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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본 '찐후기', 그거 다 광고입니다

알고리즘 노예 탈출기 -6

by 뚜벅초

#1.


예전 직장에 다닐 때의 이야기다.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후 갓 복직한 나는 오랜만에 모임에서 친하게 지내는 선배를 만났다. 육아의 고충을 이야기하다가 유명 맘카페에서 유용한 정보들을 많이 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그 선배는 "그 맘카페 운영자가 내 아는 사람이잖아"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하고 큰 육아 카페의 운영자가 내 지인의 지인이라니. 재미있는 건 이런저런 이유로 남자는 가입 금지인 그 카페의 운영자가 아이러니하게도 남자라는 것이었다.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 카페 잘 돼서 지금 엄청나게 돈 벌었어. 완전 부자라니까. 거기 그냥 기업체야 기업체."

맘카페 운영이 '쏠쏠'하게 돈이 된다는 이야기는 언뜻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들으니 또 느낌이 색달랐다. 맘카페뿐 아니라 지역커뮤니티, 각종 취미 커뮤니티 등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들은 이미 기업화되어 영리의 수단이 되고 있었다.


최근에는 커뮤니티가 아예 기업, 소상공인들과 제휴를 맺고 회원들을 대상으로 판촉행사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드러내놓고 하면 그래도 다행인데, 문제는 암묵적인 영리활동도 수익이 된다는 이유로 운영자가 묵인해버리면 이용자 입장에서는 이게 광고인지 '찐 후기'인지 알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공익적인 의도로 설립된 게 아닌 개인의 영리를 위해 운영되는 곳이니만큼 운영자 입장에서도 돈이 되는 선택을 하지, 회원들을 위해 자신의 수익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2019년에 지역 맘카페에서 일반인인 척 거짓 광고 글을 쓴 바이럴 업체 3곳이 적발된 사례가 있다. 이들이 쓴 가짜 광고글은 무려 2만6000건에 달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79/0003198689?sid=100)


사본 -pexels-anete-lusina-4792718.jpg 출처: pexels


#2.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취준생이었던 나는 거듭된 면접 탈락으로 결국 모아놓은 돈이 바닥나고 말았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없는 가정형편이었기에 공부와 병행할 수 있는 알바자리를 급히 찾았다. 풀타임 근무나 경력자를 찾는 곳을 제외하면 몇 곳 없었다. 그렇게 알바몬을 뒤적거리던 날, 눈에 띄는 한 공고를 발견했다.


일주일 3일 정도만 출근해 블로그에 일상 글만 올리면 최저시급 이상의 월급을 준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근무 시간도 하루 4시간 정도로 짧았다. 오전에 취업 스터디를 마치고 출근하면 딱 맞았다. 혹시나 일상 글이라는게 설령 광고글이라고 해도 찬밥 더운밥을 따질 계제가 아니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면접을 봤고 다행히 바로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경기도 모처에 있는 오피스텔 건물 두 층을 쓰는 그 마케팅 사무실은 40대의 대표를 제외하면 모두가 20~30대의 또래 젊은이들로 매우 화기애애했다. 알바생은 나와 공무원 준비생인 다른 직원을 제외하면 모두 정직원이었다. 그 중 나는 블로그팀에 소속돼 있었고 옆팀은 커뮤니티 팀이었다. 내가 하던 업무는 공고 그대로 진짜 블로그에 글을 많이 올려서 '블로그 지수'를 높이는 일이었다. 블로그 지수란 쉽게 말해 특정 포스팅을 올렸을 때 핵심이 되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얼마나 상위에 노출이 되는지를 나타내는 점수 같은 것이다. 지금은 네이버 블로그도 엄청나게 발전을 거듭해 블로그 로직이 그리 단순하지 않았지만 당시만 해도 너무 노골적인 광고글만 아니면 글을 많이 올릴수록 지수가 좋아졌다. 그래서 내가 광고글이 아닌, 일상글인 척 하는 글을 많이 올리면 회사 정직원들이 그 블로그에 홍보하고 싶은 것의 광고글을 올려서 노출을 시켰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는 커뮤니티팀이 있었다. 이쪽에서는 블로그가 아닌 커뮤니티, 즉 많은 사람들이 익명으로 활동하는 커뮤니티에서 자연스럽게 활동을 하며 살짝살짝 홍보를 하는 업무를 했다. 노골적인 광고글을 올리면 아이디가 강퇴되기 때문에 최대한 일반 유저인 척 녹아드는 작업을 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업무였다. 여초, 남초 할 것 없이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그들의 작업 대상인 커뮤니티 중에는 당시 반사회성으로 엄청난 논란이 되었던 '일베'도 있었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러했다. 먼저 평소에는 홍보하고 싶은 주제와 전혀 무관한 내용의 글들을 올린다. 그러다가 적당한 주제의 글을 누군가가 올리면 자연스럽게 던지듯이 댓글로 홍보하고 싶은 대상을 노출시켰다. 예를 들어 홍보하고 싶은 대상이 새로 나온 마늘치킨이라고 한다면, 평소에는 치킨과 1도 상관 없는 글들을 올린다. 그러다가 때마침 누군가가(혹은 다른 직원 아이디로) "아 치킨 땡긴다 저녁에 치킨 시킬건데 뭐가 맛있냐?"같은 질문글을 올린다. 그때 댓글로 "어제 마늘치킨 먹었는데 괜찮더라 마늘 싫어하면 ㅁㅁ치킨(주로 경쟁사가 아닌 곳을 언급)도 괜찮다"고 추천한다. 뜬금없이 한 제품만 추천하면 광고 티가 나기 때문에 애꿎은 다른 제품을 함께 언급하는 것이다.


