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노예 탈출기 -8
현대인의 필수품이다 못해 아예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스마트폰. 심지어 스마트폰 배터리가 빨간색으로 한 자릿수가 되면, 우리 마음조차 간당간당 안절부절 조마조마해진다. 마치 우리의 남은 여명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 것처럼. 실상은 스마트폰이 꺼져도, 우리의 삶은 건재하게 돌아가는데 말이다. 그만큼 우리는 스마트폰에 깊게 의존하다 못해 주객이 전도된 삶을 살고 있다.
심지어 휴식을 할 때조차 스마트폰은 손에 꼭 쥐고 있다. 나 역시 잠잘 때를 제외하면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언제나 스마트폰 액정을 스크롤하고 있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을 때도, 자려고 누웠을 때도, 심지어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기고 모처럼 생긴 꿀같은 휴식 시간에도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그 결과?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았다. 낮에는 일을 하고 퇴근후엔 아이를 보는, 그야말로 숨돌릴 틈 없는 워킹맘의 삶을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일반적인 직장인 대비 낮에 시간이 많고, 휴직으로 아예 전업 육아를 1년이나 했을 정도로 가사와 육아에 열심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지쳐있었다. 그걸 나는 단지 쉼이 부족하기 때문일 뿐이라고 치부했다. 직장에서는 보직을 맡아서 내가 너무 많은 일을 떠맡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내 쉬는 방법에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그것은 아이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마찬가지였다. 내 손엔 항상 밝게 빛나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고 내 몸은 비록 누워 있어도 내 눈과 뇌는 쉴 틈이 없던 것이다. SNS에 내 삶의 어떤 부분을 전시해야 가장 그럴듯해 보일까 사진을 고르고, 익명 게시판 속 시시콜콜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굳이 받을 필요 없는 스트레스를 자진해서 받고 있었다.
얼마전 기념일을 맞아 가족과 함께 유명 관광지에 놀러간 적이 있다. 초가을의 날씨와 맞물려 그야말로 최고의 시간이었다. 가만히 서서 강바람을 맞으며 음악소리만 들어도 마냥 행복했다. 아직 4살 어린 아이도 신이 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즐거워했다. 마침 라이브 음악 공연이 열려서 자리에 앉았다. 반짝거리는 강변의 야경과 함께 어우러지는 음악은 그야말로 오감을 만족시켰다. 스마트폰을 덜 쓰려고 노력 중인 나는 자리에서 아이와 함께 박수를 치며 음악을 감상했다. 문득 주변을 보니, 거짓말 안 하고 약 70% 이상의 관중들은 무대나 풍경을 바라보는 게 아닌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을 검색하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이 날의 행복한 추억을 SNS에 올리기 위해 사진을 열심히 고르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나의 얼마 전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고대 로마 시인은 일찍이 'Carpe diem(현재를 살아라)'고 했는데, 수천년이 지난 현대인은 누구보다도 현재를 살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아무리 행복하고 아름다운 공간에 있더라도 스마트폰 속에서는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내일 날씨를 검색하거나, 돌아갈 길 도로가 얼마나 막히는지 등)를 걱정하고 있다. 혹은 내 자신의 행복보다는 남이 날 어떻게 바라볼지(어떤 사진을 올려야 남들이 내 추억을 가장 부러워할지)를 먼저 의식한다. 현대인이 언제 어디서도 편해질 수 없고, 행복해지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휴가를 내서 좋은 곳을 여행해도, 주말 내내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뒹굴거리기만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계속 피곤한 것이다. 언제나 우리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기에.
워킹맘이 되고 나서 나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어떻게 해야 짧은 시간에 가장 효율적으로 쉴 수(재충전할 수) 있는가가 됐다. 알다시피 일과 육아로 긴 시간을 내기 어렵지만 해야 할 일은 무척 많고, 모두 완벽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대충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한정된 시간에도 질좋은 휴식이 필수였다. 그렇게 내가 찾은 답 중 하나는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며 집에서 뒹굴거리는 게 아니다. 조용한 카페에 가서 예쁜 인테리어와 디저트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리기 위해 고심하는 것도, 최고의 휴양지에 놀러 가서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건 별도의 시간에 하면 된다. 쉬고자 마음을 먹었을 땐 오로지 쉼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말 그대로 아 무 것 도 하지 않는 것이다. 되도록이면 책도 보지 않는다. 정보를 처리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다. 눈을 감을 수 있으면 더 좋다. 사람이 없거나 적은 장소라면 더 좋다. 아무 것도 손에 들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거나 거리의 풍경을 구경하거나 혹은 무작정 걷는다. 개인적으로는 진정과 휴식의 효과가 있는 아로마 오일 등을 맥박이 뛰는 곳에 발라 향을 맡으며 쉬는 것도 좋아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눈을 감거나 멍하니 자연을 바라보면, 그간 스마트폰과 PC 화면으로 혹사당했던 눈의 근육이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굳은 어깨도 풀린다. 정말 짬을 내기 어려울때는 하루 단 5분, 10분이라도 괜찮다. 생각보다 현대인은 단 5분, 10분조차 스마트폰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터득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만성 피로로부터 조금씩 해방됨을 느꼈다.
사람들은 흔히 피로에 찌들어 있는 현대인을 위해 이렇게 조언한다. 아침에 좀 더 일찍 일어나세요, 혹은 밤에 조금 늦게 잠들어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세요, 운동을 하세요, 몸에 좋은 무슨무슨 음식과 영양제를 드세요, 시간 계획표를 짜고 일정을 기록하세요, 대화를 늘리세요......물론 다 좋은 조언이지만, 그보다 더 절실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또 뭔가를 할 수 있는 기력이 생기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배터리는 조금만 떨어져도 안절부절하는 사람들이, 어째서 자신의 체력과 정신력은 소진되는 걸 당연시하게 됐을까.
아예 스마트폰 없는 날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나는 SNS와 커뮤니티를 멀리하기 시작하면서, 일주일에 하루는 스마트폰 없이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