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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중 하루는 스마트폰 없는 날

알고리즘 노예 탈출기-9

by 뚜벅초

SNS와 익명 커뮤니티가 없이 살아도 그럭저럭 괜찮다는 걸 확인한 난, 새로운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주말 중 하루를 정해 그날은 아예 스마트폰 자체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사실 일반적인 인스타 실시간 게시물 , 유튜브 감상 등은 하지 않더라도 블로그 포스팅은 하거나 스마트폰으로 뉴스 기사를 읽거나 웹 서칭을 하거나 혹은 지인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등의 이용은 늘 했었다. 이 때문에 나의 스크린 타임 자체는 이전에 비해 1~2시간 정도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상당한 수준이었다.

끊으면 큰일날 것 같았던 SNS와 맘카페, 익명 커뮤니티 앱을 모두 지웠지만 오히려 좋은 점이 더 많았던 걸로 봐서 스마트폰 자체를 아예 안 하면 또 어떤 좋은 점이 있을지 기대가 됐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연락을 받아야 하는 나의 직업 특성과 혹시나 급하게 연락을 해야 할 일이 생길 수 있어 스마트폰을 아예 끄지는 못하고 충전기에 꽂아둔 채, 벨 소리를 최대로 해놓고 손에 잡지 않기로 한 것이다.



내가 세운 스마트폰 없는 날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꼭 필요한 연락을 제외하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즉 폰을 전화, 카메라 용도로만 사용)

2. 블로그 등은 예약 포스팅 등을 활용해 미리 업로드해 둔다.

3. 약속이 있을 경우 전날 미리 장소와 시간 등을 확정해 둔다.

4. 휴대전화는 벨소리 모드로 해 두고 보이는 곳에 두되 급한 전화를 받을 때가 아니면 만지지는 않는다.

5. 아이에게도 가급적 스마트폰과 영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첫날, 평소처럼 눈 뜨자마자 스마트폰 액정을 마주하지 않고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옆에서 쿨쿨 자고 있는 아이는 아직 깰 생각이 없는 듯했다. 마침 출근도 안 하는 주말이니 이럴 때 보통이라면 스마트폰으로 SNS 삼매경에 빠져 아이가 일어날 때까지 드러누워 액정만을 바라보겠지만 이날은 달랐다. 간단하게 자리에서 스트레칭을 한 후 부엌으로 갔다. 스마트폰은 여전히 거실에서 충전되고 있는 상태였다. 시간은 벽시계로 확인한 후 영양제들을 먹었다. 항상 애 챙기랴 일 하랴 영양제 먹을 틈도 없다고 투덜거렸는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던 거다. 왠지 모르게 몸이 가뿐한 느낌도 들었다.


아이가 일어나기 전 여유롭게 식빵을 굽고 커피를 내려서 아침 식사도 마쳤다. 화장실에 갈 땐 언제나처럼 스마트폰을 든 채가 아닌,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들고 갔다. 짬짬이 독서를 하니 제법 많은 양의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오전에 가족끼리 다같이 외출을 할 땐 아예 스마트폰을 가져가지 않았다. 때때로 스마트폰 알림이 신경쓰이는 반사적인 걱정이 되면서 나도 모르게 섬칫했다. 혹시나 내가 모를 급한 연락이 와 있으면 어쩌지? 하면서. 그렇다 해도 어차피 반나절도 되지 않아 귀가해서 확인하면 될텐데, 정확히 몇십분에 한번꼴로 스마트폰을 나도 모르게 신경쓰고 있는 스스로가 보였다.


사본 -pexels-hasan-albari-1202575.jpg 사진출처: pexels


그렇지만 스마트폰 없는 날은 생각보다 갑갑하지도, 심심하지도 않았다. 스마트폰 밖에서도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가치있는 것들은 더 많았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갈 때,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릴 때, 대중교통을 탈 때는 책을 들고 다니며 읽었고, 자가용 안에서는 일행과 대화를 하면서 바깥 풍경을 봤다.


매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우리 동네의 모습들이 보였다. 새로 생긴 가게의 간판들과 눈길을 끄는 공연 소식과 가을을 맞아 조금씩 물들기 시작하는 나뭇잎이 보였다. 그리고 자기 전까지 내 눈과 뇌를 혹사시키지 않고 고요함 속에서 잠에 들었다.