알바생이었지만 인심좋은 그분들은 나를 회식 자리에 데리고 가 비싼 음식을 사 주시기도 했다. 가난한 취준생 입장에서는 마냥 감사하기만 했다. 언뜻 듣기로는 이와 같은 일을 하는 마케팅 회사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들끼리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것이다.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업자끼리 맞붙으면 서로 정체를 까지도 못하고 몰래 신고를 해 경찰이 들이닥칠까봐 후닥닥 자료를 숨기는 모습도 몇 번 봤다.


그렇게 몇 달간 근무하던 그곳에서 나는 취업을 하게 되며 자연스럽게 퇴사를 했고, 이후 그 회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회사명도 딱히 기억나지 않고, 간판도 없던 곳이라 찾을 길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이후로 SNS 추천 글은 물론 많이들 '찐 후기'라고들 생각하는 익명 커뮤니티의 추천 댓글 또한 믿지 않게 됐다. 친구들이 익명 커뮤니티를 캡쳐해서 고급 정보를 가져왔다는 식으로 들이밀어도 속으로는 시큰둥한 생각이 들었다. 저쪽 직원들도 티 안 나게 쓰느라 애 좀 썼구나 싶기도 하고. 하기야 10년도 더 된 예전부터 저런 업체들이 다수 있었고 몇 년 전에는 음원 차트까지 전문적으로 조작하는 업체가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으니, 지금은 더욱 교묘하게 많이들 활동하리라고 생각된다.




이제는 당시보다는 좀 더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온라인의 광고글이라고 하면 블로그 협찬 글 정도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제 그런 글은 광고 효과가 낮아져 외면을 받는 수준이다. 커뮤니티 아이디를 돈 주고 사서 티나지 않게 홍보 글을 올리는 업자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곳까지 광고글이 올라오겠어?'라고 생각하는 곳도 예외는 없다. 자본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곳은 사람들이 진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환영받는 광고판이다. 그나마 블로그 협찬 글은 협찬이라고 밝히기나 하지, 이런 곳은 아예 언급도 없다.


우리는 흔히 SNS와 익명 커뮤니티를 '무료'로 이용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무료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영리성 콘텐츠는 이용자 입장에서 용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규제 안에서 광고성임을 밝히고 제대로 운영된다면 다행이지만, 티를 내지 않고 일반인의 후기인척 하는 광고들도 너무 많다. SNS와 커뮤니티의 운영자 역시 영리적 목적을 갖고 운영하기 때문에 최대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운영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단지 정보를 얻고 재미를 위해 이들을 이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우리는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이용을 당하는 쪽에 가깝게 된다. 그 댓가는 계획에 없던 지출과 왠지 안 사면 나만 낙오되는 것 같아서 급하게 결제한 택배들이다.


그나마 지갑만 가벼워지면 다행이다. 더 큰 문제는 SNS와 커뮤니티가 갈등을 조장하고, 각자의 평범한 일상을 보잘것없어 보이게 만드는 데 있다. 더 나아가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반사회적인 행동을 장려하기까지 한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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