, 어떤 사람과 어울리는게 좋은지 등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 음식이 있는지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했을 것이다.
-<인스타 브레인>, 안데르스 한센
많은 조회수는 돈이 된다. 실제로 많은 SNS서비스에서는 극단적인 증오를 부추기는 '가짜뉴스' 등이 알고리즘 상위에 뜨고, 심지어 이용자가 정상적인 뉴스를 봤어도 알고리즘의 끝에는 언제나 극단주의 콘텐츠가 뜨게된다는 증언들이 여럿 나온다.
...유튜브에도 알고리즘이 있다. 그리고 이 알고리즘 또한 사용자가 잔인하고 충격적이고 극단적인 영상을 볼 때 시청 시간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기욤(이 책에 따르면 유튜브 알고리즘 설계 및 관리 엔지니어)은 이러한 운영 방식과 유튜브가 비밀로 덮어둔 자료를 보았고, 그것이 현실에서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지켜보았다. 우리가 홀로코스트에 관한 정보를 담은 영상을 본다면 유튜브는 이후로 여러 개의 영상을 더 추천할 것이며, 영상은 갈수록 더 극단적으로 변해서 우리가 다섯 개 정도의 영상을 시청한 뒤에는 결국 홀로코스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될 것이다.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
'우리 모두가 가치있어요' 라고 말하는 콘텐츠보다는, 연봉 몇천 이하는 인생 실패자, 월 수입 얼마 이하인데 애 낳으면 아동학대범, 모은 돈 얼마 이하인데 결혼하자고 하는 연인은 빨대 꽂으려고 하는 양심 없는 인간 취급을 하는 콘텐츠가 역시 조회수가 잘 나온다. 그렇게 이런 콘텐츠들이 일반화가 되고 이용자들은 처음에는 너무 극단적인 주장이 아니냐, 하다가도 계속 이런 주장을 접하다 보면 언젠가부터 이런 말들을 사실처럼, 정답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궁극적으로 이런 온라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자기의 속도대로 살 수 없게 된다. 가뜩이나 한국인의 고질병으로 지적되곤하는 '이 정도는 해야 된다'는 최소한의 커트라인은 무한대로 늘어난다.
심지어 최근에는 직장명을 달고 소통하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인기를 끌고 있다. 대학생들은 학교명을 결고 익명으로 소통한다. 개인적으론 지극히 한국적인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는 직원수가 적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새회사'가 그렇지 뭐"라는 비아냥을 받기 일쑤다. 반면 의사 등 선망받는 직업을 가진 이용자가 뭔가를 말하면, 같은 내용이라도 많은 추천수가 찍힌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의사든 '새회사'든 아이디를 사고파는 사람들 또한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못 믿겠으면 구글에 '블라인드 아이디 삽니다'를 검색해 보면 된다.
이렇게 연봉도 적고, 직장도 새회사고, 모은 돈도 없고, 흙수저인 사실상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낙오자라는 도장을 찍고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감히 생각하지 못하고 방구석으로 고립된다.
그리고 또 온라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급기야 일부는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근거없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 중 또 일부는 무서운 생각을 하게 된다. 저들 역시 나처럼 불행해져야 한다고.
사람을 해칠 수 있는 흉기를 들고 나가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번화가에 가 닥치는대로 사람들을 찔러 공포에 떨게 만들겠다고. 그렇다면 나를 무시하던 인간들도 나를 두려워할거라는 생각에 짜릿해진다.
예전이라면 이런 망상은 그냥 망상으로 끝났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지인들에게 털어놔봐야 헛소리 취급이나 받거나, 미친 놈 소리를 듣고 정신병원에 감금당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라인 공간은 다르다. 언제든지 내가 속해있는 집단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수많은 이용자 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모여있는 건 너무도 쉽다. 그렇게 단톡방을 만들고 '갤러리'를 만들어서 자기들만의 공간을 만들고 끊임없이 망상을 구체화한다. 그렇게 길고양이를 불에 태워 죽이고 길 가는 사람들을 칼로 찔러 죽이는 행위가 그곳에서는 응원받는다.
너무 극단적인 사례라고? 저것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고 최악의 상황일 뿐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대표 익명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의 일평균 방문자 수는 최소 300만명에 달한다. 이를 정말 '일부', 소수의 음지문화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심지어 대부분의 게시글은 딱히 연령제한도 없다. 실제로 많은 미성년자들이 우울증 게시판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성범죄를 당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나는 커뮤니티 따위 하지 않으니 해당되지 않는다고? 안타깝게도 커뮤니티에 한 번 접속해 본 적 없더라도, 우리는 이미 직간접적으로 익명 커뮤니티의 사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일부 언론사들은 조회수를 위해 커뮤니티 글을 재가공해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으로 시작되는 기사를 올리기도 한다. 포털에서 뉴스만 봐도 무심코 클릭할 수 있는 기사들이다. 연예인의 SNS에서 허락도 받지 않고 퍼온 시시콜콜한 가십부터, 상견례 자리에서 상대편 가족이 X자로 젓가락질을 하는 걸 보고 오만 정이 떨어져 파혼을 했다는 글까지 기사화가 된다. 예전같으면 그냥 지인들 술자리에서나 안줏거리로 웃고 넘겼을 이야기들이다. 이런 걸 과연 수천 수만명 사람들이 보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야 할 일들일까?
익명 SNS와 커뮤니티에서 파생된 수많은 극단적인 사상들은 이제 오프라인 사회로 넘어와 양지화의 탈을 쓰고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고 있다. 그 결과는 청년들의 자살과 결혼 기피, 출산 기피다. '저 따위'로 구질구질하게 사느니 아무것도 안 하겠다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지구 멸망'만을 비는 것이 온라인 속 적지 않은 청년들의 현실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이를 그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결국은 우리 모두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먼저 스마트폰 속의 세계에서 나와, 현실을 살려고 해야 한다.
여기까지 오면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SNS와 익명 커뮤니티가 그렇게 해롭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바쁜 일상 속에 잠시나마 머리 식히는 것조차도 안 되냐고, 현대인이 그래도 돈 안들이고 스트레스 풀 수 있는 몇 안되는 수단인데 이조차도 못하게 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냐고. 나도 그랬다. 스마트폰 하지 말라는 소리에 '이것조차 못 하면 나는 언제 숨 돌리냐'고 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는 한 당신은 완벽하게 휴식할 수 없다. 당신은 SNS를 하면서 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더 큰 피로를 쌓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