가장 좋았던 점은 가족간 대화가 늘어난 것이었다. 아직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대화가 없는 편이 아닌데도, 스마트폰을 하다 보면 각자의 세계에 빠지게 되기 쉬웠다.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외출하면 그곳에서의 시간에 집중하고, 집에서는 아이와 더욱 몰입감 있게 놀아줄 수 있었다.


내가 스마트폰을 보지 않으니 아이도 영상이나 스마트기기를 찾지 않는 장점도 있었다. 차량으로 장시간 이동할 땐 평소라면 나는 스마트폰을, 아이는 태블릿으로 만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이제는 창밖을 보며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목적지에서 무엇을 할 건지 이야기하며 가족간 대화도 늘어났다.


우리가 자라던 시절 '바보상자'라 불렸던 TV가 이웃간 교류의 단절을 불렀다면, 스마트폰은 한 지붕 안에서도 가족간의 단절을 부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나마 TV 시절에는 온 가족이 거실에 둘러 앉아 같은 화면을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창구가 되기도 했다. 사안에 대한 관점은 저마다 달랐지만 같은 것을 공유한다는 공감대는 있었다.


스마트폰 시대는 작은 액정만큼이나 개개인을 좁은 관심사에 가뒀다. 개인 맞춤형이라는 미명 하에 자신의 좁은 관심사, 이념 안에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진실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라고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젊은이들은 '틀딱'들의 고리타분함을 성토하고 반대 성별을 악마화한다. 마찬가지로 기성세대들은 검증되지 않은 알고리즘 속 가짜뉴스에 현혹되며 이를 모르는 젊은 것들은 미련하다고 치부한다. 가정에서 부모 자식이 대화를 하지 않고 각자의 알고리즘 안에 갇혀 있으니 어쩌다 말을 섞어도 통하지 않는다. 결국은 좀 더 '합리적'이라고 믿는 타임라인 속 가상 관계에 더 깊숙히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비판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물건이 되고 말았다. 모두가 실시간으로 항상 연결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다보니, 전화를 걸고 한 시간 이내 회신이 없으면 상대방은 불안에 빠지게 되고 휴일에도 왜 업무 연락을 받지 않았냐며 한 소리를 듣기도 한다.

새로 생긴 맛집에 가보려고 해도 오픈 시간을 '인스타'에만 공지하는 곳이 부지기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인스타를 확인해야 한다. 심지어 식당이나 병원 대기를 걸어도 스마트폰 앱이나 카카오톡을 연동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야 할 일이 많았다.

실제로 나도 스마트폰 없는 날을 보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생겼다. 지인에게서 연락이 오거나, 외출을 하려는데 식당 오픈 여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스마트폰 검색밖에 없는 경우가 있었다.


디지털 디톡스가 화두가 된 지 오래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실시간으로 연결된 상태를 기본으로 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아니 몇 시간이라도 스마트폰 없이 살아본다면 그것이 전혀 당연한 게 아님을 알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중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 하루에도 수도 없이 쏟아지는 각종 알림과 연락들이 피곤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면 잠깐이라도 스마트폰 없이 살아보기를 권한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걸, 작은 액정 밖에 어쩌면 더 생생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거다. 만약 그러한 시간들이 더 늘어난다면, 예전처럼 스마트폰과 SNS가 우리를 조종하는 삶이 아닌, 우리가 이들을 필요에 의해 건강하게 이용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스마트폰 없는 날을 살아가는 건 디지털 문명 자체를 거부하는 게 아니다. 디지털 시대에서 인간이 주도권을 잡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SNS와 스마트폰 이용을 통제하면서부터, 나는 오히려 '디지털 노마드'로서의 꿈을 더 구체적으로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이 주는 즉흥적 재미에 맹목적으로 중독되는 것이 아닌, 내가 필요로 할 때 이용하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멀리할 수 있는 건전한 거리두기가 가능해진 것이다.


스마트폰 끊기와 디지털 노마드의 삶, 어떻게 공존 가능할까?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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